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6

2000.06.01

과거와 현재의 삶 지금 ‘충돌중’

길이 3.5km 폭 40m 동양 최대 판축 토성…‘개발이냐 보존이냐’ 팽팽한 대립

  • 입력2005-12-05 10:5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과거와 현재의 삶 지금 ‘충돌중’
    풍납토성(사적 11호·광주 풍납리 토성)은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5월13일 경당연립아파트재건축조합(조합장 팽석락)이 굴착기를 동원, 유적을 훼손한 이후 이 문제는 학계와 문화계의 최대 현안으로 등장했다.

    조합측은 송파구 풍납동 136번지 일대에 아파트를 건축하기에 앞서 한신대 박물관팀(발굴책임자 권오영교수)에 의뢰, 발굴 조사를 벌이던 중이었다. 조합측은 “발굴팀이 중요 유구(웅덩이)가 아닌 곳에는 야적장을 만들어도 좋다고 해 공사를 시작했다”고 밝혔지만 “풍납토성 발굴현장이 훼손됐다”는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풍납토성은 서울 송파구 풍납동 136번지 일대 3.5km(현재 2.2km 존재)에 걸쳐 만들어진 폭 40m, 높이 9m에 달하는 동양 최대의 판축토성(나무 기둥을 세우고 나무판을 댄 뒤 진흙 등을 켜켜이 쌓아 만든 성)이다. 풍납토성이 사적으로 지정된 것은 1963년(당시 당국은 성벽만 사적으로 지정). 그러나 1997년 1월 선문대 이형구교수가 풍납동 현대아파트 공사 현장에 몰래 들어가 다량의 백제 유물들을 발견,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신고하면서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학계는 “풍납토성은 한성백제(BC 18~AD 475년)의 왕성인 하남 위례성”이라는 이교수의 주장(83년부터 주장)에 주목했다.

    한신대측의 발굴 조사 이후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면서 학계에서는 이 교수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발굴조사 전까지는 풍납토성이 백제왕성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30%였다면 지금은 70% 정도”라고 전했다. 풍납토성을 백제왕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중국에서 만든 청동 자루솥과 동경, 유리구슬, 금제 귀고리 등 상당한 신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문화재가 출토 △토기 항아리에서 궁중 최고위직을 나타내는 관직명인 ‘大夫’라는 명문 발견 △바닥 폭 40m, 높이 9m로 연인원 수십만명으로 예상되는 상당한 공력을 들여 성을 축조 △왕실 제사 유적으로 추정되는 동-서축 16m, 남-북축 14m의 여(呂)자형 대형 건물터 발견 △기와와 건물바닥에 까는 전돌, 고대국가에서 왕이 주도하는 제사 때 희생물로 쓰인 말뼈 등 출토 △풍납토성에서 채취한 목탄 및 목재의 국립문화재연구소 분석 결과 축조 시기는 BC 2세기에서 AD 3세기 사이 등.



    이들의 주장대로 풍납토성이 하남 위례성으로 확인된다면 고대사 연구에 일대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 3세기경 백제가 이미 강력한 왕권 체제를 갖추고 있었음이 밝혀져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록(온조왕 1년인 BC 18년에 나라를 건국했다)이 사실로 인정받게 된다. 백제의 건국 시기가 지금 알려진 것보다 300년 이상 올라가는 것. 학계에서는 지금까지 백제의 건국 시기를 AD 4세기 전후라고 추정해 왔다. 이렇게 되면 신라의 건국 시기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학계 인사들은 “풍납토성 전체를 매입해서라도 유적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대중대통령도 지난 5월16일 국무회의에서 “보존가치가 있다면 돈이 문제가 아니다”고 말해 보존하는 쪽에 힘을 실었다. 열린문화운동연합 등 15개 시민단체도 5월16일 ‘풍납토성 보존을 위한 국민연대’(약칭 국민연대)를 만들고 “정부는 풍납토성 전지역을 유적지로 지정하라”고 촉구했다. 국민연대는 앞으로 시공자가 발굴 비용을 부담하게 돼있는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하는 데 모든 역량을 모을 계획이다.

    그러나 43만8000평에 이르는 풍납토성 내부에는 이미 주택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상태. 현재 4194가구, 4만10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송파구청 문화계 이현식씨는 “63년까지는 50가구 정도가 거주했는데 70년대에 인구가 늘어났고, 90년대에 집중적으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가구수도 늘었다”고 말한다.

    비상이 걸린 주민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게 됐다”고 호소한다. 주민들은 문화재 경관 보호를 이유로 고도 제한에 묶여 수십년 동안 재건축을 하지 못하다가 지난해 5월 관련규정이 삭제되면서 재건축을 추진해왔다. 현재 성내에는 골조 공사중인 조합이 한 곳, 송파구에서 조합인가 및 심의를 마친 곳이 세 곳, 건축허가는 물론 분양까지 마친 곳이 한 곳, 조합인가를 기다리는 곳이 여섯 곳에 이른다. 주민들은 “문화재도 좋지만 우선 사람이 살아야 할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풍납토성 부근에는 건축제한에 묶여 재래식 화장실과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들이 아직도 많다.

    ‘유적훼손 사건’을 일으킨 재건축 조합원들이 겪는 고통은 주민들의 아픔을 보여주는 한 단면. 팽석락조합장은 “아파트를 지을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태에서 월 100만원 이상의 이자를 부담하는 조합원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고 항변한다. 1994년 설립인가를 받은 조합측이 아파트 2개동 221세대 공사에 들어간 것은 1999년 6월. 문화재보호법 44조(매장문화재는 발굴할 수 없으나 문화재청장의 허가에 따라 발굴이 가능하다. 이 경우 소요 비용은 공사시행자가 부담한다)에 따라 1999년 9월14일부터 90일간 한신대 박물관팀의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발굴비용 1억4000여 만원은 법에 따라 시공사인 ㈜대동측이 부담했다.

    이때만 해도 조합원들은 ‘당연히 거치는 절차’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大夫’라는 명문이 새겨진 토기, 대형 건물터 등이 속속 발견되면서 발굴기간은 계속 연장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문화재청은 “풍납토성 내부 건설공사 중지”를 지시하고, 국가 발굴을 건의했다. 조합원들의 애가 타는 가운데 시공사마저 부도났다. 조합원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발굴팀이 요구한 추가 발굴비용 1억2000만원을 부담키로 했다.

    4월25일 현장에서 열린 제3차 설명회 때 조합원들은 “이자 부담 때문에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 제발 우리 좀 살려달라”며 발굴팀에 눈물로 호소했다. 주민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던 발굴팀은 백방으로 발굴비용을 구하기 위해 뛰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당국의 방관 속에 주민들과 발굴팀의 충돌 외에는 길이 없는 국면으로 상황이 흘러갔다. 3월18일부터 시작된 3차 발굴기간이 40일쯤 지난 5월초, 발굴팀은 “8800여 만원을 더 주지 않으면 발굴을 진행할 수 없다”고 조합측에 통고하고 현장에서 철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것이 ‘5·13 유적훼손 사건’. 팽조합장은 “조합원 가운데는 시공이 계속 늦춰지는 까닭에 이주 자금마저 잃어 전세에서 월세로, 지금은 거의 거지 상태가 된 사람도 있다”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조합측은 아파트를 짓는 것이 최선이고 보상받는 것은 차선이라는 입장이다.

    풍납토성 내에 재건축을 추진중인 미래마을과 외환은행 주택조합도 애가 타는 것은 마찬가지다. 미래마을 나상길전무는 “공사가 완전 중지되면서 조합원들의 이자 부담만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1억원에서 2억원까지 은행 대출을 받았는데 마냥 기다리라면 어쩌란 말이냐”고 하소연하고 있다. 만약 보상이 결정돼도 조합원들이 거주할 수 있는 땅과 이자를 정부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풍납 1, 2동 66명의 통장들은 5월18일 대책회의를 갖고 사표를 제출키로 의견을 모았다. 주민대책위원회(위원장 이병용 송파구 구의원)도 만들어졌다. 상황 전개에 따라 거리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학자들이나 주민들이 공통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당국의 무성의다. 5월18일 장관 면담을 위해 문화관광부를 찾았던 6명의 주민대표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돌아섰다. 이씨는 “장관이 없으면 차관, 차관이 없으면 국장 등 어느 정도 책임 있게 말할 사람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사무관이 나왔더라. 도대체 우리를 무엇으로 보는지 모르겠다”며 서운해했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어느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국가와 행정기관의 잘못이다.”(풍납 1동 백제약국 주인)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주민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부동산중개소 운영 주민 전양온씨)는 등의 반응도 나온다. 토성 255m는 60년대 이미 불하돼 흔적조차 없다. 주민들은 “정부가 토성을 팔아먹을 때는 언제고…”라며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송파구 문화재위원회 엄창섭위원장은 “정부가 사적으로 지정할 때 땅을 사놓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당국의 단견을 지적했다.

    “풍납토성 전체를 매입하기 위해서는 5조원 가량이 들 것”이라는 보도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그렇다면 평당 150만원 정도로 계산한 것인데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고 말했다. 이 지역 땅값은 시세가 평당 최하 350만원에서 1000만원 선. 풍납동 지역 부동산 전문가들은 “매입에만 최하 15조원 이상 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서정배 문화재청장은 “보존결정이 나면 어떤 방법으로라도 주민의 재산권을 보호한다는 것이 정부의 의지”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보존 결정이 난다 해도 △완전 보존이냐, 일부 보존이냐 △재원 마련 △보상 기준 등 복잡한 사안이 기다리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그만큼 많은 셈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