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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수권의 풍류 맛기행 | 영암 어란

혀끝에 아려오는 황홀한 맛

  • 송수권

혀끝에 아려오는 황홀한 맛

혀끝에 아려오는 황홀한 맛
‘영암 어란‘은 호박색 혹은 반투명의 흑보석색으로 그 빛깔이 곱고 연하다. 영암 어란은 지금과는 달리 옛날에는 한지를 펴고 석작에 넣어 명주보자기에 싸서 진상했던 토산품이다.

요즘도 힘깨나 쓰는 양반들의 선사품이고 보니 자린고비처럼 천장에나 매달아야 할 생산품이다. 그래서 남도의 힘깨나 쓰는 집에 가면 고급 술안주로 어란을 내놓고 한칼씩 발라내는데, 지위의 고하나 친분에 따라 얼마나 썰어내는가 하는 정도에 따라서 주인의 아량을 가늠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귀족의 입맛에서 호사를 누리는 음식이라고나 할까.

‘영암 어란집’은 현재 전남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사는 김광자(75) 할머니에 의해 2대째 전수되어 오고 있다. 완제품은 반투명의 호박색을 띠며 입에 넣은 직후에는 감칠맛이 없으나 혀끝에 서서히 아려오는 맛이 거의 환상적인 별미다.

어란 한편(한쌍)은 소-중-대로 나누는데 대는 20만원, 중은 15만원, 소는 10만원으로 작년 값 그대로지만 원칙은 쌀 한 섬 값이 제값이다. 금년에는 최고품을 6`~7편 했는데, 숭어는 갈수록 작은 것만 잡힌다고 투정이다.

1년 내 먹을 어란을 만드는 때는 5월 한철이다. 통통한 알배기를 고르는 것이 첫째의 방법이다. ‘자산어보(玆山魚譜)의 물목’이 마르고 보니 해남, 강진 등 외지에 나가 알배기를 골라오는 일에 애를 먹는다.



“알끈이 떨어지지 않게 알집 두개를 고스란히 들어내, 조선간장에 24시간을 담가둬요. 호박색이나 니스색 때깔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색소를 안 쓰고도 소금과 장에 따라 어란의 때깔을 조정할 수 있지요. 또 장맛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맛도 달리할 수 있지요. 효소의 산패를 막고 외피 단백질을 고정시켜 참기름을 바르고 음건(陰乾)하기를 수십 번씩….”

김광자씨의 공정처리 과정은 이처럼 한달 이상 힘들다. 이렇게 만들어진 어란은 먹을 때도 까다롭기 그지없다. 가능하면 얇게 썰어야 하고, 썰 때도 칼을 불에 달궈 기름이 약간 녹아나도록 해야 맛이 좋아진다고 한다.

서유구의 ‘난호어목지’에서도 숭어의 황금빛 알은 햇빛에 말리면 빛깔이 호박 같고 맛은 진미라고 했다. 숭어 중에서도 몽탄 숭어야말로 기름진 감탕과 미생물을 흠뻑 먹고 살이 쪄 그 알이 차지고 달기로 예로부터 이름 높았다. “겨울 숭어 앉았다 나간 자리 뻘만 훔쳐먹어도 달다”는 말은 바로 이 뜻이다.

이처럼 푸진 물목들이 지금은 영산강 하구언으로 막혀 황금빛 숭어알은 보기조차 어렵다.

어허 넝청 가래야이 강 저 강 다 댕겨도이만한 강 없더라너기 넝청 가래야숭어 잡고 살다가 이 강에 뼈 묻어야지어허 넝청 가래야이 강물에 시름 씻고 늙음마저 씻네어기 넝청 가래야

이는 강마을 사람들이 불렀던 뗏발 치는 노래다. 뗏발은 물에 뜨고 숭어는 뛴다. 그 뗏발의 길이만도 70여m. 키를 넘는 갈대를 여덟 매듭으로 묶어서 한 발마다 통대를 하나씩 넣었다. 접군들이 치기 방망이로 물을 두드리면 숭어들은 깊은 강으로 몰려 뗏줄을 넘다가 뗏발로 떨어지고 ‘당구리’를 든 가래꾼들은 숭어를 두들겨 잡는다. 체장이 70∼80cm. 체중이 1.8kg급이면 알집은 약 700g 정도를 적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젠 뗏꾼들의 가랫소리도 이 ‘자산어보(玆山魚譜)의 물목’과 함께 말랐다. ‘자산어보의 물목’이란 용어는 필자가 ‘남도의 맛과 멋’이란 책을 쓰면서 처음 붙였던 이름이다. 흑산도에서 나주목까지의 ‘영산강 물목’을 그렇게 불렀던 이름이다. 음식의 3요소를 맛과 멋, 메시지로 본다면 이 물목은 남도 밥상에 힘을 실어준다. ‘자산어보’란 곧 흑산도에 유배되었던 손암 정약전(정약용의 형)의 해중 물고기 300여종의 연구 기록서다.

숭어는 기수해역 어디든 서식하는 물고기다. 문헌에서는 수어(秀魚, 首魚, 崇魚)이고, 종류는 알숭어 가숭어 등으로 나누는데 음력 3월경에 강물을 거슬러 오른다. 살구꽃이 필 때는 뗏발 치는 소리와 영산강 숭어 뛰는 소리가 장관을 이루었다.



주간동아 2000.10.19 255호 (p8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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