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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통치사료’

대통령은 떠나도 역사는 남는다

대통령 일거수 일투족 상세히 기록…어느 누구도 접근 불가 ‘3중 보안’

대통령은 떠나도 역사는 남는다

대통령은 떠나도 역사는 남는다
지난 5월11일 청와대 통치사료비서실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및 대통령 비서실’에서 기록한 1961년부터 1968년까지의 일지를 공개했다. 동시에 “통치사료비서실은 대통령 자료를 전산화하는 통치사료 관리시스템 개발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의 통치사료는 누가 만들고, 어떻게 보존돼 오는 것일까.

지난 5월18일 오전 9시 경기도 성남에 있는 서울공항. 김대중대통령은 이날 5·18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남 광주를 방문하는 길이었다. 대통령 전용기의 프로펠러가 힘차게 돌기 시작하자 정은성 청와대 통치사료비서관(2급)은 가방에서 노란색 귀마개를 꺼내 귀를 막았다. 주변 사람들은 “웬 귀마개냐”는 식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정비서관에게는 일상 생활이 된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가 귀마개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업무와 관련해 정비서관에게 있어서 귀는 생명이다. 대통령을 수시로 만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는 일이 그의 임무.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마이크 없이 사람들을 만날 때도 정비서관은 배석해 대화 내용을 기록한다. 자연히 긴장된 상태에서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창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때문에 대통령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경우도 있어 자신의 귀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고 한다. 간혹 노래방에라도 가게 되면 마이크 가까운 자리를 피해 앉는 것도 귀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정비서관이 통치사료 비서관으로 임명된 뒤 맨 처음 한 일도 귀마개를 새로 산 것.

그렇다면 통치사료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있을까. 통치사료를 만드는 데 있어 3대 요소는 기록과 녹음, 그리고 문서다. 정비서관의 기록에 의해 통치사료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대통령의 개인면담 행사, 수석비서관 회의 등이다. 녹음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수첩에 직접 기록한 내용이 고스란히 B5 용지 크기의 ‘통치사료기록서’에 옮겨진다. 한양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과 뉴욕주립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정비서관이지만 면담자가 외국인일 경우 통역자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면담자가 많을 경우 김대통령이 비교적 크게 말해 기록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한두 명일 경우 목소리가 작아 기록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비가 많이 내릴 때가 특히 그렇다. 이럴 때는 ‘…’으로 기록한다. 정비서관은 “가능한 한 많이, 가능한 한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신조”라고 말한다. 그래서 명확히 알아듣지 못한 경우에는 어림짐작으로 기록하지 않고 ‘…’으로 남겨둔다는 것.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 이외의 어려움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재채기가 나오려고 하거나 헛기침을 하고 싶을 때가 정말 곤란하다. 정비서관은 “재채기가 나오려고 해 20여 분 동안 참다가 눈물이 나온 적도 있다”고 한다. 정비서관은 몇 번 이런 경험을 겪은 뒤부터는 아예 사탕 등을 갖고 다니며 목 상태를 좋게 유지하려고 신경을 쓰고 있다. 한번은 기록을 하다가 코를 풀었는데 나중에 한 참석자가 “웬 코를 그렇게 크게 푸느냐”고 질책해 난감했던 적도 있었다고.

공식 행사일 경우 의전비서관실에서 참석자 좌석 배치 등이 기록된 관련 자료를 통치사료비서관실로 넘긴다. 정비서관은 김대통령은 ‘P’로 기록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1, 2 등의 숫자로 구분해 기록한다. 그런 뒤 나중에 의전비서관실에서 보내온 자료와 비교해 참석자들의 이름을 통치사료기록서에 기록한다. 물론 의전비서관실에서 보내온 자료들도 모두 첨부된다.

대통령의 공식 행사는 모두 녹음돼 통치사료비서실에 넘겨진다. 녹음은 경호 업무의 일종이기 때문에 청와대 경호실에서 담당한다. 경호실은 ‘청와대 경호실’이라고 쓰인 테이프에 녹음한다.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 중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소규모 행사나 언론인과의 인터뷰 같은 경우에는 통치사료비서실에서 자체적으로 녹음한다.

대통령에게 보고된 모든 문서들도 통치사료비서실로 옮겨진다.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 각 부처에서 업무보고한 문서 등이다. 시장 방문 등 대통령을 ‘밀착 마크’ 하기가 어려운 행사의 경우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일부러 출입기자를 대통령 가까이 있도록 해 기록한 내용을 협조받는 것.

김대통령 취임부터 올 5월초까지 통치사료비서실에 보존된 통치사료 자료량은 △(녹음자료 등) 통치사료기록서 1354건 △(업무보고 등) 행사자료 1971건 △(취재기자들의 자료 등) 기타자료 8272건 등 1만여 건이 넘는다.

이런 식으로 통치사료비서실에 모인 자료들은 세명의 속기사들에 의해 ‘통치사료기록서’로 작성된다. 정비서관이 기록한 내용은 속기사-정비서관-속기사, 녹음한 내용인 경우 속기사-박한수과장(통치사료비서실 소속)-속기사의 3단계 교정을 거친다. 최근에는 전문 교정인을 고용해 어법, 띄어쓰기 등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검증하고 있다. 문서번호, 일시, 장소, 제목 등이 기록된 통치사료기록서는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대통령 : “회장은 금세기가 낳은 천재입니다. 한국은 몇 번째 방문하는 것입니까.”

○빌 게이츠 회장 : “다섯 번째입니다.”

마치 대화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기록한다. 상황 설명이 필요한 경우 ‘(선물을 건네주며) (의전비서관이 ○○자료를 전해 주었음)’ 등을 앞부분에 덧붙인다.

작성된 통치사료기록서는 통치사료비서실 캐비닛에 보관되고 있다. 김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이것은 책자로 묶여 정부기록보존소에 보내질 예정이다. 청와대 도서실에 있던 노태우 전대통령 시절의 통치사료기록서 2권은 지난 5월15일에야 정부기록보존소에 넘겨졌다. 김영삼 전대통령 시절 작성된 통치사료기록서 111권은 여전히 청와대 도서실에 남아 기록보존소로 넘겨지길 기다리고 있는 중.

통치사료비서실은 최근 ‘통치사료시스템 개발’을 완료했다. 비서실은 99년 10월 ㈜포스테이타와 계약을 체결하고 시스템 개발에 들어간 지 7개월만에 완성한 이 시스템으로 인해 대통령 기록물의 보존 작업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시스템 구축에 들어간 돈은 무려 13억500만원. 사진 자료와 문서, 신문기사 등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자료들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돼 관리되게 됐다. 예를 들면 김대통령이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했을 경우 △대통령의 치사 △관련 사진 △관련 신문기사 등이 모두 담기는 것. 내년 중반쯤이면 동영상도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대통령과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만지다 보니 보안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정비서관은 비서관으로 임명된 초기 직원들(정비서관을 제외하고 6명)을 모아놓고 “첫째도 보안, 둘째도 보안, 셋째도 보안이다. 보안만 잘 지키면 큰 대과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안의 중요성을 엄중하게 강조했다고 한다. 새로 구축된 시스템도 최신의 보안기술을 적용, 통치사료실 관계자 외에는 어느 누구도 자료에 접근할 수 없게 했다. 또한 통치사료실의 각 컴퓨터마다 별도의 보안카드를 담당자에게만 지급해 다른 사람 컴퓨터는 구동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박한수과장은 “3중 보안장치로 돼 있어 완벽한 보안 체계를 갖췄다”고 강조한다.

통치사료비서실측은 최신 시스템 구축을 계기로 전직 대통령 관련 자료의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99년 1월 공포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로 현직 대통령과 관련된 각종 자료는 보존이 의무화됐지만 전직 대통령들의 경우는 특별한 규정이 없었던 까닭이다. 정비서관은 “전직 대통령 관련 자료의 소재를 파악하고 발굴하는 작업을 시도했지만 관계 법령의 미흡과 관계자들의 비협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측에서 “갖고 있는 자료가 없다” “회고록을 쓸 예정이니 그것을 보면 된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는 것. 정비서관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인 만큼 전직 대통령들 관련기록을 회수할 수 있는 법령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00.06.01 236호 (p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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