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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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 된 백두산 호랑이 다이어트중

서울대공원서 공개한 ‘랑림’ 식성대로 먹다 살 너무 쪄…앙칼진 야생 본능은 그대로

  • 입력2005-06-28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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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뚱보 된 백두산 호랑이 다이어트중
    대자(大)와 왕자(王)가 또렷이 새겨진 이마, 촘촘하고 진한 줄무늬, 매끈하면서도 우람한 덩치, 사나운 성질…. 민족의 영물로 단군신화나 민담 등 역사 속에서만 살아 있던 ‘백두산 호랑이’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10월3일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백두산 호랑이 ‘랑림’은 구전(口傳)으로만 전해지던 한국 호랑이의 외관과 습성을 그대로 간직한 맹호(猛虎)였다. 공식 기록으로 보았을 때 1922년 경북 경주군 대둔산에서 한 마리가 사살돼 자취를 감춘 뒤, 남한에서는 80여년 만의 ‘백두산 호랑이’ 출현인 셈이다. 지난해 1월22일 북한 평양중앙동물원에서 반입된 지 1년9개월 만에 일반에게 공개된 ‘랑림’은 아직 사람들에게 적응이 되지 않은 듯, 포효를 계속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랑림의 서울대공원 전담 사육사 한효동씨(44)는 랑림과의 첫 대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두상에서부터 꼬리까지 잘 빠진 미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두상은 온순해 보이지만 성질은 앙칼지게 보였고, 체구는 좀 왜소해 보였죠. 굵고 긴 수염과 균형 잡힌 짧은 다리, 백두산 호랑이의 전형이었습니다.”

    랑림의 반입 당시 몸무게는 100kg 정도. 같은 계통의 시베리아 호랑이보다 훨씬 몸집이 크면서도 날렵한 장년기 백두산 호랑이의 정상 체구로는 좀 마른 편이었다. 한씨는 그때부터 일곱살 난 암컷 랑림이의 살찌우기 작전에 들어갔다. 랑림의 식성은 좋았다. 하루 4kg에서 6kg의 닭고기와 소고기를 먹어치웠다. 지방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둔부살로만 한달에 32만원어치의 고기가 제공됐다. 랑림은 올들어 여덟살이 돼 길이 3.23m, 몸무게 145kg의 건장한 암컷 호랑이로 탈바꿈했다. 기존의 시베리아 번식종보다 훨씬 큰 백두산 호랑이의 몸매를 갖춘 것.

    “살이 너무 쪄버렸어요. 허리는 잘록하고 엉덩이는 갸름해야 하는데 지금 낭림이의 엉덩이는 펑퍼짐해요. 사람으로 치면 아이 셋쯤 낳은 아줌마 엉덩입니다. 지금 다이어트 중입니다. 토요일은 금식이에요. 평소 식사량도 줄여나갈 겁니다.” 한씨는 이제 랑림의 다이어트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러나 토요일을 제외하고 꼭 잊지 않는 메뉴가 있다. 다름아니라 랑림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인 토끼고기. 어린 시절 사냥을 해 본 경험 때문에 랑림은 토끼고기의 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성깔을 부릴 때에도 토끼고기만 던져주면 ‘뚝‘이다. 야생상태에서 호랑이의 사냥 성공률이 15∼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이어트’를 해도 무리가 없다는 게 한씨의 생각이다.

    백두산 호랑이 랑림의 야생 식습관은 어린 시절의 생활에 기인한다. 랑림은 지난 93년 4월 북한의 자강도 낭림군에서 북한군에 의해 생포됐다. ‘랑림’이란 이름도 그때 붙여진 이름. 자강도 낭림군은 개마고원 서쪽 지역으로 백두산에서 뻗어나온 백두대간이 낭림산맥으로 갈라지는 부분에 위치한 지역이다. 랑림은 그야말로 백두산 줄기에서 태어난 진짜 백두산 호랑이였던 것. 한씨는 랑림의 수염 길이와 호랑이의 번식 시기 등으로 판단할 때 생후 6, 7개월 정도에 생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생후 7개월이면 어미의 보호를 받는 새끼 호랑이지만 스스로 간단한 사냥은 할 수 있는 시기다. 한씨는 “랑림의 야생 본능이 바로 이때 완성됐다”고 말했다.

    랑림의 생포 당시 김일성 주석은 크게 기뻐하며 상을 내렸다고 전한다. 북한에서도 야생 호랑이를 생포하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 현재 북한 지역도 백두산 호랑이가 멸종 단계에 있는데다, 야행성인 호랑이를 대낮에 마주치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호랑이의 생포는 대단한 일이었다. 현재 평양중앙동물원에도 백두산호랑이는 서너 마리밖에 없는 실정. 한씨는 “야생 백두산 호랑이의 포획이 무리와 떨어진 새끼 호랑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랑림의 야생 본능은 숲을 떠난 지 6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랑림은 지난 3일 방사된 이후 꼬리를 하늘로 쳐 올린 상태에서 소변을 흩뿌리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 안에 소변을 분사(噴射)시키는 것. 대변도 한 자리에만 본다. 사육사 한씨는 랑림의 이런 행태를 ‘영역표시 본능’이라고 말한다. 이전에 있던 시베리아 호랑이의 흔적을 없애고 자신의 영역임을 알리기 위한 행동이란 것. 랑림은 또 먹이를 던져주면 바로 주둥이를 갖다대지 않는다. 평소에는 숨겨놓는 날카로운 발톱(隱爪)으로 먹이를 후려친 뒤 고기를 먹는다. 한씨는 이를 “사냥의 야생 본능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풀이했다. 다른 시베리아 호랑이들이 먹이를 주면 덥썩 받아먹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야생 본능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랑림의 성격은 “까탈스럽고 앙칼지다”는 게 한씨의 경험담. “남남북녀라고 하더니 호랑이도 마찬가진가요. 성깔이 대단해요.” 지금은 콧잔등도 어루만져주고, 사육사의 말도 알아듣지만 초기에는 한씨도 어려움이 컸다. 우리에 나온 지금도 구경꾼들이 조금만 괴롭혀도 5cm나 되는 송곳니를 드러내고 덤비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옆 우리에 있는 새끼 호랑이들도 랑림에게 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랑림은 우리 안에서도 항상 은폐할 곳을 찾으며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다. 한씨는 “야행성인 랑림의 포효소리 때문에 다른 동물들이 밤잠을 설칠 정도”라고 말했다.

    랑림의 까탈스런 성질은 수컷과의 ‘합방’도 실패하게 만들었다. 올 3월 랑림과 ‘신방’을 차리러 들어간 열세살짜리 수컷 시베리아 호랑이 ‘백두’는 랑림의 서슬퍼런 ‘위협’에 깨끗이 딱지를 맞았다. 랑림은 교미 처음에는 백두의 코에 엉덩이를 문지르며 관심을 표하더니 금새 날카로운 발톱을 내보이며 백두를 밀어낸 뒤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호랑이의 경우 암놈은 발정기에 이르러 특이한 냄새의 생식 호르몬을 분비하고, 수컷은 암놈의 냄새를 맡고 따라다니다 교미에 들어간다. 백두는 헛물만 켠 채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랑림은 곧바로 다른 우리에 옮겨졌다. 호랑이 수컷은 암놈이 교미를 거부할 경우 상대를 물어죽이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초반 창경원에서 암놈 호랑이가 교미를 거부했다가 수컷에게 물려 죽은 사례도 있었다고 한씨는 전했다. 랑림이는 남한 유일의 백두산 호랑이일 뿐만 아니라 북한으로부터 일반 호랑이 가격의 3배가 넘는 무려 5200만원의 대가를 치르고 구입한 ‘귀하신 몸’이기 때문에 ‘재도전’은 불가능했다. 이후 랑림에겐 발정의 징조가 보이지 않았다.

    “숫처녀라서 그런가… 궁합이 안 맞아서 그럴 겁니다. 다음 기회를 봐야죠. 모두가 랑림의 앙칼진 성질 탓입니다.” 한씨는 하루 빨리 백두산 호랑이 수컷이 반입돼 다른 호랑이들처럼 백두산 호랑이 한 쌍이 사이좋게 같은 울타리에서 거니는 모습을 보고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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