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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21세기엔 부자로 사세요

‘돈’ 없이 진정한 자유 없다

한국인의 경제관념 송두리째 변화 … ‘부자가 곧 명예’ 인식 급속히 확산

  • <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돈’ 없이 진정한 자유 없다

‘돈’ 없이 진정한 자유 없다
“부자로 살고 싶습니까.” 이는 아마도 하나마나한 질문일 것이다. 구도(求道)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지 않은 이상 가난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들 부자가 되길 원한다. 그러나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부정하고 싶어도, 세상은 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이 분류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2000년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성인 남자들이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이 땅의 척박한 독서 풍토에서도 100만부 이상 팔리는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오죽하면 책이 ‘올해의 히트상품’까지 되었을까. 도하 각 신문들마다 ‘부자 아빠 만들기’라는 제목의 칼럼이 유행한 것도 한국 사회 저변의 기류 변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이토록 우리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황금가지)의 정은수 편집부장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돈을 무시하고는 진정한 자유는 없다는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한국인의 경제 관념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가 이제 돈에 대한 생각, 부자에 대한 생각이 이미 바뀌었거나,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돈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선입견을 긍정적으로 공론화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학교에서나 교과서에서는 결코 가르쳐 주지 않는 돈과 투자, 경제의 기본 원리를 알기 쉽게 가르쳐 주었다는 지적도 많다.



그러나 이런 이유가 전부일까. 만약 우리 사회가 IMF 구제금융의 혹독한 시련을 겪지 않았어도 이 책이 이토록 잘 팔릴 수 있었을까. ‘황금가지’의 박근섭 사장은 “이 책이 지난 몇 년간 사회적 경제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은 한국 독자들의 변화된 마인드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해낸 것 같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IMF 사태 이후 돈과 부자에 대해 다소 경멸의 시각을 고집하던 한국인들의 의식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박사장은 “가난한 아빠의 ‘돈을 좋아하는 것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는 메시지와, 부자 아빠의 ‘돈이 부족한 것이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다’는 메시지는 유교 문화에 길들여진 한국 독자들에게 매우 충격적이고 도발적”이지만 “이 책이 이렇게까지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돈과 부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데에는 세계화와 지식정보사회의 도래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서로 그 영향력이 맞물려가면서 갈수록 위력이 증폭되고 있는 지식정보사회화와 세계화의 결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사실이다. IMF 환란의 와중에서도 ‘가진 자’들은 더욱 더 많은 부(富)를 손쉽게 축적한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한 우리 사회다. 우리 사회는 중산층이 무너지고 사회비평서에서 얘기되던 20 대 80의 사회가 실제로 도래하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two nations’ 현상이라고 말한다. 한 나라에 살고 있지만 마치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에 따로따로 살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같은 방에 있어도 ‘윗목’은 결코 ‘아랫목’이 될 수 없다.

이런 현상 앞에서도 ‘가난은 단지 불편한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한때는 산업역군이자 수출역군으로 자부심이 가득했지만 이제 추운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거나, 벌써 거리를 배회하는 수많은 근로자들이 “가난은 불편한 것뿐이야”라고 말할까. 아니면 가장 안전한 직장이었지만 어느덧 ‘해고 1번지’로 변한 지 오래인 금융계 관련자들이 그렇게 생각할까. 만약 가난이 괜찮은 것이라면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것은 무슨 이유인가.

구조조정은 역시 세계화의 한 과정이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것 자체가 후기자본주의의 세계적인 흐름이다. ‘3저 호황’의 흥청망청과 ‘거품’ 속에 파묻혀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던’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조치들이었지만, 그래도 세계적인 흐름의 변화에 대처하면서 미래를 준비한 사람들은 역시 있었다. 바로 그들이 정보화사회의 새로운 노멘클라투라들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벤처 열풍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벤처는 우리 사회의 인터넷 열풍과 시기를 같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부’의 가능성을 알려주었다. 전통적인 ‘굴뚝산업’의 세습자(재벌 2세)라야만 재벌의 반열에 들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이들에게 벤처를 통한 ‘신흥귀족’의 등장은 커다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기술과 상상력만으로 새로운 재벌이 될 수 있는, ‘신화’들을 볼 수 있었다. 신문 지면을 가득 메웠던 억대 연봉자들의 기사는 분명 ‘나도 될 수 있다’는 희망과 부러움의 대상이었지, 결코 경멸과 비난의 대상은 아니었다.

물론 기술과 경쟁력 배양은 멀리한 ‘무늬만 벤처’인 회사들이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꾸미고 코스닥에 등록해 ‘제2의 졸부’가 되는 사례도 많았다. 또한 정현준 진승현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사이비 벤처’와 ‘돈맛에 빠진 20, 30대의 겁없는 머니 게임’이 이 땅에 한탕주의의 병폐를 심화하고 ‘건전한 부의 축적’과 한탕주의를 혼동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잭팟 한 방만 터지면…”(카지노 슬롯머신) “한 건만 잘 잡으면…”(코스닥-제3 시장) “한 건 잘 찍으면…”(경마-경륜) 등 소위 ‘대박족’들을 양산한 것이다.

사실 그리 잘나 보이지도 않는 젊은 사람들이 금융기관에서 수천억원씩의 돈을 빼내 떵떵거리며 물 쓰듯 쓰는 행태는 겨우 몇백만원의 월급을 기다리며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수많은 샐러리맨들에게 좌절감과 박탈감, 이로 인한 ‘대박 심리’를 부추긴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경륜장과 경마장의 매출액은 그 전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기 71%, 32%라는 급격한 신장률을 기록했다. 강원도 정선 카지노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 젊은 네티즌 사이에서는 용돈이나 하숙비를 털어 당첨금이 큰 호주나 캐나다 등의 ‘인터넷 복권’을 사는 것이 대유행이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벤처 열풍은 역시 ‘노력’이 가져다주는 신분 상승의 긍정적 효과를 파급시켰다. ‘진승현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는 역설적으로 한탕주의가 역시 ‘영원한 승리’가 될 수 없음을 일깨워주었다. 손쉽게 번 돈은 역시 손쉽게 나가는 것이 진리이다. 동아일보에 ‘세이노의 부자 아빠 만들기’를 연재하고 있는 세이노(필명)씨는 “문제는 돈이 아니라 그 돈을 운용할 수 있는 지식”이라고 강조한다. “‘돈이 먼저 생긴 뒤 활용법을 배우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자세는 멸망에 이르는 것과 같다”면서 “돈이 아니라 지식이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

따라서 지식정보사회에 밀어닥치고 있는 변화의 파도를 같이 타고 넘으면 낙오되지 않지만, 그 파도에서 멀어지는 순간 영원히 그 파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위기감과, ‘경쟁력을 가져야만 한다’는 절박함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 부자와 명예가 대립적 조건이 아니라 부자가 곧 명예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 또한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질문을 던져볼 때가 되었다. “당신은 부자 아빠입니까, 가난한 아빠입니까. 당신은 물질과 시간과 조직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롭습니까, 그렇지 못합니까.” ‘부자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돈은 자유입니다”(Money is freedom)라고 강조한다.



주간동아 2001.01.11 267호 (p24~25)

<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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