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6

2000.06.01

‘새한’ 몰락은 족벌경영 탓?

조직 장악 실패한 이재관 체제 붕괴…막판 버티기도 물거품 '워크아웃' 체제로

  • 입력2005-12-05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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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한’ 몰락은 족벌경영 탓?
    삼성그룹의 친족회사인 새한그룹이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했다. 이로써 지난 97년 34세의 나이로 새한미디어 사장에 취임해 삼성가에서 가장 먼저 3세 경영의 막을 올렸던 이재관부회장이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퇴진하게 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부회장의 거취문제를 놓고 채권단과 이부회장측이 심각한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한사태의 내막과 앞으로의 전개방향에 대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새한사태가 불거진 것은 지난 5월11일 긴급이사회에서 사외이사진과 채권단의 강력한 책임추궁으로 이부회장의 퇴진이 결정되면서부터다. 12일 오전 사외이사진과 감사위원회측을 통해 “16일에 구조조정안을 발표한다”는 보도자료가 배포됐고 이부회장 측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자료는 바로 언론사에 배포돼 이부회장 체제가 완전히 끝난 것으로 비쳤다. 새한은 회장급 전문경영인을 외부에서 영입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기로 했다는 표현으로 이미 소유주 일가의 퇴진을 예고했다. 13일에는 신임 회장 선임이 확정단계에 들어가고 소유주에 대한 사재출연 압박도 가해졌다. 그러나 주말을 거치면서 새로운 회장으로 영입될 것이 확실시되던 박종률 SK고문의 선임이 백지화되고 소유주의 사재 출연은 검토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나는 등 이부회장쪽에 다시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5월16일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최정덕 새한 대표이사 부사장은 “이영자회장은 바로 퇴진하고 이재관부회장은 전문경영인 체제가 자리를 잡은 뒤 경영에서 손을 뗄 것”이라며 이부회장 체제의 유지를 밝혔다. 대신 현재 12개인 계열사를 3개로 통폐합하고 처분 가능한 자산과 사업부를 모두 매각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내용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특히 세계적인 구조조정전문기관인 KPMG에 전권을 일임하고 KPMG는 수천억원대의 구조조정기금을 조성해 직접 새한에 출자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결국 채권단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력으로 회생을 모색해 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때만 해도 이부회장이 버티기에 성공하는 것처럼 비쳤다.

    하지만 불과 이틀만인 18일 오후 긴급 소집된 이사회에서는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워크아웃을 신청하기로 결론이 내렸다. 이부회장 체제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동안 끊임없이 자금악화설과 워크아웃설 등에 시달려온 새한은 이영자회장과 이재관부회장의 탈세혐의로 검찰수사와 함께 세무조사통보까지 받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결국 파국을 맞고 말았다.

    새한 관계자에 따르면 16일 구조조정안 발표 직후부터 주거래은행인 한빛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에서 당좌대월 한도를 막아버리는 바람에 자금흐름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새한의 미온적인 구조조정안에 불만을 느낀 채권단이 새한에 대한 지원을 포기해버린 것이다. 결국 이부회장의 버티기에 채권단이 최후의 철퇴를 가한 셈이다.



    재계서열 27위의 새한그룹은 고 이병철회장의 차남이자 이건희 삼성회장의 형인 고 이창희씨(91년 작고)가 지난 73년 설립한 새한미디어에서 비롯됐다. 95년 삼성에서 계열분리된 제일합섬(주식회사 새한의 전신)을 편입시키면서 재계서열 35위로 도약한 뒤 30대 그룹에 진입했고 97년에 새한그룹으로 공식 출범했다. 당시 고 이창희회장의 미망인인 이영자씨가 회장직을 맡고 장남인 이재관부회장은 새한미디어 사장, 차남 재찬씨(36)는 디지털미디어 사장, 막내 재원씨(32·새한정보시스템 대표)는 ㈜새한의 기획이사로 경영에 참여했다. 초기에는 새한미디어 출신의 전문경영인인 한형수부회장이 과도경영체제를 이끌어왔으나 지난해 10월 경영 실패를 이유로 한부회장을 퇴진시키고 이부회장이 경영을 전담해왔다. 이부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터프츠대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했으며 지난 93년 동방그룹 임용대회장의 장녀와 결혼했다.

    새한그룹의 경영난에는 주력산업의 침체와 신규투자 실패, 그리고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빚어진 내부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1조7000억원의 그룹 전체 매출 가운데 1조1900억원을 차지한 ㈜새한의 경우 주력 품목인 폴리에스터 가격이 하락하면서 최근 몇년간 채산성이 계속 악화된 끝에 지난해 556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특히 지난 95년부터 98년까지 구미2공장 건설 등에 1조원 이상을 쏟아부으면서 재무구조가 매우 부실해졌다. ㈜새한은 지난 연말 기준으로 총자산 2조1000억원에 부채 1조5000억원, 자본금 5900억원으로 부채비율이 257%에 달했다. 이 가운데 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부채가 47%나 될 정도로 자금흐름에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룹의 양대 축인 새한미디어도 비디오테이프의 수출가격이 생산원가 밑으로 떨어지면서 지난 98년부터 적자로 돌아섰고 지난해에는 매출 3636억원에 382억원의 손실을 냈다. 또 신규사업으로 추진했던 영상사업 등도 수백억원대의 손실만 남긴 채 실패해 자금압박이 가중됐다.

    새한그룹의 정확한 부채 규모는 채권단의 실사를 통해 가려지겠지만 한빛은행에 따르면 전체 부채가 2조3900억원이며 이 가운데 금융권 부채가 1조4200억원, 무보증회사채와 기업어음(CP)이 9700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새한은 1조8250억원, 새한미디어가 5650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새한그룹은 지난해 외자유치와 구조조정을 통해 나름대로 활로를 뚫어보려 했지만 이부회장이 조직 장악력에 허점을 드러내면서 심각한 내부 갈등을 겪어왔다. 이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임원의 30%를 퇴임시키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시도했지만 과거 제일합섬에서 비롯된 섬유업체 특유의 보수성을 극복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이부회장의 최측근들은 “젊은 이부회장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임원들을 설득하는데 항상 어려움을 호소했다”며 이같은 속사정을 전했다. 반면 간부들은 “이부회장이 그룹의 주력인 섬유사업은 홀대하면서 엉뚱한 생각만 하고 있다”며 수시로 불만을 토로해왔다. 올들어 ㈜새한에서만 20여 명의 임원이 회사를 그만둔 것만 봐도 새한의 내부사정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알 수 있다.

    이제 새한의 장래는 채권단의 손에 넘어갔다. 이부회장과 그 측근들은 퇴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소유주 일가에 대해서는 감자를 통한 지분 축소와 사재 출연 등의 책임 추궁이 따를 전망이다. 또 계열사 통폐합과 자산매각 등의 구조조정은 훨씬 강도 높게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임직원들은 정리해고 등의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워크아웃이 진행되면 채무 가운데 일부가 출자로 전환되고 이자지급이 유예되는 등의 지원이 따르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는 일부 업종을 중심으로 회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워크아웃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새한의 본가인 삼성그룹의 공개적인 지원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한솔그룹이 주력 계열사를 매각하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새한마저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삼성의 위성그룹이 잇따라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또다른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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