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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 먼저냐, 정권 재창출이 먼저냐

여당 내부 상반된 두 시각…‘개혁 지표’와 ‘민심 지표’ 사이서 갈등 심화

개혁이 먼저냐, 정권 재창출이 먼저냐

개혁이 먼저냐, 정권 재창출이 먼저냐
9월27∼28일 민주당에서는 정반대되는 두 갈래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27일에는 의원 연구단체인 ‘재정경제연구회’(회장 장재식 예결위원장)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개혁 속도 조절론’이 쏟아진 반면, 하루 뒤인 28일의 ‘열린정치 포럼’ 간담회에서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순서로만 보자면 열린정치포럼 간담회 자체가 전날의 주장을 뒤엎기 위해 열린 것처럼 보일 정도. 그러나 두 모임 모두 오래 전부터 예정돼 있었던 것임을 감안하면 그렇지는 않다. 다만 이 두 모임은 김대중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에 대해 민주당내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개혁에 대해 상반된 입장의 의원들 논지가 우연하게도 같은 시기에 열린 두 모임을 통해 표출된 것.

먼저 전윤철 기획예산처 장관을 초청한 재정경제연구회의 ‘개혁 속도 조절론’부터 살펴보자. 개혁 속도 조절론은 “국민들 사이에 ‘개혁 피로감’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빨리 개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입장.

등돌리는 민심… 정권 재창출 위기감

이같은 주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개혁은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집권 초반기에 해야 하는데 개혁이 중반 이후까지 지속되면서 국민이 불안해하고 공무원이나 공기업 관계자들도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이다”(박병윤 의원) “개혁하면 서민층이 잘 산다고 했지만 3년이 지났는데 경제는 더 어려워지고 일거리도 없으니 피로감을 느낀다. 기존의 구조조정도 지지부진한데 또 3차 구조조정을 한다니 국민 불신이 대단하다”(강현욱 의원) “원래 가진 자들이 느끼는 게 개혁 피로감이었는데 이제 못 가진 자들도 피로를 느낀다. 정책 입안자들이 국민들의 피로감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김덕규 의원) 등등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속적이면서도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용감한’ 발언들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개혁 속도 조절론이 나오는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정권 재창출에 대한 위기감이다. 다시 말해 의약분업 등 잇따른 개혁조처들이 실효는 별로 없이 국민들만 피곤하고 짜증나게 하고 있고, 그 결과 국민들로 하여금 정권에 등을 돌리는 ‘비토 세력’만 키우고 있다는 것. 박병윤 의원이 “정권 재창출을 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추진해 왔던 개혁이 수포로 돌아가는 만큼 진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면 안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한 것에 이들의 속내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영남권의 지지 등 ‘펀더멘털’은 좋으면서도 거시지표(이회창 후보)를 과신해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지만, 우리는 펀더멘털도 거시지표도 다 나쁜데 이상적인 개혁만 앞세운다고 국민들이 좋아하고 정권 재창출이 되겠느냐”고 말한다. 한 당직자 역시 “의약분업 실시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정부가 도대체 각종 개혁 정책을 밀고 나갈 힘이나 있느냐”고 반문한다. “우리 국민들은 총체적인 개혁은 다들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집 앞에는 도로나 병원 등의 공공 시설도 짓지 못하게 하는 등의 극심한 ‘님비 현상’에 젖어 있기 때문에 개혁이 완수될 바탕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공개적인 발언에는 한가지 사항이 빠져 있다. 다름 아니라 ‘이같은 현실을 김대통령이 모르고 있거나, 알아도 모른 체한다’는 것. 다들 여기까지 말하고 싶지만 애써 참는 분위기다. “김대통령이 역사에 남길 치적을 위해 정권 재창출엔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이같은 분위기는 동교동계 일각에서도 감지된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당은 대통령의 안중에 없는 듯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당에는 이런 시각과 정반대의 입장을 가진 의원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주로 ‘열린정치포럼’ 등의 개혁파 의원들이다. 이들은 “개혁이 어정쩡하게 머물러 있는 데서 민심 이반이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철저한 개혁을 추진하면 민심도 돌아오고 정권도 재창출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9월29일 재벌개혁론자인 김종인 전 청와대경제수석을 초청한 열린정치포럼 간담회에서도 이들은 “체감경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은 구조조정이 온전히 이뤄지지 못한 때문”(김근태 최고위원) “구조조정은 워크아웃 기업 등 기업의 생사를 분명히 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김영환 의원) 등 보다 높은 재벌개혁과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논지를 폈다.

지난 9월22일 의약분업 연기론을 주장하는 일부 최고위원들을 겨냥해 열린정치포럼이 “임의분업 실시 및 의약분업 유보주장은 의료개혁을 후퇴시키고 의약분업 정착에 혼선을 초래한다”며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한 것과 똑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당시 “의약분업을 유보하기보다는 확고히 정착시키는 것이 대선에서도 유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해찬 정책위의장은 당내의 개혁조절론에 따라 자리를 내놓을 생각도 하고 있다.

물론 정부 경제팀의 입장도 후자 쪽이다. 재정경제연구회에 초청됐던 전윤철 장관은 “김포공항에 나가보면 해외여행 나가는 사람이 97년 이전으로 늘었다. 개혁 피로감은 개혁 저항세력이 느끼는 것”이라며 “대외신인도를 높이려면 더욱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맞섰다. “금융과 기업개혁이 잘 되려면 정치권이 도와야지 개혁 피로감을 탓하면 안 된다”고도 반박했다.

‘할 수 있는 개혁만 정리하고 나머지는 후일(정권재창출 이후)을 기약하자’는 현실론자들의 주장과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없다’고 주장하는 개혁론자들의 주장 중 어느 쪽이 더 정당한지를 따지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주장들은 결국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되어 변별점을 따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양쪽 모두 나름의 명분이 뚜렷하다.

그러나 개혁 속도를 조절하든 중단없는 개혁을 하든 한가지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그 어떤 개혁이라도 국민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그 어떤 개혁이든 국민이 지지하지 않는 개혁이란 성공할 수 없다. 국민의 준비가 선행되고 그 토양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먼저 가이드 라인을 설정한 뒤 국민들에게 따라오라고 하는 방식은 곤란하다. ‘명분이 있는데 왜 따라오지 않느냐’고 불평해서도 곤란하다. 그래서는 대통령이나 정권 차원의 욕심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더구나 우리는 개혁주체세력이 그리 두텁지도 못하다. 국민들의 준비와 동참이야말로 개혁에 가장 필수 불가결한 ‘펀더멘털’이다”고 강조한다. 결국 ‘내 재임 때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얘기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개혁의 고통분담을 확실히 해야 ‘나만 당하는 것 아니냐’는 저항을 없앨 수 있다”면서 “개혁 주체의 도덕성과 신뢰감이 먼저 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대통령이 금융-기업-노사-공공 부문의 4대 개혁 완료 시점으로 잡은 내년 2월까지는 이제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의약분업 문제는 아직도 원점에서 맴돌고 있고, 금융권은 이제 막 새로운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기업들의 버티기도 여전하다. 추가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국민들의 ‘조세 저항’ 기류도 심상치 않다. ‘개혁 지표’와 ‘민심 지표’ 사이에 선 김대통령의 고민도 깊어질 것만 같다.



주간동아 2000.10.12 254호 (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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