주간동아 271

2001.02.15

경제논리에 왜곡되는 인구정책

  • 박진성 엘림에듀 논술연구소 상임연구원

    입력2007-01-29 09:4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가구당 5명이 넘는 출산율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던 1960년대, 정부는 국민총생산(GNP) 1000달러 달성을 위해 가족계획을 추진했다. 새마을운동과 함께 대통령 주도의 주요 국가시책인 가족계획이 한창이던 1972년을 배경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출산율 99.8%를 자랑하는 충청도의 산골마을 용두리에 파견된 보건소 직원 박현주(김정은 분)는 정부시책에도 아랑곳없이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는 마을 주민들을 감당해낼 재간이 없다. 현주는 ‘잘 먹고 잘 사는 데 관심 많은’ 소작농 변석구(이범수 분)를 설득해 그를 이장으로 추천함으로써 함께 가족계획을 실천해나가려 하지만, ‘농사 중에 최고는 자식농사’임을 굳게 믿는 용두리 주민들은 요지부동이다.

    마침내 석구와 현주는 대통령에게 마을 빚을 탕감해주면 출산율 0%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고, 두 사람의 용두리 출산율 0% 작전은 더욱 극성스러워진다. 주민 대부분이 소작농인 용두리 주민들은 빚을 덜어준다는 조건에 동조해 가족계획에 적극 나선다. 주민들에게 출산율 0%는 곧 부채 탕감이며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이었으므로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피임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애당초 출산율 0%는 무리였다. 석구의 친구인 덕팔 부부는 잘못된 피임법으로 아이를 갖게 되고, 그로 인해 울며 겨자 먹기로 마을을 떠난다. 한편 정관수술을 받은 석구는 아내가 임신하자 아내와 친구 복만의 불륜을 의심하고, 석구의 아내는 실종되기에 이른다. 게다가 대대로 용두리의 지주 노릇을 해왔던 전(前) 이장 강씨 집안과 주민들 사이의 반목이 심화된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짓인 가족계획 탓에 친구를 잃고, 가족이 붕괴되는가 하면 공동체가 파탄 지경에 이르자 석구는 가족계획이 풍요를 가져다줄 수는 있어도 행복을 가져다줄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마을을 떠난다.

    경제 논리에 함몰된 인구정책



    영화의 배경이 된 1970년대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날로 심각해지는 출산율 감소와 인구 고령화에 따른 문제에 봉착해 있다. 각종 통계지표와 연구 결과들은 2050년께 한국은 일본을 앞서는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며, 따라서 경제활동인구의 부족으로 성장률이 감소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이용할 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는 나라에서 인구가 줄어든다니 야단은 야단인 모양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들의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시험관아기 비용의 50%를 지원한다, 출산장려금을 지급한다, 보육비를 지원한다, 세 자녀 이상 가구에 소득공제 폭을 늘린다, 다자녀 가구에 주택청약 우선권을 제공한다, 임신에서 출산까지 무상 지원한다 등의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심지어 60년에 한 번 돌아온다는 ‘황금돼지’해를 맞아 올해 태어난 아기는 복 - 그래봐야 돈(錢)복 정도겠지만, 먹고살기 힘든 이 시기에 돈복이라도 타고나면 얼마나 좋으랴 - 을 타고난다는 출처 불명의 속설이 덕담으로 둔갑해 출산장려 정책에 일조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유행어가 이 나라를 휩쓴 지 불과 30년 만에 셋 이상 자녀를 둔 부모가 더없는 사회적 혜택을 누리게 된 오늘날의 현실은 일차적으론 70년대 당시 가족계획을 구상한 정책 입안자의 근시안적 안목 탓이지만, 출산율 감소와 그로 인해 장차 맞게 될 경제인구의 감소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민적 과제로 부상했다. 사회적 이슈는 두말할 것 없이 대학별 논술고사의 논제로 등장한다. 한양대 2007학년도 정시 논술고사는 바로 한국의 출산장려 정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 세계적인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문제점을 담은 글, 출산율 감소에 따라 경제발전에 타격을 입게 될 한국의 상황을 객관적 지표로 나타낸 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한 글, 그리고 런던 시내의 교통난을 해소하는 다각적인 방안을 담은 글을 각각 제시하고 있다. 이로부터 인구 변화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분석하고, 출산장려 대책에 관한 비판적 검토와 종합적 대책을 제시할 것을 요구한 논제가 출제됐다.

    물론 현재의 저출산 문제와 장차 한국이 맞게 될 경제인구 감소를 전적으로 70년대 산아제한 정책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농경사회에서 급속하게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화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 따른 국민의식 변화(예컨대 ‘자식농사가 최고’라는 믿음의 약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중시하는 가치관의 형성)와 자녀의 출산과 육아가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열악한 복지제도, 극심한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녀를 살인적인 경쟁에 밀어넣어야 하는 교육 현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바로 오늘날 한국사회가 당면한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원인일 것이다.

    문제의 원인이 이렇듯 복합적인데도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정부 정책은 경제적 혜택 일변도다. 소득공제, 보육비 지급, 주택청약 우선권 부여 등은 영화 속에서 출산율 0%를 조건으로 농가부채를 덜어주겠다는 대통령의 약속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이는 애초에 인구문제가 경제 논리에 함몰된 결과다. 60~70년대 높은 인구증가율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논리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한국의 인력 부족이 초래할 경제성장력 저하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노동력 확보가 문제라면…

    경제 논리에 의해 인구정책이 좌우되는 현실에서 더욱 비판적으로 검토돼야 할 사항 중 하나는 국민을 바라보는 국가권력의 관점이다. 가족계획이나 출산장려 정책의 뒤에는 국민을 국가발전을 위한 인적 자원을 생산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대상으로 인식하는 폭력적 발상이 숨어 있다.

    이러한 발상 아래서 개인의 자유와 선택 따위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하기에 개인의 사생활까지도 국가의 이름으로 통제, 감시하는 폭력이 가능한 것이다. 현재의 출산장려 정책과 30년 전의 가족계획은 방향은 반대일지 몰라도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삶을 통제할 수 있으며, 국가발전이라는 명분으로 그것이 정당화된다는 국가주의적 폭력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독재시대의 발상이 이른바 민주화시대라는 지금도 횡행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국가 인구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희생 - 그들은 이것을 ‘협력’이라고 부르겠지만 - 을 통한 국가 발전이 대다수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는 공리주의적 주장을 펼 것이다. 물론 과거 가족계획과 새마을운동 등으로 국민 생활이 윤택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독재시대의 인구정책과 오늘날의 인구정책이 동일해도 괜찮다는 주장은 불합리하다. 과거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통해 이룩한 풍요로운 현실 뒤의 양극화 문제, 자살률 증가, 개인소외, 공동체적 가치의 붕괴 등은 행복한 국민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석구의 말처럼 경제성장이라는 물질적 풍요가 곧 행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장차 맞게 될 한국의 경제성장력 저하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위에서 언급한 문제에 대해 백 번 양보하더라도 지금의 출산장려 정책은 그 실효성이 확실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아이가 태어나 경제활동인구에 편입되기까지는 최소 25년이라는 시간과 사회적 비용이 소요되며, 그동안 인적 자원의 공백은 불가피할 것이다. 또한 그 아이에게 기존 노령인구에 대한 적지 않은 부양의무를 지울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적어도 그가 국가 발전을 위한 인적 자원이 아닌 자유로운 인격체임을 인정하는 한 말이다.

    경제성장을 위한 노동력 확보라는 과제를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것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저출산 현상에도 여전히 높은 해외입양(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1990년 이후 매년 2000명 넘는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된다)은 무엇을 의미하며, 노동력 부족을 호소하면서도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저열한 우월의식과 멸시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말로 인구 부족이 문제라면 그 해결책은 다른 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봄직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