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6

2000.06.01

무대로 올라선 ‘들풀의 떨림’

  • 입력2005-12-05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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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로 올라선 ‘들풀의 떨림’
    “연주야 아무거라도 잎 한 장 있으면 되는 거고…. 지방 갈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유자나무 화분 작은 것 하나 끼고 갑니다. 미리 따가지고 가면 잎이 시들어서 소리가 안나거든요. 무대에 올라 화분을 보여주며 ‘이걸로 불랍니다’ 하면서 잎 한 장 따가지고 연주를 시작하면 박수갈채가 나오죠.”

    동백 사철 귤나무 유자나무, 요즘 아파트 베란다마다 하나씩 자리잡고 있는 벤저민과 행운목, 심지어 밥상 위의 상추까지 악기로 만들 수 있는 사람. 대한민국 유일의 풀피리 연주가 박찬범씨(52)의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시원시원하다.

    “사람이 오만 가지 잘하면 뭐하겠소? 풀피리 한 가지만 잘하면 되지.”

    전남 영암이 고향인 박씨는 8세 때부터 풀피리에 미쳤다. 아버지에게서 풀피리를 배울 때는 입술에 피가 나서 딱지가 생기고 다시 갈라져 피가 나고 굳어지기를 수 차례, 나중에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나올 만큼 굳은 살이 생겼다. 피를 쏟은 만큼 풀피리 소리도 달라졌다. 계면조의 구슬픈 가락이 자유자재로 구사됐다. 뱃속에서 끌어올리는 깊은 소리의 맛도 알게 됐다.

    이렇게 40년 넘게 연주활동을 해왔지만 풀피리는 여전히 호기심거리나 애들 장난 정도로 취급당했다. 박씨는 고교 졸업 후 목수일로 생계를 이으면서 동네 노인잔치나 청소년들을 위한 음악회에서 솜씨 발휘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입소문이 퍼져 제자들이 모여들고 그들은 숨은 명인 박씨를 세상 밖으로 내보냈다.



    97년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세계피리축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뒤 초청연주가 밀려들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을 하고, ‘강산풍월’ ‘설장구와 풀피리’ ‘시나위’ 등 작곡도 시작했다. 지난 3년 사이에 박씨는 어엿한 국악인으로 인정받게 됐지만 전통음악인 풀피리의 운명은 여전히 실낱처럼 끊어질 위기에 있다.

    그의 말대로 “풀피리 소리내기가 무지하게 어려워서” 도통 배우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대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마다 반드시 당부하는 말이 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악기 중에는 수천만원에서부터 수억원짜리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풀피리는 돈 한 푼 없어도 됩니다. 끝까지 해내는 정신,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돼요. 우리 민족은 아무리 배가 고플지라도 풀잎 뜯어 노래하는 정신을 가진 민족이오. 한번 배워보실랍니까?”

    종종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지만 일주일도 못 버티고 가버리는 통에 그의 가슴만 탄다. 입술이 쩍쩍 갈라지고 피를 쏟는 고통을 견디려 하는 젊은이들이 없다.

    맥이 끊길까봐 풀피리 명인은 애가 닳지만 그가 들려주는 ‘선구자’ 한 대목은 광야를 달리는 말처럼 힘차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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