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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나? 캥거루족이야

책임질 수 있다! … ‘홀로서기’ 연습

청소년 직업 체험센터의 ‘특별한 실험’… 10대의 자율권 부여 스스로 행동하는 시민 양성

책임질 수 있다! … ‘홀로서기’ 연습

책임질 수 있다! … ‘홀로서기’ 연습
영등포에 있는 청소년 직업 체험센터(일명 ‘하자센터’)에 가면 어디서나 ‘하자에서 지켜야 할 7가지 약속’이란 벽보를 볼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해야 하는 일도 한다 △나이 차별, 성차별, 학력 차별, 지역 차별 안 한다 △약속은 꼭 지키고 못 지킬 약속은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일곱 가지 약속은 마치 헌법처럼 센터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의 근간이 된다.

‘하자’는 마땅히 문화적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청소년들을 위해 서울시가 설립한 일종의 대안교육기관으로 이제 갓 한살이 되어간다. 기존 교육이 청소년들을 미성숙한 개인으로 정의하고 청소년의 활동공간을 학교로 한정시켜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하자’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줄 아는 시민을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처음 ‘하자’를 방문한 사람들은 울긋불긋 염색한 청소년들의 머리에서 당혹감을 느낀다. 옷차림은 교복에서부터 힙합바지까지 각양각색. 그러나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하자’를 드나드는 중-고등학생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공공 장소에서 흡연한다는 사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자센터가 처음 생겨나서 사람들이 모여 일곱 가지 약속을 만들고 자치적인 규율을 정할 때, 담배와 술 문제가 거론됐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금주, 금연은 상식이지만 ‘하자’에 모인 청소년들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무조건적인 금연, 금주 요구가 ‘7가지 약속’ 중 ‘나이 차별’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하자’는 이 문제로 뜨겁게 달궈졌는데 그냥 ‘안 돼’가 아니라 토론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기로 했다.

여기서 ‘하자’ 사람들이 내린 결론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흡연은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의 권리 역시 존중해야 하므로 흡연구역을 정하기로 했다. 술은 센터 내 금주를 원칙으로 했다. 이를 어길 때 하자센터 내 자원봉사와 한달간 센터 출입금지 중 택일하면 된다.



어른들과의 대화 통해 약속 만들고 시행

하자센터 전효관 부소장은 이 놀랄 만한 결론에 대해 “당장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 것보다 어른과 청소년들이 대화를 통해 약속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대화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어른과 청소년들을 심리적으로 치유하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장승중학교에서도 이미 1년 전부터 비슷한 실험을 해오고 있다. 지난해 ‘머리 모양과 옷차림 자율화’를 공약으로 내건 학생회장의 당선을 계기로 학생들 스스로 규칙을 만들었다. 남학생의 경우 윗머리 1cm, 앞머리 3cm로 제한했던 머리모양을 ‘자신의 얼굴과 체형에 맞는 단정한 형태’로 바꾸었고, 단발과 커트로 제한됐던 여학생들의 경우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긴 머리는 단정하게 묶는다’는 단서만 붙였을 뿐이다. ‘학교 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규칙도 학생들 스스로 만든 이후 화장실에서의 은밀한 흡연이 크게 줄어들었다. 자율화 이후 어른들이 우려했던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난 여름부터 학교 안팎으로 뜨거웠던 ‘두발 자율화 논쟁’은 시작부터 논점이 빗나간 소모전이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은 내버려두면 무질서와 탈선이 늘어난다”는 전제 하에 ‘최대한 몇 cm까지 허용할 것이냐’ ‘노랑 빨강 염색을 허용하느냐 마느냐’로 대부분의 시간을 써버렸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두발 제한을 거부하는 인터넷 사이트(http://www.mywith.net·ch10과 cyberyouth와 idoo가 연대해 만든 사이트)를 만들고 14만명의 서명을 받으면서 청소년 인권 문제를 부각시켰다.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아직 자신에 대해 판단할 권리가 없다는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이 깨지지 않는 한 진정한 자율이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위드 연대는 두발 자율화 발표 이후 교육부가 “학교별로 학생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해 민주적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대부분의 학교 현장에서 민주적 절차가 무시됐음을 지적한다. 이 연대를 이끌고 있는 박준표씨는 “청소년 보호라는 명목이 다른 사회적 체험을 할 기회들을 제한하고, 그래서 청소년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판단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합의할 수 있는 경험들을 박탈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전효관 부소장도 “이제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시혜를 주기보다는 정당한 대가를 받는 방법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10대의 자율권은 청소년 노동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신을 책임질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동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자에서는 ‘10대 창업 프로젝트’ 등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예로 아이들이 운영하는 스낵바를 들 수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할 뿐 아니라 예산 짜기, 회계정리를 배우며 어른들로부터 운영에 대한 자문을 받고 있다.

‘하자’의 청소년들은 일할 기회를 제공받을 뿐 아니라, 스스로 일할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창업기획서를 제출하면, 센터는 이를 검토한 뒤 예산을 분배한다. 필요한 예산을 전부 지급하는 게 아니라 기획을 따낸 청소년들에게 스폰서 구하는 방법을 가르쳐 부족한 자금을 충당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렇게 해서 지난 8월 10대 창업프로젝트 ‘명함가게’와 ‘인터넷 라디오 하자’가 문을 열었다.

조한혜정 교수(연세대 사회학)는 “우리는 홀수 날에 홀수 번호가 다니는 것이 아니라, 다니는 것을 금지하는 사회”라며 ‘긍정’보다 ‘부정’을 가르치는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어른 되기를 연습하고 있는 청소년들도 기존 교육 현실의 무력한 냉소주의 바깥에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들은 이러한 작은 희망의 움직임들이 세상을 바꿀 날을 기대하며,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간동아 2000.11.23 260호 (p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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