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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마음 쑥쑥 크는 ‘아름다운 학교들’

잔디 깔린 운동장, 예쁜 화단 조성…“이젠 삭막한 학교환경 싫어요”

고운 마음 쑥쑥 크는 ‘아름다운 학교들’

고운 마음 쑥쑥 크는 ‘아름다운 학교들’
19번국도를 타고 남해읍으로 가는 길에 고현 우회도로를 달리다 보면 왼쪽으로 푸른 잔디가 보인다. 처음에는 공원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학교 운동장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란다. 이곳은 남해정보산업고 운동장이다. 다시 19번 국도를 따라 고현면 도마마을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푸른 잔디 위에서 축구를 하는 조기축구회원들을 보게 된다. 바로 도마초등학교 운동장이다.

남해군내 학교들이 이렇게 푸른 운동장을 갖게 되기까지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97년 봄, 10개 학교에서 파종을 했지만 파종면적을 얼마나 하고 관리주체는 누가 될 것이냐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고 그 중에는 되레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마음의 상처만 남기고 실패한 곳도 있다. 그중 남해군청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관리에 나선 학교들은 이제 잔디가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

운동장에 잔디를 조성하면 눈만 즐거운 게 아니다. 미세먼지를 흡수해주고 대기를 정화시키며 산소 공급, 지하수 확보 등의 효과가 있다. 특히 물이 부족한 남해에서 빗물을 땅 속에 확보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국민체육진흥공단도 2002년까지 전국 125개 학교 운동장을 천연잔디로 바꿀 예정이라고 하니, 푸른 잔디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게 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서울 양천구 한가람고등학교 신축교사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학생들의 동선을 고려한 가장 이상적인 학교모델로 꼽힌다. 특징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 복도다. 선택과목이 늘어나고 수준별 수업을 하려면 가장 큰 문제가 이동시 걸리는 시간과 좁은 복도에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 학생들로 인한 혼잡함이다.

한가람고는 가급적 동선을 줄이기 위해 복도를 가운데 놓고 양쪽에 교실을 배치했다. 이 경우 동선은 줄일 수 있으나 복도가 어두워지는 문제가 또 발생한다. 그래서 건물을 관통하는 썬큰 가든과 천창을 만들어 자연채광과 환기를 좋게 했다. 또 각 층(3층)마다 2개씩 교실만큼의 공간을 비우고 벽을 없애 학생용 라운지로 이용하도록 했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건물 바깥으로 이어지는 베란다를 설치해 수업이 없는 시간에 아이들이 모이는 장소로 만들었다.



그 밖에 건물에서 건물로 이어지는 체육관이라든가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열람실 바로 아래층에 위치한 식당, 비치 파라솔이 놓인 옥상, 노래방 기기가 설치된 지하의 교실카페 등이 방문객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학교가 변하고 있다. 더 이상 성냥갑 같은 시멘트 건물, 먼지 날리는 운동장, 교도소 같은 담, 화려한 빌딩과 아파트에 묻혀 초라하기만 한 학교여서는 안 된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학교의 삭막함은 건물과 운동장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똑같은 복장에 똑같은 두발의 아이들, 그곳에서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을 강요당한다. 속내를 들여다 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다른 아이를 누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다는 강박이 유령처럼 아이들을 짓누른다. 학교는 흡사 전쟁터 같다.

그래서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학교 만들기 운동’이 시작됐다. 아직 초기단계지만 성냥갑 같은 건물과 연병장 같은 운동장, 교도소 같은 담, 군대식 학생 규율, 살인적 경쟁 시스템으로 대변되는 현재의 학교를 생태적으로 아름답고 미학적으로 아름다우며 공동체가 아름다운 학교로 전환시킴으로써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아이들을 길러내자는 취지다.

이 운동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의 ‘아름다운 학교 운동’과 서구의 ‘생태 학교 운동’, 그리고 남해군과 같은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몇몇 사례들이다.

1997년 시작된 러시아의 아름다운 학교운동은 경제파탄으로 학교도 황폐화하자 교사와 학부모가 뭉쳐 학교를 살리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그들의 출발은 소박했다. 교사와 학생들이 수업의 연장선상에서 직접 건물 외벽을 칠하며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 그후 유럽자유교육협회(NGO)와의 공조로 교육과정이나 교수`-`학습법까지 포함한 공교육 개혁의 한 모델로 확산됐다. 현재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서구의 생태학교 운동은 지역사회 중심의 학교옥외환경 개선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옥외환경의 교육적 활용과 학교의 환경개선사업을 돕는 사회단체 LTL(Learning Through Land-scapes)이 활동하고 있으며, 캐나다의 경우 에버그린 재단(The Evergreen Foundation)의 주도 아래 1991년 이래로 캐나다 학교와 지역공동체가 건강한 자연환경의 향상을 통해 사람과 자연간 올바른 관계를 만드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은 생태학교 모형에 가깝다. ‘LG상록재단’은 매년 1억6000만원을 들여 각 초등학교에 30평 규모로 우리꽃 동산을 조성해주고 있다. ‘학교숲 가꾸기운동본부’에서는 유한킴벌리의 학교 숲조성기금, 산림청의 수목지원, 산림조합중앙회의 녹색자금 후원을 받아 시범학교 1개교 당 1000만원 상당의 수목 및 현금을 지원한다.

그 밖에 학교가 개별적으로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서울 경일초등학교에서는 구청 예산 3억6000만원을 지원 받아 학교 담을 허물고 작은 공원을 조성해 지역주민과 공유하도록 했다. 서강대의 ‘푸른서강가꾸기운동’은 마포구청과 서울시의 협찬으로 학교 안에 동아리의 숲을 비롯, 고교 동문회의 숲, 연인의 숲, 우정의 숲 등을 조성해 학생 스스로가 가꾸어 나가고 있다.

학교 건축에서 미학적 차원의 리모델링에 관심을 두는 새로운 학교도 속속 등장한다. 외관적으로는 매우 아름답고, 내부적으로는 학생들의 동선을 최대한 고려한 기능적인 학교 건물을 추구하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한가람 고등학교가 대표적인 경우다.

또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미학적 체험과 생명 존중을 교육의 기본으로 삼으려는 운동도 있다. ‘총체성교육운동’이라고 명명해야 할 이 운동의 가장 큰 신조는 마음의 아름다움이다. 구체적으로 정서적 사회적 신체적 창조적 직관적 심미적 영적 잠재성에 대한 관심, 교사와 학생 사이의 평등하고 개방적인 관계, 교육 내용으로서의 생명 존중과 전지구적 관심을 지향한다.

아름다운 학교운동의 아름다움은 지향성 못지않게 그 방법에 있다. 대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 공사를 발주하고 그래서 학교에 나무 한 그루 더 심어주는 것으로 끝난다면 멋쩍다. 이보다는 학생들이 미술 시간에 우리 학교가 어떻게 변화했으면 좋겠다고 상상화를 그려보고 나서 이를 실현하는 데 기업이 후원해주는 정도라면 좀더 아름다울 것이다. 꽃 심기 등 학생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고 있다면 더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이 일은 관 주도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학교 운동을 지지하는 교육감이 아름다운 학교를 학교평가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나서고, 학교장들이 일제히 아름다운 학교 실현을 위해 학교발전기금을 거두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제 교장과 교사들은 교육개혁에서 객체화되었음을 한탄하지 말고 아름다운 학교 운동의 성공적 확산을 위해 나서야 한다. 자신이 속한 학교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장기적 전망을 마련하고 지역자치단체, 지역 주민, 학부모, 기업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지역 주민과 학부모들은 토론을 통해 아름다운 학교상을 정립하고 이에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 바자를 여는 등의 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학교 운동은 학교장과 교사, 지역주민과 동창회,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필요로 한다.



주간동아 2000.10.12 254호 (p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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