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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방지법 제정 왠지 껄끄럽네

‘정치자금’ 제외 바라는 정치권, 여론 눈치보기…시민단체 등 “알맹이 빠져선 곤란”

부패방지법 제정 왠지 껄끄럽네

부패방지법 제정 왠지 껄끄럽네
부패방지법은 기사회생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번에도 물건너가는 것일까. 이미 15대 국회에서 299명 국회의원의 3분의 2가 넘는 244명이 이 법안에 찬성하는 서명을 해놓고도 정작 법 제정에는 실패한 부패방지법의 운명을 놓고 최근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올 가을 정기국회를 앞둔 지난 7월, 부패방지법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15대 국회에서처럼 참여연대 혼자서 서명운동 등 캠페인에 나선 것이 아니라 경실련 YMCA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녹색연합 여성단체연합 흥사단 등 주요 시민단체가 함께 나서서 시민단체 공동안을 발의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부패방지법 제정운동은 이들 38개 시민단체의 참여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는 이미 94년에 ‘공익정보제공자보호제도’를 제안하고, 96년에는 ‘부패방지법’ 등을 입법청원하였으나 15대 국회는 끝내 부패방지법을 통과시키지 않았고 정부가 제출했던 ‘반부패기본법’도 통과되지 않아 15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부패 방지 입법을 꾸준히 추진해 온 시민단체에서는 이를 두고 ‘여야가 명분에 밀려 부패방지법 제정에 서명은 했지만 속마음은 누구도 이 법안을 제정하는 데 나서고 싶지 않았던 증거’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악(惡)의 공모’라는 극단적인 평가도 나왔다.

38개 시민단체 공동 ‘입법청원’

결국 올가을 정기국회를 앞두고 참여연대 등 38개 시민단체들이 나서 ‘부패방지 제도입법 시민연대’를 결성하고 지난 5월 제1차 준비모임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의 모임을 거쳐 국회에 부패방지법과 자금세탁방지법을 시민단체 공동안으로 입법청원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16대 국회에는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제출한 부패방지법, 민주당이 제출한 반부패기본법, 한나라당의 부정부패방지법 등 서로 다른 3개의 반부패 관련법안이 상정되어 있다. 우선 시민단체 공동안은 공직자윤리법을 강화해 법안에 포함시키면서 공직자 재산등록과 공개, 공직자의 업무외 소득 제한, 금지대상 선물의 내용과 처리절차, 부정공직자의 취업제한 등 보다 구체적인 조항을 추가해 실질적인 내용을 갖출 수 있도록 했다.

또 시민단체 공동안에서는 ‘공익정보제공자보호제도’를 대폭 강화해 조직내 부패행위에 대한 신고를 의무화했을 뿐 아니라, 내부자의 공익제보로 인해 예산낭비를 회복한 경우 그 금액의 15% 내에서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획기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 그리고 특별검사제도를 신설하여 고위공직자 비리를 독립적으로 수사하도록 하고, 부패방지법과는 별도로 ‘자금세탁방지법’을 두어 금융기관이 2000만원 이상의 현금거래가 이루어질 경우 이를 30일 이내에 국세청에 통보하도록 하여 음성적 자금세탁을 사전에 차단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여야 정치권의 입장은 기본적인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부패방지법에 의해 설치되는 부패방지위원회가 조사권을 가지는 것에 대해 검찰, 감사원과의 권한 중첩 문제 등을 제기하면서 소극적인 입장이다. 내부고발자보호제도의 경우에도 동양윤리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정치권 내에서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논란을 빚고 있는 부분은, 자금세탁방지법에서 정치자금을 적용대상에서 제외할 것인지 말 것인지로 모아진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자금을 자금세탁방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외국어대 이은영 교수는 “국민 모두가 정치권을 가장 먼저 정화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마당에 정치자금을 자금세탁방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돈세탁 규모가 연간 100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자금세탁방지법 입법 자체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정치자금 포함 여부는 자금세탁방지법의 실효성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앞으로도 뜨거운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세계은행, OECD에서도 압력

일단 다행스러운 것은 여야 정치권이나 시민단체를 막론하고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 시민단체쪽에서도 현실에 맞지 않는 원칙론을 고집하는 대신 단계적 접근론쪽으로 방향을 선회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고 여야 정치권에서도 부패방지법 처리 지연에 따른 여론의 따가운 비난을 의식하는 분위기다. 다른 분야에서의 압력도 있다. 바로 세계은행이나 OECD와 같은 국제기구의 실질적인 압력이다.

저개발국가의 경제 개발을 지원하는 세계은행은 개도국의 채무상환 기간과 조건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국가 부패도’를 감안하는 방식으로 부패 척결에 앞장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금 유치가 급선무인 개도국들에서는 실제 이러한 압력으로 인해 부패가 어느 정도 완화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OECD 뇌물방지협약에 따르더라도 회원국들은 뇌물에 대한 국가간 공통의 정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동안 일부 국가에서 관행이라는 이유로 소량의 금품이 오갔던 것도 뇌물방지협약의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부패 문제에 소극적일 것만 같던 경제계도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반부패특별위원회 홍현선 과장도 “개별기업들은 부패 척결 문제에 소극적이지만 경제단체들은 예상 외로 부패 방지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대통령 직속 반부패특위에는 전경련 직원 1명이 파견돼 합동근무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안팎의 압력 덕택에 일단은 반부패법 통과를 낙관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반부패특위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법무법인 광장 이민호 경영자문실장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내부비리를 고발하는 사람에 대해 일정한 비율의 보상금을 지불하는 방안만 통과되더라도 공직 사회의 비리는 상당히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현재 시민단체 공동안에서는 내부 고발로 인해 절감한 예산의 15%를 고발자에게 포상금 형식으로 지급하는 방안이 명문화되어 있다. 여야가 제출해 놓은 법안에는 ‘15%’가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원칙론에는 동의하고 있다.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잘못된 관행에 대해 ‘호루라기를 불어줄 사람’(whistle-blower)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시용 호루라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주간동아 2000.10.12 254호 (p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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