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6

2000.06.01

유럽 연방국가 가능할까

피셔 獨 외무 발언으로 논란 가열…유럽내에서도 서로 입장 달라 말만 무성

  • 입력2005-12-05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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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연방국가 가능할까
    독일 연방의 외무장관인 녹색당 소속 요시카 피셔(J. Fischer)는 얼마 전 유럽의 미래와 관련, 장기적으로는 연방국가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혀 국제적인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주 금요일 베를린의 훔볼트 대학에서 개최된 연설에서 피셔는 유럽 통합의 진전을 위해서는 유럽연합(EU)내 소수의 ‘핵심 국가’가 ‘전위적’ 역할을 담당, ‘헌법조약’을 결성하고, 이것을 통해 유럽연방과 각 국가들 사이에 확실한 ‘자주권 분할‘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약 30개국 규모로 확대될 EU는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으며 시민들의 지지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셔 제안의 핵심은 직접선거에 의한 대통령제와 양원제도다. 제1의회는 직접 선출된 의원으로, 이들은 개별 국가의 의회에 속하는 의원들로 구성된다. 제2의회는 미국의 제도와 유사한 상원이거나, 아니면 독일의 경우처럼 각 정부의 대표자들도 구성될 수도 있다. 피셔는 또한 집행기구에 해당될 유럽 정부 구성에도 두 가지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 하나는 현재의 각료이사회를 유럽 정부로 발전시키자는 것인데, 이것은 곧 EU 회원국의 정부들이 유럽정부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 집행위원회에서 출발하여 보다 광범위한 집행권을 가진 대통령제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피셔의 연설에 대해 유럽 각 국은 상이한 반응을 보였는데, 프랑스와 벨기에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반(反) 유럽 경향이 강한 영국 런던에서는 피셔가 중요한 논제를 제시했다고 논평했지만 ‘핵심-유럽’에 대해서는 회의적 입장이라고 토니 블레어 총리의 한 대변인이 데일리 텔레그래프지를 통해 밝혔다. 블레어의 대변인 켐펠은 독일의 한 신문에서 “우리나라의 유럽정책 비판자들은 피셔의 제안을 좋은 먹이 감으로 여길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의 예상대로 피셔의 강력한 연방국가적 유럽의 미래상은 영국의 유럽회의론자들의 불안을 야기시켰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지는 ‘독일은 유럽-초국가를 외친다’는 제목으로, 독일이 영국을 소외시키려고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영국은 EU에 속하면서도 아직 단일화폐 연합에는 참가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는 피셔의 계획이 풍부한 아이디어라고 예의바른 박수를 보내면서도, 실행 면에서는 미래의 가능성 정도로 평가절하 했다. 그러나 프랑스 외무장관 베드린(Vedrine)은 현재로서는 대부분의 프랑스 국민들이 수락할 수 없는 연방국가 프로젝트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의욕적인 제안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이 계획이 곧 개최될 EU-정부간 회담의 협상테이블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라며 한발 물러서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르몽드지는 “피셔 장관, 고맙소(Danke Sch n, Monsiuer Fischer)”라는 독일어 제목으로 그의 연설이 유럽 미래에 대한 논의를 새롭게 연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다수 정치가들처럼 르몽드지도 유럽 국가들 사이에 새로운 분열의 위기가 조성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바로 이 우려를 증명하듯 벨기에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내 작은 국가들은 핵심 국가와 관련해 거부 반응을 보였다.

    핀란드의 외무장관 투오미오야는 EU의 유연성이 어떤 핵심부대가 박자를 결정해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며 헬싱키의 한 신문의 기고를 통해 ‘우리는 EU 안에서 모두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피셔의 ‘전위적 핵심 국가’에 대한 거부 반응은 아일랜드 그리스 오스트리아에서도 표출되었다.

    독일 내의 반응 역시 엇갈려 있다. 야당인 기민당은 그의 제안이 불투명하고 모순이 많으며, 유럽정책 적 토론에서 여러 가지 폭발력을 안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외무장관은 이것을 명료하게 다듬어 연방의회에 토론 안건으로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독일 언론들은 대체로 평가대신 사실보도로 제한하는 조심성을 보였다. 이는 사안의 미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피셔의 제안이 이미 학자들 사이에 진행된 토론 내용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셔의 연설은, EU의 동유럽 확대를 위해 필요한 제반 기구들의 개혁안을 놓고 곧 열리는 정부간 회담을, EU의 장기적 전망에 대한 토론 기회로 삼기 위한 전초작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해 단일화폐 실시와 함께 시작된 본격적인 유럽 통합은 간과할 수 없는 몇 가지 문제와 중요한 과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단순한 단일 내수시장과 단일 화폐만으로는 대내외적 외교 안보 문제에 전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코소보 전쟁을 통해 절감했다. 특히 독일 외무장관 피셔는 미국의 힘과 논리에 눌려 자국의 방위 외에는 어떤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는다는 국가 기본 원칙까지도 포기하고 전쟁에 참여했던 쓰라린 경험을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EU는 공동의 안보정책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이는 EU 회원국 사이에서 보다 강력한 정치적 결속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EU는 동-서 냉전의 종식과 함께 유럽 내 평화를 보장할 EU의 동유럽 확대를 결의했다. 이렇게 되면 유럽의 경계도 대략 확정이 되는 셈인데 궁극적으로는 27∼30개까지 회원국 수가 늘어날 것이다. 이는 원래 EU 6개국을 위해 창설된 EU 기구들의 업무 수행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다. 따라서 현재 15개국으로 구성된 EU는 13개 가입 신청국 중 우선 수용(폴란드 헝가리 체코 에스토니아 슬로베니아 사이프러스)을 위해 늦어도 2003년 1월1일까지는 중요한 몇 가지 개혁안을 구체화하고 실행해야 한다. 개혁안의 세 가지 요점은 △집행위원회의 새로운 구성 △이사회 내의 표결권 분배 △다수결 원칙(현재는 거부권이 광범위하게 인정된다)의 확대 등이다. 다음에 개최될 정부간 회담에서는 이러한 개혁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이며 장기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확대된 EU는 새로운 질서 구조의 확립 없이도 분열의 위기를 겪지 않고 운영될 것인지 △상이한 언어와 문화 그리고 역사를 가진 각 국들이 갈등 없이 평화적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있을 것인지 △유럽은 미국에 대해 독자적인 경제-정치적 단위로서 대내외적으로 외교안보에 대한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의 문제들이 그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제안이 유럽연방제라는 피셔의 정치적 밑그림이다. 그러나 단일화폐제 실시 후(EU 15개국 중 11개국만 참여) 달러에 대해 20% 정도 화폐 가치를 상실한 유로화를 놓고 유럽통합 회의론자들의 목소리가 시끄러운 지금, 그의 제안에 대한 허심탄회한 평가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그리고 민족국가 적 전통이 여전히 뿌리깊은 유럽에서 국가 주권의 일부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크 들로와(Jacques Delors)도 이미 말했듯 ‘유럽의 연방주의는 중앙 정부와 지역 독립성 사이의 완벽한 타협안’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장기적으로 EU는 연방국가안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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