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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팀 총수 진념, 개혁성 시비 잠재울까

경제 ‘빨간불’로 능력 한계 질타…일부에선 교체론까지 제기

경제팀 총수 진념, 개혁성 시비 잠재울까

경제팀 총수 진념, 개혁성 시비 잠재울까
‘경제팀 수장’인 진념 재정경제부장관의 키는 1m67을 넘지 않는다. 올해 60세라는 연령을 감안해도 결코 크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를 만나보면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있다. 걸음걸이에서도 활기가 느껴진다.

진장관은 경제기자들에게 대체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구 경제기획원 중간간부 시절부터 그의 사무실은 출입기자들이 즐겨 찾는 방이었다. 경제현안에 대한 정확하고 명쾌한 분석과 막힘없는 답변, 특유의 친화력 때문이었다. 이런 태도는 장관이 된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전북 부안 출신인 그는 80년대 후반 이후 악화일로를 치달아온 지역주의에도 불구하고 영남 등 비호남 출신 기자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현 경제팀 ‘진념라인’ 대거 포진

노태우-김영삼정부시절 동력자원부장관과 노동부장관을 지낸 그가 김대중정부 출범 후에도 기획예산위원장과 기획예산처장관을 거쳐 재경부장관에까지 이른 것을 ‘지역적 배경’ 때문이라며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물론 진장관이 정권교체 후에도 살아남아 승승장구한 데는 호남 출신이라는 측면이 일정 부분 도움이 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만 본다면 문제의 핵심을 놓친다.

그는 업무분석 및 추진력과 조정력, 친화력이라는 3박자를 고루 갖춘 대표적 경제관료다. YS정부시절에도 개각설이 나돌 때마다 경제부총리 후보로 거론된 것은 이런 종합적 강점 때문이었다. 오히려 ‘영남 정권’에서 ‘사회적 소수파’였던 호남 출신이 아니었다면 벌써 경제부총리를 지냈을 가능성이 높다.



진장관은 현장을 중시하고 격식을 별로 따지지 않는 스타일이다. 현안이 생기면 그는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는 일이 많았다. 우리 사회에 노사갈등이 극심했던 1988년 해운항만청장으로 취임한 직후 강성노조로 유명하던 항만노조부터 찾아가 소줏잔을 나누며 대화채널을 만들었다.

진장관이 재경부장관이 된 뒤 부처간 불협화음이 아직까지 별로 들려오지 않고 재경부의 위상이 현저히 높아진 것은 그의 장악력을 보여준다. 물론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힘을 실어주면서 팀워크를 강조한 것도 한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기획예산처와 금융감독위원회가 생기면서 경제정책의 중요한 두 축인 예산과 금융기능을 재경부가 갖고 있지 못하거나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재경부의 위상 강화는 진장관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다.

현 경제팀에는 과거부터 ‘진념 라인’으로 불려온 인사가 대거 포함돼 있다. 특히 재경장관과 함께 경제정책운용의 큰 틀을 짜는 중요한 축인 전윤철 기획예산처장관과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 이기호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등은 진장관과 기획원에서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친한 후배들인 데다 동향(호남)이라는 공통점까지 있다.

그러나 부처별 이기주의가 엄존하는 한국 관료사회에서 아무리 과거의 인연이 있다고 해도 일단 장관이 되면 삐걱거리는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결국 다른 장관들의 승복은 진장관의 리더십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특히 ‘핏대’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만큼 개성이 강한 모 장관의 경우 진장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경제팀 수장’이었다면 도저히 통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도 과천 관가에서는 심심치 않게 들린다.

중요한 정책 결정과정에서 언론을 합리적으로 설득해 잘 활용하는 것도 특징.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40조원의 공적자금을 추가로 조성키로 한 결정은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상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 불가피성을 인정하더라도 ‘정책의 실패’로 국민의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측면에서 여론의 엄청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진장관은 취임 후 언론을 상대로 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득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는 공식발표가 있기 하루 전 여당인 민주당과의 당정협의로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도 과천청사로 돌아와 “정부가 비판을 받을 각오는 돼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적자금 추가조성을 하지 않고 제2차 금융구조조정은 물건너가는 것이 아니냐. 비판은 하더라도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국민들이 알게 해달라”고 기자들에게 호소했다. 공적자금 추가조성이 발표된 뒤 언론에서 문제점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현실적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내용의 해설기사가 주류를 이뤘던 데는 그의 논리적 설득도 약간은 영향을 미쳤다. 만약 과거에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면 언론의 평가는 더 혹독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진장관은 필요할 때면 뚝심도 발휘한다. 공적자금 추가조성과 관련된 당정협의과정에서, 당쪽에서 국민들의 비판여론을 의식해 조성금액의 삭감을 주장하자 “난들 취임하자마자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을 것이 뻔한 이런 정책을 택하고 싶은 줄 아느냐. 만약 추가조성액이 부족해 다시 국민들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면 당쪽에서 책임질 거냐. 나는 장관직을 떠날 각오가 돼있다”며 버텨 합의를 이끌어냈다. 노동부장관 시절에는 노동법 개정문제를 둘러싸고 노동계와 당시 야당이었던 현 집권세력이 강력히 반대, 사회가 시끄러웠을 때도 끝까지 법개정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이렇듯 장점이 많은 진장관이지만 적지 않은 비판도 따른다.

가장 자주 들리는 것은 ‘개혁성이 부족하다’는 지적.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정권으로 이어진 군사독재정권에서도 잘나가는 관료생활을 하면서 우리 사회 각계의 기득권층과 깊은 친분을 맺고 있는 그가 과감한 개혁의 주체로서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재경부장관으로 오기 직전 공공부문 개혁을 총괄하는 기획예산처장관으로 얼마나 성과를 올렸느냐며 폄하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기획원 출신으로 특히 기획분야에서 잔뼈가 굵어 금융 등 ‘섬세한 문제풀이’에 약하고 ‘목표달성 지상주의자’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지나치게 처신에 밝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한다’거나 ‘정치적 야심이 있다’고 꼬집는 시각도 있다.

그가 재경부장관으로 취임한 때는 시기적으로 결코 그에게 유리하다고 보기 어렵다. 국제유가 급등과 반도체가격 급락, 대우차 매각협상 차질에 증시불안과 경기하강 우려까지 겹쳐 있다. 정치사회적 측면에서도 집권세력의 잇따른 자충수와 편중인사 논란 등으로 현정부에 대한 전반적인 여론도 출범초기에 비해 눈에 띄게 나빠졌다. 경제 곳곳에 ‘빨간 불‘이 켜지면서 벌써부터 진념 경제팀의 한계를 질타하고 심지어 교체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경제팀 수장으로서 진장관의 운명은 결국 앞으로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와 그가 내놓은 승부수인 공적자금 추가조성과 2차 금융구조조정 결과에 달려 있다고 보인다. 과거 몇차례 ‘위기관리’에 남다른 능력을 보여주었던 진장관이지만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은 낙관을 장담하기에는 불확실한 변수가 너무 많다. 그가 경제관료로서는 사실상 마지막 승부에서 승리를 거두고 ‘화려한 은퇴’를 할지, 아니면 치명상을 입고 씁쓸한 패배의 눈물을 흘릴지는 아직 그 자신도 모를 것이다.



주간동아 2000.10.12 254호 (p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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