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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40대여 세상을 바꿔라

475세대, 그 슬픈 자화상

가난, 혹독한 유신 겪으며 ‘지하로 흐르는 물’… 정치적 대표성도 홀대

475세대, 그 슬픈 자화상

475세대, 그 슬픈 자화상
내가 좋아하는 한 남자 후배의 휴대폰 번호는 386-4190번이다. 40대에 70년대 학번인 그는 54년 생이다. 큰 키에 잘 생긴 얼굴일 뿐만 아니라 식견과 언행이 바르고 품위있는 사람이다. 거기다 번듯한 집안 자식이다. 세속의 잣대로 보자면 흠없이 잘나갈 법한데 그는 아직 ‘찬밥’이다. 김남주 시인의 표현을 빌려 ‘지하로 흐르는 물’이다.

왜냐? 그는 대학시절, 유신에 대들다 오살할 징역을 살았기 때문이다. 유신이 망한 다음에도 5공과의 ‘전쟁’으로 30대를 몽땅 길바닥에서 바람을 마시고 살아야 했다. 80년대 내내 그는 민청련 등 ‘민’자 항렬 단체에 무보수로 복무하느라 고시 준비도, 대기업 입사의 꿈도 못 꾼 채 젊음을 고스란히 날려버렸다.

정치권 선배들의 조언으로 그는 지난 4·13 총선에서 ‘개혁적 국민정당’에 일조하고자 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정통 민주세력인 그를 보기좋게 물먹였다.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위해 인생을 바친 사람보다 ‘전문성’을 갖춘 지난 시대의 관료나 ‘출세한’ 부자를 훨씬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개혁이라면 이미 유명한 386세대가 구색을 갖추고 있기에.

기껏 휴대폰 번호로 386과 419세대 사이에 엉거주춤 끼여 있는 자신을 표현한 이 후배는, 그러나 매우 특별한 40대다. 대부분의 40대는 대학시절 유신통치에 순응했다. 졸업 후에는 ‘사무실’에서 죽어라고 일했다. 아파트 평수를 늘려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다가 386이 주력부대로 나선 6월항쟁에 ‘넥타이 부대’로 참여한다. 소수의 정치적 40대를 제외하면 대다수 40대는 정치세력으로서의 주도권이 없다고 봐야 한다.

학업보다는 군사독재와의 투쟁을 본업으로 삼다시피하고 학우들의 전면적인 지원을 배경삼아 전선을 형성했던 386세대에 비해 475(40대, 70년대 학번으로, 50년대에 태어난 사람)는 그 여건이 운명적으로 열악했다. 우선 대부분이 가난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가난으로부터의 탈출과 입신양명을 목표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유신독재는 5공보다 훨씬 더 숨막히는 것이었으므로 목숨을 거는 용기가 없으면 처음부터 ‘운동’이라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레드 콤플렉스와 대중조작에 순치된 국민들은 결코 475가 살 수 있는 ‘물’이 아니었다. 그런 만큼 저항을 선택했던 정치적 475의 고난은 386에 비견할 수 없으리만큼 혹독한 것이었다. 가슴에다 그믐달 같은 낫을 걸지 않고는 배겨 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정치와 무관하게 개인적 삶에 더 치중했던 대부분은 소수의 정치적 475에게 대표성을 부여하는 일에도 소홀했다. 그것이 현재의 475가 겪고 있는 정치적 홀대의 한 원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475세대는 전후의 한글세대로 민주주의적 가치관을 체화한 첫 세대다. 천대받던 기층문화는 70년대 대학가에서 ‘민중문화’로 융성하게 부활했으며 노동의 가치를 제자리로 밀어올린 집단도 이들이다. 70년대 초반 제 몸을 불사른 청년노동자의 외침은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우리 사회의 중심적인 문제로 제기됐다.

그런데 도대체가 우습지 않은가. 70대 노인들이 통치하는 이 이상한 나라는 인터넷 도메인 수가 세계 4위란다. 시대의 화두인 개혁을 두고 70대와 30대가 대치하는 듯한 이 분위기는 뭔가 한참 잘못된 것이다. 비록 세력화돼 있지는 않지만 386 찜쪄먹는 용기와 기획력을 가진 40대의 대표들이 각 분야에 건재한다.

386의 상업적 거품이 걷히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중요한 것은 시대를 함께한 문화적 동질성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이로운 개인적 진보성이 머리 깎인 삼손처럼 무력한 것은 그가 70대의 문화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1.01.11 267호 (p6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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