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2

2000.05.04

자연복원이냐 인공조림이냐

백두대간 살리기 뜨거운 논쟁…‘숲은 생명의 터전’ 최우선 고려해야

  • 입력2005-10-17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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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복원이냐 인공조림이냐
    건국 이후 최대규모라는 대형 산불로 여의도의 40배인 약 4300만평의 광활한 산림이 숯으로 변해버렸다. 지난 4월7일부터 15일까지 영동지방에서 진행된 불길은 마치 봉화처럼 백두대간 줄기를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번졌다. 특히 주요 피해지역인 고성군, 강릉시, 동해시, 삼척시는 산림훼손과 함께 주택, 가축, 농기계까지 막대한 손실을 입어 잠정집계된 피해액만도 55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역시 이번 산불의 최대 피해자는 숲이다. 정부와 민간단체는 훼손된 산림지역의 복구를 위해 일단 조사작업에 착수했다. 산림청은 4월19일부터 4일 동안 임업연구원 박사와 공무원 60여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해 자원피해, 산림토양피해, 산림생물피해, 경제평가, 산림복구방법, 산불특성 등 분야별 조사를 진행했다. 이를 토대로 6월말까지 세 차례 추가조사를 거쳐 산림생태계 변화상황에 따른 숲의 구역별 복구방법을 결정하기로 했다.

    환경부도 생태조사단 소속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17명을 파견해 야생 동-식물을 비롯한 산림생태계의 피해실태를 조사했다. 이어 4월27일 관련 부처, 학계, 민간단체를 망라하는 관련 전문가 회의를 소집해 피해지역에 대한 복구방향의 가닥을 잡는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부처간의 협의와 조율 이전에 복구방법을 놓고 산림청과 환경부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산림청은 인공조림에 무게를 두고 있고, 이와 달리 환경부와 환경단체들은 자연복원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산림청 김용하 산림자원과장은 6월말까지 정밀조사를 거쳐 복구방향을 결정할 것이나, 현상황에서는 인공조림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국민이 생각하는 것보다 피해면적이 엄청나게 넓다. 헬기로 조사하는 데도 너무 넓어서 조사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유림의 소유주와 송이버섯 채취로 생계를 잇던 지역주민들의 민원이 밀려들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상당한 지역에 인공조림이 불가피하며 산림이 자연복원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환경운동연합의 맹지연 녹지보전담당부장은 산림청이 인공조림을 고집하는 데는 다른 생각도 끼여 있다는 의혹을 갖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산림청 조직은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그나마 ‘숲 가꾸기’ 공공근로사업으로 숨통을 열었는데 이것도 내년이면 축소 내지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에서 대규모 산불로 대규모 조림사업의 가능성을 보게 됐다. 인공조림을 할 경우 묘목값과 사업비, 인건비 등을 산출하면 수천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산림청은 산불발생 책임만 벗어버린다면 예산과 기구확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되는 것이다.”

    자연복원이냐 인공조림이냐를 놓고 산림청과 환경부보다 더 뜨겁게 논쟁을 벌이는 것은 학계다. 여기에서는 생태학자들과 임학자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생태학자들이 산림이나 숲을 공익적, 환경적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일부 경제적 측면을 고려하는 입장이라면, 반대로 임학자들은 자원이라는 경제적 가치로 바라본다. 그래서 이번 산불 피해지역의 복구방법을 놓고 생태학자들은 자연복원을, 임학자들은 인공조림을 주장하는 것이다.

    서울대 산림자원학과 이돈구교수는 “인공조림과 함께 산사태를 막는 사방사업을 실시하고 임도(육림을 위해 필요한 길로 나뭇길이라고도 한다)를 보다 많이 만들어야 한다. 조림수종은 주로 소나무와 참나무를 기본으로 하고 오리나무를 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생태학자들은 강한 반론을 제기한다. 산불 피해현장의 생태계조사에 나선 경북대 생물학과 조영호교수는 “산불 피해지역이 넓기 때문에 대규모 조림을 할 경우 도로나 토목공사를 해야 한다. 이 과정에 그나마 남아 있는 생태계의 자생력이 사라질 수 있다. 서서히 복구되는 자연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며 자연 스스로의 치유 능력에 맡기자는 주장을 전개했다.

    여기에 ‘숲의 나무만 보지 말고 야생동물을 비롯한 생태계, 나아가 생명의 집합체인 숲으로 보자’는 입장이 새롭게 제시되면서 자연복원 쪽에 힘을 실어준다. 실제 인공조림으로 숲을 조성하면, 불타지 않은 주변지역으로 대피한 야생동물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가급적 인공조림보다는 자연복원에 맡기자는 것이다.

    하지만 복구가 시급한 민가와 학교 주변, 도로 등은 우선적으로 인공조림을 하자는 데 양측 모두 이견이 없다.

    단순히 산림의 피해면적만 따지던 과거와 달리 이번 산불 피해 조사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라면, 그곳에 서식하던 동물을 중심으로 생태계 문제에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사실 이번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삼척-울진지역은 설악산, 지리산에 버금가는 야생동물의 보고였다. 야생동물 서식처는 경북 울진 서면의 소광리 소나무천연보호림을 거쳐 봉화와 영양까지 이어진다. 지난 3월 밀렵으로 희생된 산양의 서식처도 이번 산불 피해지역과 생태적으로 연결돼 있다.

    삼척의 피해지역은 불이 나기 전까지 반달가슴곰과 호랑이를 제외한 주요 포유동물들의 서식처였다. 살쾡이 산양 사향노루 하늘다람쥐 수달 담비 등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과 천연기념물, 오소리 너구리 고라니 노루 멧돼지 등 주요 포유동물의 서식밀도나 개체수 면에서 강원도 어떤 지역보다 많았다.

    산불이 지나갔던 현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동물들의 시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청설모나 토끼는 말할 것도 없고 고라니 오소리 너구리 등 비교적 빠르고 덩치 큰 동물들도 숯덩이로 변해 있었다. 두타산 자락에서는 산불을 피해 도망가던 살쾡이가 올무에 걸린 채 죽은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현장조사에 참여한 백두대간보전회의 정강선 사무국장은 특히 삼척지역의 생태계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고 전한다.

    “두타산 일대, 근덕과 원덕에서 울진까지 이어지는 지역에서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피해를 보았다. 국내에 얼마 남지 않은 야생동물들의 서식처가 이번 산불로 사라진 것이다. 포유류뿐만 아니라 토양에 서식하는 미생물, 곤충류, 양서류와 파충류 등 산림생태계의 먹이사슬 전체가 피해를 보았다.”

    강원도의 유래 없는 산불은 진화과정의 어려움만큼이나 복구작업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피해지역에 대한 조속한 복구에만 매달려 성급히 방법을 결정해서도 안된다.

    정확한 피해조사를 바탕으로 정부의 예산과 시대변화에 걸맞은 산림정책이 나오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보전과 이용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의 문제도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산불을 통해 우리가 생명과 생태의 문제에 눈을 뜰 수 있었다면 큰 불행 중 작은 다행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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