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6

2000.06.01

팔당에 살어리랏다 … ‘별장 공화국’

한강수계 경기도 내 별장만 360여개 …헬기 타고 이동, 자가용배도 수두룩 ‘그들만의 아방궁’

  • 입력2005-12-05 0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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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당에 살어리랏다 … ‘별장 공화국’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문인들은 이 곳을 ‘한국인의 고향’이라고 얘기한다. 큰 물줄기와 초록의 대지, 새벽이면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한국적 정서와 잘 어울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제 수도권 시민들은 북한강 청평호, 남한강 복포리에서 양수리까지 팔당수계 한강변에서 ‘한 발’ 물러나야 할 것 같다. 강이 보이는 땅은 예외 없이 고급주택가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산림이 우거져 있는 강변 숲 대부분도 주택건축이 가능하도록 법적 절차가 끝난 상태다. 팔당수계는 이제 ‘상류사회 특별구역’이 됐다. 그리고 그 주변 한강에선 생활하수로 인한 오염이 진행되고 있다.

    전국전원주택개발협회 김태기회장은 팔당수계의 주거단지가 ‘3단계’라고 말한다. 원주민부락, 한강이 안보이는 전원주택단지, 한강이 보이는 고급주택들로 구분된다는 것. 다음은 김회장의 말. “한강이 잘 안보이면 가격이 1억∼2억원대로 중산층이 거주한다. 전원주택은 이런 곳이 대부분인데 요즘 분양이 잘 안된다. 그러나 한강이 보이면 사정이 다르다. 지가가 최고 10배 이상 올라가지만 매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강과 접하고 있는 경기도 내 9개 시-군에서 기자가 확인한 과세자료에 따르면 한강수계엔 별장만 총 364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이들 별장이 팔당수계에 집중돼 있는데 소유자 대부분이 서울의 부유층. 남양주시 관계자는 “팔당수계 내 별장은 공식적인 통계보다 훨씬 많다. 별장으로 이용하면서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일반주택으로 신고한 별장 20여 채를 최근 적발했다”고 말했다.

    5월17일 기자는 환경정의시민연대와 공동으로 양평군 대심리 한강변을 방문했다. “서울의 부자들이 호화주택을 짓기 위해 한강변 산림을 거의 파헤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곳이다. 이 곳에서 기자일행은 전원주택개발업자 A씨로부터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직접 현장으로 안내했는데 이 곳이 언론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공사가 한창인 주택단지는 국도변 휴게소 옆 샛길을 지나 자동차로 5분을 더 가서야 나왔다. 숲이 모두 잘려 나간 자리에 40여 채의 전원주택이 지어지고 있었다. 남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A씨는 왼쪽 산을 가리키며 “저 언덕 일대에도 모두 주택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대심리는 강을 따라 이어지는 언덕군락인데 남아나는 게 없습니다. 양평의 강변은 이미 외지인들이 싹쓸이해 이런 식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는 주택의 실소유자가 누구인지를 소개했다. “이건 서울 모 구의회 의장 집, 모 재벌그룹 계열사 사장 집, 서울 K대학 교수 집, 전 증권단체 회장 집, 국회의원 모씨 집, 서울 유명 산부인과 의사 집, 재일동포 사업가 모씨의 집….” 부근의 입구가 차단된 집터들은 서울 모 제약회사 회장이 사업하다 ‘신세진’ 사람들에게 사례로 나눠준 것이라고 한다.

    언덕 아래에도 두 채의 집이 있었다. 대지가 1200평인 집의 정원엔 파란 잔디가 깔려 있고 그 위로 30여 개의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 정원의 끝자락에 한강 물이 밀려와 찰랑대는 모습이 외국영화 속 저택을 연상시켰다. 이 집엔 자가용 배 선착장이 있고, 모터보트는 정원 위로 올려져 있었다. A씨는 “이 일대에서 가장 비싼 집입니다. 외부인이 구경왔다가 개에게 물려 다친 적도 있습니다. 모 재벌그룹 회장 소유 별장입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과 300m 앞 오른쪽 언덕에선 이 집보다 더 비싼 28채의 별장이 지어지고 있었다. 불도저와 포크레인 10여 대가 흙먼지를 내며 산 전체를 뭉텅 들어내고 있는 현장으로 올라가 봤다. 고즈넉한 남한강과 어우러진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전직 장관이자 정치실세인 K씨 등 대한민국 최고 VIP들이 이 동네 주인입니다. 이 집에는 옥내 주차장까지 갖춰 있습니다.” 그들은 왜 하필 여기를 택했을까. “진입로 주변에 민가나 여관, 카페가 없습니다. 진입도로는 좁은데 단지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이 커지는 ‘요새’ 같습니다. 사생활이 철저히 보호되고 조망도 뛰어난 천혜의 주거지라고 할 수 있죠.”

    팔당수계의 고급 주택촌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 것도 이처럼 일반인들의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환경정의시민연대 최소영간사의 설명. 바꿔 말하면 일반 시민들은 한강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 주택가 옆에선 야외예식장과 초현대식 연회장이 건설되고 있었다. 500m 떨어진 곳엔 양평군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강변 카페가 있다. “이곳은 서울 상류사회의 ‘식민지’처럼 보이는군요.”(최간사)

    양평군 복포리 한강변에서도 20여 채의 주택이 지어지고 있었다. 이 곳의 주인도 서울 유력인사들. 원주민 양모씨(45)는 “이들에게 특별한 반감은 없다. 이미 게임은 끝난 것 아닌가. 부자들이 모든 것을 갖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주택단지로 가는 진입도로 한가운데에는 대형 승용차가 지나가기 곤란하게 바위가 놓여 있었다. 호화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마을복지사업에 돈을 내놓지 않아 주민들이 ‘심술’을 부린 것이라고 한다.

    복포리 언덕 위에선 놀라운 장면이 목격됐다. 한강변을 따라 왼쪽 끝 산에서부터 진행된 복포리 주택공사가 오른쪽 끝 대심리의 주택공사장까지 연결되고 있었다. 거대한 ‘팔당수계의 베벌리힐스’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현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대심-복포리 한강변 땅은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한 부동산업자는 “평당 300만원대를 호가하는 곳도 있지만 팔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한강변 건축을 제한하겠다는 환경부의 최근 발표에 대해 A씨는 코웃음을 친다. “늦었어요. 이미 양평군 하나만 하더라도 주택 5000채 분량의 허가가 났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사정은 한강수계 다른 시-군도 마찬가지입니다.”

    A씨의 말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양평군청에 주택건설을 위한 ‘형질변경허가’(옛 산림훼손허가)가 어느 정도인지 조사해 달라고 의뢰했다. 93년부터 2000년 5월까지 일반주택건설을 위한 형질변경허가는 모두 1017건이었다. 지분분할을 하면 집은 나중에라도 무한대로 지을 수 있다. 형질변경을 받은 면적을 구하기란 너무 방대한 작업이어서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대심리의 통계는 이틀만에 알아낼 수 있었다. 대심리에서 주택건설이 가능한 준농림지역의 총 면적은 44만9512㎡. 97년부터 2000년 5월까지 대심리에서 형질변경승인을 받은 준농림지 면적은 14만6602㎡였다. 전체 준농림지역의 3분의 1이 주택건설을 위해 파헤쳐진다는 것. 담당공무원은 “서울사람들의 준농림지 매입바람 때문”이라며 “충격적인 통계”라고 말한다. 한강변에 인접하지 않은 준농림지를 제외하면 사실상 한강이 보이는 토지는 산이든 언덕이든 모조리 깎여 주택가로 변하게 된다는 의미다. 복포리, 강상리, 강하리도 고급주택입지로 최적의 땅.

    양평군엔 255개의 리가 있다. 금년 1월 환경시민연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외지인들은 주로 현지주민의 명의를 빌려 토지를 구입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A씨의 말은 거의 사실에 가깝게 들린다.

    별장이나 고급주택의 소유자들은 그 안에서 어떻게 생활할까. 30여 채의 별장과 호화주택이 자리잡고 있는 가평군 청평호. 도로가 없어 배로만 접근 가능한 별장이 많다는 게 특징이다. 이 호수에서 10여 년째 수상스키사업을 해온 L씨의 얘기다. “이 지역 별장은 모 종교단체, 현대 SK 한화그룹 등 대기업의 친-인척들과 L씨 등 연예인, 전문직 종사자, 외국대사관이 주요 실소유자다. 자주 찾는 편은 아니지만 실소유자의 젊은 친-인척들이 친구들과 수일씩 머물다 간다. 음식은 별장관리인이 미리 준비하고, 별장주인들은 대부분 5000만∼1억원짜리 자가용 배를 갖고 있다. 호수 곳곳엔 전용주차장처럼 배를 댈 수 있는 시설이 있다. 배 안엔 침대 주방 화장실 등이 갖춰져 있다. 한 사업가가 연예인과 함께 밤새 배를 청평호에 띄워놓고 파티를 하는 장면도 보았다. 사업가 C씨가 이용하던 별장엔 정원조경이 잘돼 있고 음향시설이 갖춰진 연회장도 있다. 그는 서울에서 별장까지 헬기를 타고 올 때도 많다. 아침에 이 곳의 물안개는 절경이다.”

    지난 98년 임창렬 경기지사의 부인 주혜란씨가 서이석 전경기은행장으로부터 돈이 가득 들어 있는 골프옷 가방을 건네받은 곳도 별장이었다. ‘대한민국 상류사회’의 저자 이석영씨는 “서울 강남의 한 부유층이 별장에서 자녀의 생일파티를 연 적이 있었는데 비슷한 부류의 학부모들이 함께 모였다. 교외별장과 고급주택은 상류층의 ‘사교장’이며 외부에 알리기 싫은 사적인 활동이 이뤄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한강변 주택들이 강물을 오염시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청평하수종말처리장 관계자). 실제로 그럴까. 단독주택의 생활하수는 자체 정화조를 거쳐 강으로 흘러간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자체정화조로는 오염물질의 70%만 걸러질 뿐이다. 3월 환경부조사에서 팔당호상류 625개 정화조 중 153개는 아예 ‘고장’이었다. 그나마 주택의 조그만 정화조는 이런 조사도 받지 않는다.

    5월17일 양평군 대심리 호화주택촌 옆. 누런 오수가 한강변을 뒤덮고 있는 모습이 확인됐다. 악취가 매우 심했고 파리가 들끓었다. 최소영간사는 “주변 주택들의 화장실 부엌 세탁기에서 흘러나온 물이다. 정화조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강의 ‘물 관리 시스템’에 두 가지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헌주 국토연구원 토지연구실장은 “건축규제가 크게 완화된 준농림지가 93년부터 수도권에 확대되면서 난개발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팔당수계 역시 주택과 숙박-식당은 준농림지에 집중돼 있다. 김태기회장은 이로 인한 하수처리의 난맥상을 설명했다. “주택 여러 채를 동시에 건설하는 중저가 전원주택단지에선 하수종말처리를 한다. 따로따로 지어지는 고급주택은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자체 정화조로 하수 처리한다. 그러나 한 채 한 채가 모여 수천 채가 된다. 이 둘 중 어떤 것이 상수원을 더 오염시킬지 자명한 일이 아닌가.”

    가창댐은 대구 남-동부지역의 상수원. 이 댐이 있는 대구시 가창면 오리에선 한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면사무소 직원 전현식씨는 “주변 인구는 160세대, 음식점은 두 곳뿐. 그래도 생활하수는 전량 따로 수거해 댐에서 수십km 떨어진 곳으로 보낸다”고 말했다. 이 댐 주변으로 준농림지는 한 곳도 없다. 한 나라 안에서 식수원 관리정책이 이렇게 정반대로 진행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서울에서 가까운 팔당호 인근에는 돈 많은 사람들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양평군 부동산업자 J씨는 “90년대 팔당수계에 준농림지를 늘리기 위해 서울 유력인사들 사이에서 벌어진 로비는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 이들은 모두 강변일대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팔당수계는 지금 고급주택단지로 변하고 있다. 환경정의시민연대 최소영간사는 두 가지 점에서 집주인을 뺀 한국인 모두의 손실이라고 말한다. “팔당수계는 2000만여 명의 식수원입니다. 그런데도 강에서 가까운 곳만 골라 난개발되고 있습니다. 한 채 두 채가 아니라 집단으로 조성되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금새 수질이 악화될 겁니다. 국토를 대표하는 강변과 해안선은 개인이 ‘돈’으로 ‘독점’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보존하는 나라가 많습니다. 국가와 국민정서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한강은 한국을 대표하는 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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