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1

2001.02.15

재벌, 금융권 신규 진출 ‘개봉 박두’

공적자금위원회 출범 동시 매각 작업 수면 위로… 대한생명은 경영진 교체설도

  • 입력2005-03-17 15: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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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 금융권 신규 진출 ‘개봉 박두’
    부실은행 퇴출 등 금융구조조정이 마무리 국면에 들어가면서 재벌들이 보험, 카드 등 제2 금융권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그동안 물밑에서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재벌그룹의 금융권 진출이 본격화한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지난 99년 최순영 회장의 외화밀반출 사건 이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현재까지 2조5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한생명은 2월 초로 예정된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출범과 동시에 매각 일정이 일괄적으로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생명을 인수하기 위해 한화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할 기업으로는 한때 미국계와 일본계 기업이 함께 거론됐으나 현재는 일본계 종합금융그룹인 오릭스로 모아지고 있다. 오릭스는 1964년 리스업으로 출발해 현재 투자신탁과 보험 등을 소유하고 있는 종합금융그룹으로 대한생명과 영업 분야가 일치하는 오릭스 생명보험을 소유하고 있어 한화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파트너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특히 한때 대한생명 인수자로 거론된 바 있는 AIG측과는 지난 99년 일본 내에서 조인트 벤처를 구성한 경험도 있어 이러한 분석에 설득력을 높여주고 있다.

    대한생명을 인수해 한화증권과 함께 금융업을 그룹의 주요한 축으로 키우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바 있는 김승연 회장이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대생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 관계자도 오릭스와의 컨소시엄 구성에 대해 부인하지 않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대한생명 인수 전에 오릭스와의 제휴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현재는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재벌, 금융권 신규 진출 ‘개봉 박두’
    한편 대한생명 쪽에서는 2월 초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현 이강환 회장의 거취문제를 포함한 경영진 물갈이설이 흘러나와 곤혹스런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대한생명을 매각할 경우 사실상 대주주인 정부의 의중을 확실하게 반영할 수 있는 인사를 내부승진 또는 외부영입 형식으로 신임 회장에 임명함으로써 매각작업에 탄력을 준다는 구도 하에 이러한 시나리오가 정부 일각과 대생 내부에서 신중하게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한생명측은 이러한 시나리오에 대해 펄쩍 뛰고 있다. 대한생명 관계자는 “현 회장 취임 이후 영업이 상당히 신장된데다 어차피 정부가 회사 매각 주체가 되는 마당에 최고경영자가 누가 되는지가 무슨 상관이냐”며 경영진 교체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실제 대한생명은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기는 했지만 영업 분야에서는 지난해 30% 이상의 신장률을 보이는 등 호조를 나타낸 바 있다.



    대생이 이처럼 영업부문에서 호조를 보이고 있는 만큼 재계 내에서 별다른 경쟁자가 없는 한화측의 인수작전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한화측은 이미 금감위에서 ‘대생 매각은 주인찾아주기’라고 언급했던 만큼 경영권 확보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분위기. 대한생명 매각작업은 환란 이후 잇따라 불거진 생보사 부실 청산작업의 사실상 마무리라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편 신용카드 사용 확대와 세액공제 제도 도입으로 수익성이 급격하게 늘 것으로 전망되는 카드업계에도 재벌 계열사들의 입질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적극성을 보이는 기업은 유동성이 풍부한 롯데와 SK. 두 기업 모두 카드 영업에 있어 필수적인 막강한 고객 DB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롯데는 그동안 대우 계열의 다이너스카드 인수 방안 등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난해 신동빈 부회장의 지시로 독자 진출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정부의 신규사업 승인이 떨어지지 않자 최근 들어서는 다시 동양, 외환, 다이너스 등 매각 대상에 올라 있는 회사들에 대해서도 ‘포기한 게 아니다’는 입장으로 선회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정부의 눈치만 보며 어떤 형태로든 조기 진출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 상태. 400만명이 넘는 롯데백화점 회원의 고객 DB를 활용하면 신규 진출이든 기존사 인수든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 롯데 내부의 평가다.

    SK도 어림잡아 1000만명에 이르는 011 회원과 오케이캐시백(OK cashbag) 회원 DB를 활용해 카드 고객을 확보한다면 시장 상위권 진입은 ‘누워서 떡먹기’라는 것이 SK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제는 카드사업 승인권을 쥐고 있는 금감원의 입장. 금감원은 현재 89년 외환카드 이후 신규 승인이 전혀 없었다는 점과 그동안 카드 수요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점 때문에 신규 승인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으나 시장 여건 때문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금감원 비은행감독국 관계자는 “구조조정이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부실 카드사 매각 등 급한 불을 끄고 나야 다시 신규 승인 문제가 떠오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덕분에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은 신규 진입을 노리는 기업들이다. 업계에서는 금감원이 머뭇거리는 이유에 대해 구조조정 미진보다는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논란 등 재벌 참여에 대한 여론의 동향에 혐의를 두고 있는 눈치다. 롯데캐피탈 관계자는 “삼성, SK 등 주요 재벌들이 보험과 투신 등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마당에 신규 허가를 부담스러워할 이유가 뭐냐”며 간접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SK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SK 관계자도 “허가 요건을 모두 충족시켜놓은 상태에서 정부 조치만 바라보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여신협회 관계자 역시 “정부에서 다이너스카드 등 기존 부실카드사 인수가 아니라 신규 진출 쪽으로 방향을 잡은 만큼 금감원의 승인 여부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벌 계열사의 카드업 진출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A카드업체의 한 관계자는 “SK의 진입에 따른 영향보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합병에 따른 BC카드의 판도 변화가 더 큰 관심거리”라고 말해 SK의 카드 진출 여파가 예상보다는 크게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금융연구원 지동현 선임연구위원은 “카드사는 수신 기능이 없기 때문에 자금력이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게다가 카드 영업의 핵심 요소인 고객 DB가 풍부한 SK가 시장에 진입하면 머지않아 1위 기업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로서는 정부가 언제쯤 재벌 계열사들에 대해 카드 영업을 허가해 줄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정부의 승인이 떨어지는 시기가 바로 LG-삼성-SK-롯데 등 재벌 기업들이 본격 경합하는 ‘재벌 금융대전’이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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