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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오동잎이 떨어지고 있다

오동잎이 떨어지고 있다

오동잎이 떨어지고 있다
민망한 얘기지만, 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글자 그대로 난장판이다. 누구보다 법과 질서를 지키는데 앞장서야 할 대학생들이건만 실상은 무법천지를 자행하고 있다. 이를 견제하고 훈육해야 할 대학교수들은 침묵 속에 방관하고 있다. 어느 대학이든 가보라. 옆에서 강의를 하든 말든 확성기와 꽹과리 소음이 진동한다. 학교의 얼굴이라 할 정문은 덕지덕지 붙은 온갖 유인물로 뒤덮여 있다. 총장실은 1년에도 몇차례씩 불법점거를 당한다. 그래도 누구 하나 제지를 못한다. 법과 원칙을 주장했다가는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되기 십상인 것이 오늘 우리의 대학 현실이다.

어디 대학뿐인가. 온 사회가 약육강식의 자연상태를 방불케 한다. 법이 있어도 법이 법 역할을 못하니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연속이다. 법 어기는 것을 게임 즐기듯 한다. 법망을 피해 가는 재주가 처세술의 기본이 되고 있다. 우직하게 법을 지키는 사람은 요령부득이요, 답답한 사람으로 평가절하되고 있다. 그러니 누가 법을 지키려 할 것인가.

‘대도무문’(大盜無門)인지, 검찰청의 포토라인에 들어선 사람들은 한결같이 당당하다. 돈 몇 푼 훔쳤다고 경찰서에 잡혀온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느라 안절부절못하는 것과 참으로 대조적이다. ‘어디 나만 나쁜 짓 했는가, 재수 없어 걸려들었을 뿐이다’는 생각이 ‘대도’로 하여금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도록 만드는 것이리라.

왜 이렇게 되었는가. 법을 만드는 사람, 그 법을 집행하는 사람부터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대 희랍의 트라시마코스가 강변했던 그대로, 법이라는 것이 강자(强者)의 이익을 포장한 수사(修辭)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 공정성에 의문이 생기면 법은 그 위력을 잃고 만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법의 타락, 그 선봉에 검찰이 서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야당 총재로부터 ‘보다보다 이런 검찰은 처음 본다’는 말까지 듣게 된 형편이니, 그래서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못할 상황이 되었으니 법의 엄정한 집행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검찰에 부탁할 것이 하나 있다. 권력의 시녀 되기를 그만두라는 무리한 부탁은 아니니 안심하기 바란다. 앞으로 검찰은 이런저런 회의를 하면서 괜스레 엄숙한 표정을 짓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국민은 가뜩이나 피곤하다. 그런 가식적인 얼굴이라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 그나마 국민에게 봉사하는 길이 될 것이다.

명색이 집권당인데, 민주당이 기어이 일을 저지를 모양이다. 자민련을 국회 교섭단체로 만들어주기 위해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20석에서 10석으로 하향조정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민주당이나 자민련이 구태여 말도 안되는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논리를 둘러대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당리당략에 따라 법을 고치려 한다는 원색적 욕망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으니 이 일의 부당함을 논증하기도 쉽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 법도 필요하다면 고쳐야 한다. 문제는 명분이다. 공익을 전제하지 않은 법은 그 존재의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집권당이나 검찰이 무슨 얼굴로 ‘대도’를 탓할 것인가. 법질서를 지키지 않는 우리의 차세대 주인공들에게 무슨 논리로 그 잘못을 타이를 것인가. 어차피 법도 정의도 다 강자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수가 수의 힘을 믿고 아침에 만든 법을 저녁에 뒤엎는 조령모개(朝令暮改)를 거듭하는 현상을 ‘타락한 민주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예를 들어 ‘타락한 민주정’이 무너지고 나면 폭군정이 뒤따르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고 예단했다.

무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오동잎 한 잎 떨어지면 가을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주당이 ‘실패한 정당’과의 ‘불륜’에 눈이 멀어 교섭단체 요건을 낮추려 하는 것, 그래서 작은 일이 아니다.



주간동아 2000.06.15 238호 (p9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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