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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북풍과 김남국대령

“진실 은폐 위해 국방부서 표적수사”

김남국씨 “근거없는 투서로 곤욕”…청와대도 북풍 극비조사 김동신씨 주요인물 지목

“진실 은폐 위해 국방부서 표적수사”

“진실 은폐 위해 국방부서 표적수사”
지난 96년 4·11 총선을 앞두고 일어난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는 발생 날짜부터 조작됐다.”

합참 정보참모부 전략정보과장을 지낸 김남국 예비역 육군대령(육사 28기)이 지난 4월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폭탄선언을 했다. 김씨 발언의 요지는 “당시 군 수뇌부가 워치콘(정보감시태세)을 무리하게 격상시켰고 북한군의 무력시위는 4월4~6일 발생했으나 5~7일 발생한 것으로 날짜를 하루씩 연기해 발표했다”는 것. 김씨의 폭로에 대해 국방부는 “당시 합참과 3군사령부 등의 상황일지를 종합적으로 확인한 결과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는 4월4~6일이 아닌 5~7일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으며, 워치콘 격상도 4월5일 한미연합사령관에 의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워치콘 격상과 관련한 팩스문서까지 공개하며 논란을 잠재우기에 부산하다. 국방부의 이런 노력 때문인지 김씨의 주장은 서서히 묻혀 가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김씨의 주장은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한 것일까.

김 전총장, 관련설 강력 부인

‘주간동아’는 취재과정에서 청와대가 이미 99년 6월부터 약 넉달간 이와 관련한 조사활동을 벌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김남국씨는 당시 김성재 청와대 민정수석을 만나 사건 전말을 설명하기도 했다.

조사 결과는 10월 중순쯤 김대중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 A4용지 27쪽에 이르는 이 보고서의 제목은 ‘96년 4월, 15대 총선 직전 청와대-국방부 북풍사건 전모’.



보고서는 김동신 당시 육군총장을 북풍사건의 주요인물로 지목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는 “김동신대장은 지난 정권에서 있었던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김남국대령 등 부하들에 대한 표적수사를 군 수사기관에 지시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군에서 아직도 일부 몰지각한 군 수뇌부에 의해 이와 같은 불법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군 개혁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북풍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김대중대통령은 “언젠가는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신총장은 보고서가 김대통령에게 전달된 직후인 99년 10월18일 임기를 5개월 앞두고 교체됐다. 당시 군 안팎에서는 김총장의 교체와 관련, 이런 저런 얘기들이 많이 나돌았다. ‘주간동아’가 확인한 보고서를 통해 볼 때 김총장의 조기 경질은 ‘북풍사건’과 무관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 전 육군총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사건을 조작하거나 은폐한 적이 없다”며 자신의 관련설을 강력히 부인했다. 김씨는 “총장실로 김전대령에 대한 투서가 들어왔다. 전부터 문제가 있다는 얘기도 있고 해서 육군 중앙수사단에 수사를 지시했다. 처음에는 투서자가 가명인 줄 몰랐으나 나중에 중수단으로부터 그같은 사실을 보고받았다. 가명으로 투서가 와도 현역 장교의 비위나 부조리 관련 사항일 경우 상황에 따라 수사하는 경우가 있다. 김전대령 수사는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남국씨는 “당시 조사는 북풍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명백한 표적조사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96년 4월5일 아침 6시15분경 합참 전략정보과장으로 있던 김남국씨는 박현진 합참 북한부장(당시 소장)으로부터 “어제 북한군 1개 중대가 판문점에 들어왔다”는 얘기를 듣고 A4 용지 두장짜리 정보판단서를 만들었다. 그 요지는 “전에도 종종 있었던 일이고 차량을 타고 와 한 시간 30분 정도 머물렀기에 큰 위협은 아니다”는 것.

그러나 4월6일 오후 2시 합참의장이 주재한 상황대책회의에서 김씨는 곤욕을 치렀다. 당시 김동진합참의장으로부터 “누가 이런 판단을 했느냐. 북한군이 포를 쏠지 미사일을 쏠지 어떻게 아느냐”며 꾸지람을 들은 것. 김씨는 상황실로 밀려났고 홍아무개 대령이 정보판단을 대신했다. 그 뒤 합참의 정보판단은 “투입된 북한군은 도끼만행을 일으킨 호전적인 부대로 군사적 무력 도발 가능성이 심각하게 우려되므로 철저한 군사대비태세가 요망된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합참 상황실에서 김씨는 김동신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을 만나게 된다. 김씨는 “4월6일 밤 9시20분, 4월7일 밤 9시10분, 4월8일 저녁 8시30분경 등 세 차례에 걸쳐 김동신 당시 작전본부장이 유종하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통화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 김 작전본부장이 ‘전투복을 착용한 장군이 현장감있게 브리핑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식으로 복명을 해 속으로 ‘장군도 복명을 하나’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동신씨는 “다른 것은 모르겠고, 나와 관련된 부분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김씨는 또 “외교안보수석은 합참정보본부장과 직접 통화한다. 유종하수석의 전화를 받아본 적도 없고 그런 관례나 절차도 없다. 또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군복을 입게 돼 있다. 김전대령의 주장은 나에 대한 음해다. 정치적인 욕심이 있는 김전대령이 진급에서 떨어지자 내게 불만을 품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남국씨는 북풍사건으로 군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김씨는 이를 ‘북풍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음모’였다고 주장한다.

99년 8월10일 오전. 당시 육군 정보학교 어학처장으로 있던 김남국씨는 육군총장(당시 김동신대장) 직속인 육군중앙수사단(헌병부대) 관계자 6명의 방문을 받았다. 김씨와 부하인 박종원소령 등 6명은 군단헌병대 및 교육사 헌병파견대로 긴급 연행됐다. 얼마 전부터 기무사 요원들이 주변에 나타나는 등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던 김씨는 “올 것이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새 정부 들어서 김씨가 96년 북풍과 관련해 묻고 다닌다는 것을 북풍사건과 관련이 있는 일부 군 수뇌부가 눈치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와 부하들은 1차 11시간30분, 2~3차 최대 39시간 동안 구금상태에서 신문받았다.

김씨가 연행되자 가족은 비상이 걸렸다. 김씨의 부인 조정숙씨는 “11일 12시까지 남편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중수단에 통고, 배수진을 쳤다. 가족은 국회 국방위원인 새천년민주당 임복진의원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임의원은 김동신총장에게 “왜 쓸 데 없는 일을 하느냐”며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조정숙씨는 11일 오전 9시40분 집을 나와 목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교회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남편이 풀려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수단 요원들은 김씨가 풀려난 뒤에도 김씨의 사무실 주변을 맴돌며 은근히 위협했다.

김씨는 ‘표적수사’의 근거로 자신에 대한 수사의 계기가 된 문서를 기자에게 공개했다. ‘민원(비위)요지’라는 한 장짜리 문서에는 민원인이 ‘경기도 이천시 대포동 김순례(가명)’로 나와 있다. 김씨는 “무기명 가공인물에 의한 투서내용을 확인절차도 없이 수사했다. 민간인이 부대 업무를 깊숙이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볼 때 조작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군 수사기관에서는 ‘공휴일에 공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했는지 여부’ 등 투서에 적시된 9개 항목을 집중 조사했다. 그러나 아무런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자 “참모총장 앞으로 사죄편지 한 장만 써주면 모든 일이 잘 처리될 것”이라며 김씨를 회유했다고 한다.

‘북한군 무력시위 날짜와 워치콘 격상’ 등과 관련, 김씨의 주장이 맞다는 진술서를 써준 김아무개 중령(96년 4월 당시 합참 징후분석장교)도 99년 9월2일 새벽 2시30분쯤 낯선 사람들의 방문을 받았다. 그들은 김중령의 숙소로 찾아와 “가보면 안다”며 동행을 요구했다. 그러나 김중령이 “신분을 밝히라”며 버텨 위기를 모면했다. 김씨는 “99년 10월5일 기무사 고위간부가 전화를 걸어 ‘죽고 싶으냐’며 협박해 ‘왜 관계없는 일에 끼여드느냐’고 항변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같은 일련의 사태는 김남국씨와 주변인사들의 입을 막기 위해 곳곳에서 압력이 가해졌음을 입증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남국씨는 ‘북풍사건’이 일어난 96년 4월 이후 국방대학원-정보사 어학처장-201 특공여단 부여단장 등을 전전했다. 한마디로 ‘물을 먹은’ 것.

자신을 둘러싸고 좋지 못한 소문이 나도는 등 더이상 군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워지자 김씨는 99년 12월30일, 28년간 몸담았던 군을 떠났다. 그리고 금년 4월18일 기자회견을 갖고 북풍사건의 전말을 밝힌 것.

김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풍사건’은 국방부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가 베일에 가려 있는 셈이다. 국방부 주변에서는 “김대통령이 특별지시를 하지 않는 한 실체를 밝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씨는 “미국측에 워치콘 격상 등과 관련한 문서가 있을 것”이라며 “기회가 닿는 대로 미국에 건너가 확인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0.05.04 232호 (p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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