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5

2000.10.19

4대에 걸친 굴곡진 삶

  • 입력2005-06-28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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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에 걸친 굴곡진 삶
    박근형의 연극은 참 초라하고 구질구질하다. 한결같이 궁색하고 누추한 인생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연극에는 늘 사람들의 진한 살 냄새, 땀 냄새가 배어 있다. 외면하고 싶어도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는, 뿌리쳤다가도 다시 껴안을 수밖에 없는 끈끈하고 사무치는 삶이 존재한다.

    그가 즐겨 다루는 ‘가족’이라는 소재는 ‘대대손손’(10월29일까지 정보소극장)에서 전면적으로 확대되어 나타난다. ‘대대손손’, 말 그대로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그 자식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가문의 역사가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그것이 윗대에서 아랫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랫대에서 윗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역추적된다는 점에서 구성상의 독특한 재미가 있다. 뼈대 있는 내력을 간직한 가문으로 주장되던 한 가족의 역사가 아버지의 아버지로 옮겨갈수록 배신과 변절과 혼혈의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다.

    연극을 하겠다며 가출한 ‘일대’의 아버지 ‘이대’는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남다르다. 그러나 그 자신은 신혼 초에 월남에 갔다가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인을 버리고 왔다. 그 아버지 ‘삼대’는 일본 창녀와의 사이에 ‘이대’를 낳았으며 전쟁 후에 돌팔이 낙태 수술을 업으로 삼았다. ‘이대’의 아버지는 ‘삼대’가 아니라 일본인일 수도 있다. 그 아버지 ‘사대’는 친일파로 아내를 일본인에게 상납하면서까지 굴욕적인 삶을 살다가 해방 후 일본으로 쫓겨갔다. 결국 ‘삼대’와 그 누이는 일본인의 핏줄임이 밝혀진다.

    이 작품은 한편으로 가문과 조상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우리네 인습을 조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똑바로 알고 인정해야 할 아버지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이민다. 아버지들의 굴곡진 삶은 그 자신들의 선택이면서도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함께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이해와 연민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 멀고 먼 조상대로 올라가면 우리에게는 중국, 몽골인들의 피가 섞여 있을 것이다.

    작가는 마지막 제사 장면에서 더 윗대의 조상님네들까지 불러내어 다시 한번 가문의 내력을 강조함으로써 그네들의 망집을 슬그머니 희화화한다. 조상과 과거에 연연하면서 오히려 소홀해지고 희생당하는 현실의 질곡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좁은 소극장 무대에서 다양한 공간들을 창출해내는 박근형의 재능은 정말 감탄할 만하다. 무대 배경은 여러 쪽의 창호지 문들이 둘러쳐진 것이 고작이지만 장면에 따라 그 문들이 미닫이, 또는 여닫이 방식으로 열리고 닫히면서 필요한 모든 공간과 분위기들을 조성해준다. 배우들은 작품의 특성상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이행하는 연기를 별다른 분장의 변화 없이도 천연덕스럽게 소화하고, 사소한 역할들의 일인다역 까지 능란하게 수행한다. 특히 ‘사대’의 아내로 등장한 천정하는 기모노 차림에 전형적인 일본 여자의 몸가짐으로 남편 아닌 남자를 섬기면서도 자식들에게는 가문의 지조를 강조하는 이중적 성격을 깜찍하게 연기한다. ‘삼대’로 나온 엄효섭도 최근 문제작들에서 연달아 비중 있는 역할을 맡으며 풍부한 연기력으로 눈길을 끈다.

    박근형의 스타일은 아직 확고하지 않지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개성과 고유성을 확보하고 있다. 거의 빈 무대를 다각적으로 활용하면서 시공간의 넘나듦을 자유자재로 연출하는 능력은 생래적으로 우리 전통극에서 영향받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편안하게 이완된 분위기 속에서 배우들이 시치미떼고 능청 떠는 연기는 박근형 특유의 엉큼한 유머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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