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1

2001.02.15

아픈 노숙자들 내게로 오라

  • 입력2005-03-18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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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노숙자들 내게로 오라
    “제가 뭐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여기 고생하시는 다른 분들도 얼마든지 계신데….”

    서울 문래동에 있는 노숙자 쉼터 ‘자유의 집’의 공중보건의 정보영씨(32)는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다.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며 말을 아낀다.

    지난 94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정씨는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경기도 이천군 보건소에서 11개월 간 근무한 뒤 지난해 4월부터 노숙자 쉼터에서 일해왔다. 정씨가 이곳에 부임할 당시 의료실은 청진기 하나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했다. 그러나 정씨를 비롯한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제는 웬만한 진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현재 정씨는 1000여명의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의료의 손길을 베풀고 있다.

    서울시의 노숙자 의료지원체계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약칭 인의협)에 위탁되어 있는 상태. 서울시는 인의협에 연간 6000만원을 지원한다. 그러나 그 돈으로 서울시에 거주하는 모든 노숙자들의 건강을 돌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도 제때 집행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 ‘자유의 집’의 경우 지난해 말에는 예산 부족으로 약품 공급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진료를 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정씨는 부족한 예산을 쪼개 서울 시내 노숙자 1만3000여명의 건강상태를 체크해 전산화하는 ‘개인별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다음달 이 자료가 완성되면 서울 시내 곳곳의 노숙자 진료와 응급치료에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데이터베이스 작업이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각 쉼터를 연결할 랜(LAN)선을 설치해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제 무의촌도 기존의 ‘지역’ 개념에서 ‘계층’ 개념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 와서 보니 시골 주민들보다 도심의 노숙자들이 공중보건체계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더군요.”

    ‘작지만 소중한’ 일을 실천하는 공중보건의 정씨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되새기며 버림받고 소외된 노숙자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다.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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