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6

2000.06.01

린다김, 20년 동안 사업권 확보?

불평등조항 수두룩…항공기 값 200만 달러 더 주고 조종사 훈련비까지 부담

  • 입력2005-12-05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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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다김, 20년 동안 사업권 확보?
    서울 지하철 2호선 방배역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사람은 방법을 찾아내고, 무엇인가 하기 싫은 사람은 구실을 찾아낸다.’(앙리 마르뎅)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일을 성사시키는 방법을 찾는데 몰두하고,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그 일을 그만두게 할 핑계만 찾는다는 뜻이다. 이 글귀는 백두사업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두 세력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린다김(김귀옥·47)은 백두사업이 제대로 진행되도록 하려고 과감히 서울에 들어온 것이고, 한미 연합 감청전문부대인 쭛부대 주력은 이 사업을 중지시키거나 수정하게 하려는 구실을 찾아왔던 것이다.

    린다김과 쭛부대간의 갈등은 96년 6월 백두사업 계약이 체결됨으로써 비롯되었다. 백두사업과 관련된 자료는 입수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지만 설사 입수하더라도 내용이 너무 전문적이라 난해한 암호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계약서에서 잘못된 부분, 즉 우리가 너무 많이 양보해 불평등 계약을 초래한 부분을 찾아내는 것은 아주 어렵다.

    우리의 준비 부족 때문에 불평등하게 계약된 사례를 찾으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백두사업을 가장 심도 있게 추적한 사람은 하경근의원(한나라당)이다. ‘주간동아’는 백두사업 계약서를 입수해 하의원의 도움을 받아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을 시도했다.

    문제점은 계약서 제3부인 ‘상품 설명’(Commidity Description) 부문 중에서 많이 발견된다. 백두 정찰기용 항공기로 선정된 호커 800XP의 제원 정보를 담고 있는 제3부 제4편인 항공기(Aircraft Configuration) 부문부터 살펴보자(사진 ①).



    첫번째 문제점은 제2항 기본 설계 자료(Basic Design Data)의 하부 항목인 ‘2.1 치수(Dimensions)’ 부문에서 발견된다. 2.1 치수 부문엔 호커 800XP 항공기의 날개와 기체-객실-출입문-창문-비상구의 크기에 관해서는 수치까지 밝히며 자세히 서술돼 있다. 예를 들면 출입문(Entry Door)은 높이 4피트 3인치에 폭은 2피트 3인치로 소개돼 있다. 하지만 백두 정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대 탑재용량’(Maximum Payload)과 ‘객실(Cabin)의 크기’다.

    일반적으로 감청기는 크고 무거울수록 성능이 좋다. 따라서 백두 정찰기도 객실이 넓고 탑재중량이 커야 더 좋은 감청 능력을 구비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계약서에는 객실 크기는 나와 있으나 ‘단팥 없는 찐빵’처럼 최대 탑재중량 부분이 누락돼 있다. 왜 계약서에 최대 탑재중량이 빠졌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속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계약 당시 우리 국방부에 정찰기는 물론이고, 계약 업무에 정통한 전문가도 없어서 이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는 대답만 있을 뿐이다.

    두번째로 문제가 된 부분은 항공기 가격이다. 백두 정찰기는 E시스템스가 생산한 감청기와 레이시온 항공기 제작사가 생산한 호커800XP 항공기를 결합해 만들어진다. 호커 800XP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부호들의 자가용 비행기로 쓰인다. 따라서 이 비행기를 정찰용으로 쓰려면 객실 안에 있는 호화판 의자를 뜯어내고 군사용 레이더를 새로 설치하는 등 내부구조를 변경해야 한다.

    계약서는 이렇게 군용으로 개조한 호커 800XP를 ‘플랜트 4 그린’(Plant 4 Green)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플랜트 4 그린’에 감청기를 탑재하면 백두정찰기가 되는데 계약서에는 이러한 항공기를 ‘그린 이큅드’(Green Equiped)로 표기하고 있는 것 같다.

    96년 5월 레이시온 항공기 제작사가 공개한 표준형 호커 800XP의 대당 가격은 1099만5000달러였다. 그런데 계약서에 표시된 ‘그린 이큅드’의 가격은 이보다 200만 달러(18% 인상)가 높게 책정돼 있다. 하의원은 “민수용 호커 800XP에서 ‘플랜트 4 그린’을 거쳐 ‘그린 이큅드’로 바꾸는 과정에서 변경되거나 추가된 사양이 그리 많지 않은데 왜 이렇게 가격이 높게 책정됐는지 궁금하다”며 의문을 제기한다.

    세번째로 제3부의 제6편 조종과 정비 훈련(Training) 부문을 살펴보자(사진 ②). A항으로 표기된 조종사 훈련 부문을 보면 98년 6월부터 99년 9월 사이에 미국은 장차 백두 정찰기를 조종할 8명의 조종사를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국제비행안전학교(Flight Safety Inter-national)에서 훈련시키는데, 조종사들이 미국 체류 중 소요되는 여비와 자동차 임대비, 휴가비, 항공기 조작비용(aircraft operating expenses), 그리고 보험료를 한국 정부가 지불한다고 되어 있다.

    정찰기 가격을 지불한 나라가 조종사 훈련비까지 지불하는 것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뒤늦게 이런 문제를 발견하고 미국과 재협상을 벌여 항공기 조작비용만은 한국이 지불하지 않기로 재조정했다. 그러나 항공기 조작 훈련시 사고를 대비해 가입하는 보험료는 한국 정부가 부담키로 했다.

    이러한 문제와 비교되는 것이 백두사업 진행 상황을 감독하기 위해 미국에 파견된 ‘주미 백두사업단’에 대한 E시스템스 측의 태도다. 주미 백두사업단은 E시스템스 입장에서 보면 감시자다. 그래서인지 E시스템스 측은 주미 백두사업단원의 미국 체류 비용은 그들이 부담했다. 잘 보여야 하는 감독요원들의 체제 비용은 부담하면서, 정찰기 거래와 패키지로 움직여야 하는 조종사 훈련비는 한국 정부에 부담시킨 E시스템스 측의 태도에서 철저한 장사꾼 기질을 엿볼 수 있다.

    E시스템스가 제작한 감청기와 레이시온 항공기 제작사가 생산한 호커 800XP를 결합해 책임지고 백두 정찰기를 완성할 회사는 E시스템스다. 감청기와 항공기를 결합시키면 감청기의 전기적 신호가 항공기 조작 시스템에 영향을 주고, 반대로 빠르게 돌아가는 항공기 엔진은 감청기에 영향을 준다(여객기를 타면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핸드폰을 끄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둘을 결합할 때 둘 사이의 간섭현상을 없애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데 이것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한다.

    일반 제트기인 호커 800XP에 감청기를 실어 정찰기를 만든 것은 미국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따라서 과연 E시스템스가 약속한 날짜에 백두 정찰기를 완벽하게 조립해 줄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계약서에는 E시스템스가 납기를 지키지 못할 경우 금전적인 보상(penalty)을 요구한다는 조항이 누락돼 있다. 반면 백두 정찰기 조립을 끝냈음에도 우리측이 인수를 지연하면 하루 5만여 달러의 고액 연체료를 지불하도록 돼있다. 관계자들은 “구매자의 책임 이행만 강조하고 판매자의 계약 불이행에 대해서는 책임을 추궁할 수 없게 한 백두사업 계약은 불평등 계약의 전형”이라고 지적한다.

    많은 사람들은 린다김이 이양호씨와 맺은 사업상의 관계를 스캔들로 몰아가려는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저항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린다김이 진짜로 저항하는 것은 “백두사업 계약이 불평등하다”며 이를 중지시키거나 수정하려는 세력들이 만든 여론이다.

    린다김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쭛부대장을 지낸 한 장성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는 지상 감청 장비만 운용해 봤기 때문에 항공기에 탑재한 감청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런 그가 정찰기에 대해 안다면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반대했느냐”며 맹렬히 비난했다.

    백두사업 계약서에는 E시스템스 측은 향후 20여 년 동안 백두 정찰기에 필요한 부속을 계속 공급한다는 내용이 있다(사진 ③). 무기 시장 정보에 밝은 사람들은 무기를 인도할 때의 이득보다 향후 수십년간 부속품을 공급하고 정비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서 나오는 이익이 훨씬 크다고 말한다. 한 소식통은 “린다김이 군기유출 부문에 대해 처벌받기 위해 서울에 온 것도, 또 백두사업이 스캔들화하자 이를 진화하기 위해 직접 언론에 얼굴을 내민 것도 모두 백두사업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백두사업을 살리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찾고 있는 린다김과, 이 사업을 수정하거나 중지시키기 위해 구실을 찾는 세력은 지루한 샅바 싸움을 벌일 것이다. 하지만 백두사업 계약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세력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백두사업 계약서에 포함돼 있는 불평등 조항들이 수정될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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