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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뇌물

힘센 자와 검은 돈 ‘위험한 만남’

최고 수십억원까지 끊이지 않는 뒷거래…형평성 어긋난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

힘센 자와 검은 돈 ‘위험한 만남’

힘센 자와 검은 돈 ‘위험한 만남’
작년 1월 청구그룹 장수홍회장에게서 2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년 반 동안이나 재판을 받아오던 민주당 김운환의원이 5월19일 5년의 실형선고와 함께 법정 구속됐다. 부산 해운대구 극동호텔 풀장부지 일대의 도시계획변경 및 개발 등 청구그룹이 부산에서 벌이는 사업이 잘 처리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95년 4월과 6월 각각 1억원씩을 받은 혐의 때문이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부(재판장 하광룡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의원으로서 청구가 부산에서 추진하는 사업의 성사 여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는 점에서 2억원은 대가성을 가진 뇌물이라는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뇌물수수액이 거액인데도 반성의 기색을 보이기는커녕 정치적 탄압이라고 변명하는 한편 불구속 재판이라는 점을 악용, 재판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징역 5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청와대 대통령 공보수석실은 부동산 명의신탁 파문으로 물의를 일으킨 박태준총리에 대한 사표가 수리됐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박총리의 재산관리인인 조모씨(59)가 “정당하게 취득한 부동산을 세무당국이 박총리의 은닉재산으로 몰아 증여세 등 20억여 원을 부과한 처분은 부당하다”며 서울 역삼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 대해 서울 행정법원이 ‘불가’ 판결을 내린 지 이틀만의 일.

박총리측은 5월17일 법원이 ‘박총리가 포항제철 회장 및 민자당 대표위원을 지내던 88∼93년, 세금을 적게 내고 공직자 재산과다보유에 따른 비난을 피하기 위해 재산관리인에게 수백억원대의 부동산을 명의 신탁했다’는 사실을 적시했을 때만 해도 ‘공인으로서의 윤리의식에 반할지 몰라도 현행법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문제가 된 부동산을 구입한 자금 중 일부가 포철회장 시절 뇌물로 받았던 돈이었다는 사실이 지난 97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통해 밝혀지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

두 사건에 대한 처리를 보면 최근 법조계가 정치인의 뇌물 스캔들에 보다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사회 전반적으로도 고위 공직자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적 청렴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정기관은 불법금품수수에 대한 처벌기준에서 형평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로 검찰은 서이석 전경기은행장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은 최기선 인천시장에 대해 작년 7월 “정치자금의 성격이고 액수가 적다”며 불구속 기소했다. 반면 작년 9월 광고대행사로부터 2600만원의 돈을 받은 이경문 전한국관광공사 사장에 대해서는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며 구속기소했다

정치인의 불법적인 금품수수는 금품을 받을 당시 청탁 및 대가성이 있었는지의 여부에 따라 뇌물죄와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나눌 수 있다. 현행법상 정치인이 합법적으로 돈을 받는 경우는 후원회를 통해 영수증 처리를 하고 받는 경우와 일정 범위 이내의 친척한테서 지원금을 받는 경우뿐이다. 그 외의 경우에는 뇌물죄 또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된다.

뇌물죄는 뇌물을 받은 시기에 따라 일반수뢰죄, 사전수뢰죄(공무원이 될 사람이 그 직무에 관하여 청탁을 받고 뇌물을 받은 경우)와 부정처사후 수뢰죄(직무상 부정한 청탁을 들어주고 나중에 돈을 받은 경우) 등으로 나뉜다. 또 자기 직무와 관련이 없지만 다른 공무원, 특히 자신의 영향권에 있는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청탁과 함께 돈 받은 경우는 알선수재죄에 해당한다. 또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은 뇌물액수가 1000만원 이상 5000만원 미만인 경우 5년 이상의 징역에, 5000만원 이상일 경우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반면 정치자금법 위반은 뇌물죄에 비해 형량이 훨씬 낮다. 그나마 97년 11월14일 법개정으로 ‘정치자금법에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주거나 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처벌조항이 신설됐다. 결국 정자법 개정 이전에 정치인은 아무리 돈을 많이 받더라도 ‘대가성’만 없으면 구속을 면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했다.

한보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민주국민당 김상현의원의 경우를 보자. 김의원은 자신이 돈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김의원은 2심 재판에서 “한보측이 김의원에게 5000만원을 건넨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건네며 명시적인 청탁을 했다는 증거가 없는 등 이 돈을 뇌물로 규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정자법 개정 이전에 받은 돈이어서 정자법 위반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정자법 개정 이후 조그마한 변화의 모습은 보이고 있다. 97년 12월 대선자금 불법모금과 관련해 한국통신과 한국중공업 등으로부터 각각 1억원과 2억원을 받은 한나라당 김태호 당시 사무총장을 검찰이 불구속 기소한 것. 하지만 그 역시도 ‘방탄국회’의 두터운 보호막으로 의정활동에는 큰 지장을 받지 않고 있다.

한편, 기소된 정치인에 대한 법원의 판결도 엄격하게 집행되지는 않았다.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대부분 보석이나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나고 있는 것. 토지용도변경 알선 명목으로 1억1000여 만원을 받은 한나라당 조익현의원의 경우 불구속 상태로 계속된 공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징역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군수공천을 대가로 4300여만원을 받은 민주당 김진배의원에 대한 공판에서도 혐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했다.

게다가 사면권의 남발로 비리 정치인의 경우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선고된 형량을 모두 채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역 대통령 아들의 구속과 함께 ‘정태수 리스트’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보사건에 연루된 정치인의 절반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났고, 실형을 선고받았던 정치인들도 이미 98년과 99년 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된 지 오래다. 1심 재판이 진행중인 정치인 중 구속상태로 재판을 받는 정치인이 없음은 물론이다.

결국 정치인에게는 솜방망이에 불과했던 공권력의 한계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부패방지협약에 가입했음에도 작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우리나라를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뇌물공여 지수가 높은 나라로 선정하게 만든 토양이 됐다는 지적이다.





주간동아 2000.06.01 236호 (p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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