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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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경영 기치 높인 ‘리틀 이병철’

사고·행동·체격까지 선대 회장으로부터 대물림… 의전 생략·화합 우선 ‘가정적 신감각 무장’

  • 입력2005-03-17 15: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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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재경영 기치 높인 ‘리틀 이병철’
    올 1월 초 제일제당그룹 임직원들은 뜻하지 않은 횡재를 했다. 지난해 경영실적이 목표치에 미달, 성과급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었는데 회사측에서 성과급을 지급했기 때문. 성과급은 개인과 그가 속해 있는 사업부문에 대한 실적 평가에 따라 연봉의 10~20% 선에서 지급됐다. 한 과장급 직원은 “기대하지 않은 성과급을 지급한 회사측에 감동한 직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 성과급 지급은 이재현 부회장(40)의 ‘작품’이었다는 후문. 이부회장은 지난해 경영 실적이 목표치에 미달한 것은 환차손과 신규 사업 투자 때문이라는 보고를 받고 “환차손은 임직원들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고, 신규 사업 투자는 회사 정책적인 차원에서 결정된 것인 만큼 그로 인한 순익 감소 부분은 빼고 경영 실적을 계산해 이를 바탕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라”고 지시했다는 것.

    삼성그룹에서 근무하다 제일제당으로 옮긴 K부장은 “이부회장의 그런 결정을 보고 왜 삼성 안팎에서 ‘이병철 선대 회장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 이재현 부회장’이라고 얘기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부회장의 직원들에 대한 성과급 지급 결정은 이병철 회장의 창업 이념인 인재 제일주의를 그대로 실천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재경영 기치 높인 ‘리틀 이병철’
    이부회장의 인재제일주의 경영관은 지난해 말 임원 인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는 게 K부장의 설명이다. 97년 4월 한국도로공사와 함께 설립한 초고속 인터넷 및 회선 임대 업체 드림라인과 지난해에 인수한 CJ삼구쇼핑 등의 주가나 실적이 예상만큼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신규 사업 담당 임원을 비롯한 ‘임원 대학살’ 소문이 나돌았으나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회사를 떠난 임원은 2, 3명에 불과했다는 것.

    “이재현 부회장은 ‘식품사업만 해오던 우리가 경험이 없어 신규사업에서 좋은 실적을 내지 못했는데, 그것은 우리의 수업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임원들을 내보내는 것은 소중한 경험을 사장하고 또다시 수업료를 지불하고 배워야 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이부회장의 생각이다.”(조성경 상무)



    잘 알려진 대로 이재현 부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손.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자신의 뜻을 거역한 첫째 아들 맹희씨와 둘째 아들 창희씨를 제치고 셋째 아들 건희씨에게 그룹 대권을 넘겨주었으나 장손인 이재현 부회장만큼은 끔찍이 아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90년대 후반까지 서울 장충동 본가에서 할머니 박두을 여사를 모시고 산 것도 이부회장이었다.

    이부회장은 90년대 초반 삼성과의 분리 과정에서 삼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갈등을 겪기도 했으나 97년 법적으로 완전히 분리, 적어도 지금까지는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평. 이부회장은 이건희 회장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회장 아들 재용씨와는 허물없이 지낸다고 한다. 재용씨 역시 이부회장을 ‘형님’으로 깍듯이 모신다는 것.

    이부회장은 평소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를 꼽는다. 그의 사고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이병철 회장이라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서울 남대문로5가 제일제당그룹 사옥 2층 로비에 이병철 창업주의 흉상이 놓여 있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부회장은 이병철 창업주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체격 조건도 비슷해 할아버지 양복을 그대로 입을 정도라고 한다.

    이병철 창업주의 흉상은 삼성의 법통이 제일제당그룹에 있음을 과시하는 것으로 비친다. 그러나 그룹 관계자들은 “제일제당이 이병철 창업주가 처음으로 시작한 제조업이라는 점에서 흉상을 모신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집안 싸움으로 비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태도다.

    이부회장은 “이병철 회장이 겸허나 경청, 유비무환, 무한탐구 등의 글자를 많이 썼고, 이를 실천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가훈을 ‘겸허’로 삼고 있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됐다는 것. 그룹 임직원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한손에 장악하고 있는 그룹 오너의 겸허가 진정한 의미의 겸허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임직원들의 그에 대한 평가는 “겸허하면서도 경청할 자세가 돼 있는 사람”이다.

    인재경영 기치 높인 ‘리틀 이병철’
    제일제당그룹에서 그의 호칭은 ‘이재현 님’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임직원들도 서로를 부를 때는 ‘홍길동 님’ 하는 식으로 이름 밑에 ‘님’자를 붙인다. ‘부장님’ ‘과장님’ 등 직책 아래 ‘님’자를 붙이는 게 일반적인 상황에 제일제당식 호칭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상사와 부하라는 수직관계가 아니라 서로 역할만 다를 뿐 수평적이며 협력하는 가운데 즐겁게 일하는 일터를 가꾸고 싶다는 이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설명.

    불필요한 의전을 싫어하는 그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것은 바로 해외 출장 때. 지난해 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혼자 도착해 거래처 사람들과 만나고 있을 때 뒤늦게 이를 안 현지 주재원들이 달려와 “죄송하다”고 말하자 이부회장은 오히려 “나는 내 일을 하고 있으니 여러분들은 여러분 일을 하라”면서 의전을 거부했다고 한다. 또 귀국해서는 임원회의에서 “불필요한 의전에 신경쓰지 말라”고 특별지시를 내렸다는 것.

    이부회장이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은 그와 함께 회의를 한 적이 있는 모든 임원들의 공통된 얘기. 한 임원은 “어떤 임원이 자신의 견해를 개진하면 이부회장은 절대로 ‘노’라고 말하는 법이 없다. 설사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말하더라도 끝까지 다 듣고 나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측면을 잘 지적해주었다. 그럼 다른 임원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면서 토론을 붙여 결론을 도출해내는 스타일이다”고 말했다.

    이부회장이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리고 언론에 등장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이병철 회장을 닮은 부분이다. 홍보실 관계자들은 “다른 그룹의 경우 오너에 대한 이미지 홍보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지만 제일제당은 반대로 이재현 부회장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게 주 임무”라고 말할 정도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것을 보면 이는 이병철 회장 집안의 내력이라고 할 만하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이병철 회장과 닮은 부분. 그를 만나본 언론계 인사들은 그의 술 실력에 대해 “포도주 정도나 가볍게 마시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룹의 한 과장은 “직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직원들은 맥주를 마시게 하고 이부회장 자신은 콜라를 마시는 게 보통”이라고 말한다. 이부회장 자신도 그룹 사보 ‘CJ 패밀리’ 2000년 1월호 인터뷰에서 “오후 7~8시 정도면 퇴근해 되도록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려고 노력한다”고 털어놓았다. 저녁 술자리 약속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가 이처럼 ‘대외 활동’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은 외삼촌 손경식 회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대 출신의 손회장이 폭넓은 인맥을 활용, 그룹의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그룹 관계자들의 전언. 말하자면 외삼촌은 대외 업무, 조카는 그룹의 안살림을 챙기는 것으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셈이다.

    손경식 회장-이재현 부회장 체제에 대해 구경제와 신경제의 절묘한 조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두 사람이 각각 굴뚝산업과 신경제를 대표하는 세대라는 점에서 오히려 호흡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드림웍스나 CJ엔터테인먼트, 드림라인, CJ삼구쇼핑 등의 신규 사업은 이재현 부회장이 젊은 감각으로 투자를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손회장의 역할은 미미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CJ삼구쇼핑을 인수하고 난 뒤 이재현 부회장이 ‘이제 신규 투자는 당분간 없다. 앞으로는 구조조정이 화두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손경식 회장에게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손회장은 구조조정에 관한 한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신규 사업 실패로 인해 이재현 부회장의 위상이 약화됐다’는 재계 일각의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이부회장은 다른 재벌 2, 3세들과 달리 외국 유학 경험이 없다. 83년 고려대 법대 4학년 때 씨티은행에 입사하면서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2년여 동안 근무하다 이병철 회장의 뜻에 따라 85년 9월 제일제당에 사원으로 입사했다. 임원으로 승진한 것은 93년 1월 삼성전자 경영기획 이사로 발령나면서였다. 당시 그의 밑에서 일했던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가 장손답게 그릇이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부회장은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이 마련한 술자리에 ‘끌려가’ 어울리다 기분이 좋으면 자신의 집에까지 데리고 간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연애결혼한 부인 김희재씨는 아무리 늦은 시각에 직원들을 데려와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이들을 뒷바라지해 직원들 사이에 상당히 좋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제일제당그룹은 97년 삼성과 분리한 이후 기존의 식품 바이오 분야를 더욱 강화하고 신규 분야로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분야, 신유통 분야 등에 진출해 이들 3개 분야를 핵심 사업으로 키우기로 사업 방향을 정했다. 이런 가운데 신규 사업 분야 진출은 그의 주도로 이뤄졌다. 따라서 이부회장의 경영자로서의 자질은 이들 분야의 성공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은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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