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6

2000.06.01

K2만 남긴 ‘산악탱크’

  • 입력2005-12-05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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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2만 남긴 ‘산악탱크’
    ”이제는 K2다!” 8000m급 고봉 14좌 완등을 노리는 ‘산악탱크‘ 엄홍길씨 (40)의 목표물이 단 하나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가을 새 천년을 축하하기 위해 칸첸중가(8586m) 도전에 나섰다가 대원 두명을 잃고 철수했던 엄씨가 5월 19일 오전 9시 35분 드디어 칸첸중가 정상에 오름으로써 이제 남은 목표는 K2(8611m) 단 하나로 줄어들었다.

    엄씨는 ‘몰아치기 등반‘을 하는 알피니스트이기 때문에 K2 도전도 올해 안에 시도한다. 엄씨가 K2 등정에도 성공한다면 그는 한국인은 물론이고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그리고 세계에서는 여덟번째로 14좌를 완등한 ‘악우(嶽友)가 된다. 2000년을 21세기의 시작으로 본다면 21세기 최초로 14좌에 오른 ‘앞리니스트‘가 되는 것이다.

    ‘알피니스트‘ ‘알피니즘‘은 유럽의 알프스 산맥에서 나온 말이다. 알프스 고봉에 도전하는 유럽의 전문 산악인(알피니스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오르지 못한 봉우리가 없게 되자 보다 난해한 길로의 등반을 시도했다. 전인미답의 길로 정상에 오르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들은 ‘등정‘(登頂)이 아니라 ‘등로(登路)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1977년 고(故) 고상돈씨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를 때만 해도 등반은 ‘팀‘(한국대)위주였다. 하지만 유럽식 알피니즘이 유행하면서 이제는 개인의 기록을 위한 등반이 보편화됐다. 14좌 등정도 이러한 알피니즘의 한 갈래에 해당하는데, 이러한 알피니즘을 추구하는 한국 산악인으로는 엄씨를 필두로 현재 12좌에 오른 박영석씨와 8좌에 오른 한왕룡씨가 있다.

    알피니스트들은 동료가 사망해도 웬만큼의 큰 사고가 아니면 개의치 않고 정상으로 진격한다. 이들은 죽고 사는 것은 각자의 실력과 운(運)으로 결정된다고 믿는 냉혹한 프로들이어서 ”동료의 죽음은 가슴에 묻는다”고 말한다.



    엄씨가 동료 박무택대원과 함께 칸첸중가 정상도전에 나선 5월 18일은 네팔력(曆)으로 ‘부처님 오신 날‘ 이었다. 이날 엄씨 팀은 인도 원정대와 연합군을 구성했다. 칸첸중가는 엄씨의 라이벌인 박영석씨가 지난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발을 올려놓은 산이다. 엄씨로서는 지난 해 한 번 실패한 적이 있으므로 이번에는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날씨가 나빠지자 인도팀이 철수했다. 그러나 엄-박 팀은 8300여m 지점에서 ‘비박‘에 들어갔다. 비박이란 텐트도 없이 침낭에만 들어가 밤을 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19일 오전 4시 50분 다시 공격에 나서 엄씨가 먼저 정상에 오르고 이어 박씨도 한국인으로서는 세번째로 정상에 올랐다.

    칸첸중가도 힘든 산이었지만 K2는 더 어렵다. 날씨 변덕이 심해 숱한 사고가 일어난다. ‘산악탱크‘는 과연 K2마저 정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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