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9

2000.04.13

폭풍전야! 은행이 떨고 있다

정부, 자발적 짝짓기 압박…날선 감원 칼날 “자라목 은행원”

  • 입력2006-05-04 12: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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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전야! 은행이 떨고 있다
    요즘 은행장들을 만나보면 예외없이 밤잠을 설친다고 하소연이다. 올 들어 정부로부터 집요하게 가해지는 ‘합병 스트레스’ 때문이다.

    은행장뿐 아니다. 합병 노이로제에 걸리기란 일반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후 은행퇴출, 합병, 군살빼기 등의 과정에서 전체 은행원 중 35%가 실업자가 됐다. 이제 간신히 안정을 찾아가는가 싶었더니 또다시 감원이 불가피한 합병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은행원들은 “요즘 신문을 펼쳐들기가 겁난다”고 하소연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합병을 강요하는 금융기관장들의 엄포성 경고가 잇따르고, 언론은 각종 합병 시나리오를 써대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특히 최근 한달여 동안 은행권에 가해지는 정부의 제2차 금융구조조정 압박도 대단하다.

    3월23일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이 김대중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할 당시 가장 힘주어 강조한 대목이 ‘대형은행 출현의 필요성’이었다. 이위원장은 이날 보고에서 독일 도이체방크와 드레스드너방크의 합병을 비롯해 요즘 미국 일본 등에서 부단히 진행되고 있는 ‘메가 뱅크’ 출현 현황을 보고한 뒤 이에 대응한 국내은행간 합병의 필요성을 강조,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다.

    이날 배석한 박태준국무총리는 “우량은행과 부실은행간 짝짓기는 시너지 효과가 없으니 우량은행간 짝짓기를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위원장은 그 뒤 공사석에서 합병의 필요성을 부단히 역설, 은행들의 신속한 ‘자발적’ 짝짓기를 압박하고 있다.



    외환위기 후 1차 금융구조조정 당시 총대를 멨던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도 합병 압박을 가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장관은 3월18일 골프장에서 우연히 만난 몇몇 기자들과 담소를 나누던 중 합병에 관한 질문을 받자 “요즘 은행장들을 보면 시간을 최대한 끌다가 안되면 마지막 수단으로 합병을 택하려 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공적자금 부담만 커지고 은행도 망가진다”고 답했다.

    이장관은 그러나 합병론이 확산되면서 은행권 불안이 심화되자 3월27일 재경부 기자실로 내려와 진화에 나섰다.

    “총선 뒤에 정부가 대규모 은행 합병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정부는 앞으로 금융개혁에 직접 개입할 뜻이 없다. 시중은행간에도 연내에 눈에 띄는 합병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은행권은 그러나 이런 발언을 믿지 않는 분위기다. 이장관 발언은 4월 총선을 앞두고 합병론이 확산되면서 금융권이 크게 불안해하자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주문에 따라 급작스레 나온 게 아니냐는 것이 은행권의 대체적 해석이다. 김승유 하나은행장도 최근 총선 직후 상반기 안에 합병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합병은 이처럼 은행권의 최대 화두가 됐다. 이미 상당수 은행들은 자신에 가장 유리하고 이상적인 합병 파트너를 물색하는 작업에 착수한 상태며, 정부 일각에서도 각종 합병 시나리오가 검토되고 있는 현실이다. 단지 극도의 입조심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용근 금감위원장은 올 3월 YTN과의 인터뷰에서 은행 합병의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부실은행간 합병 불허, 우량은행간 합병 권장, 우량은행의 부실은행 인수합병 등 3대 원칙이 그것이다.

    이위원장의 합병 원칙은 향후 합병 시나리오를 전망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말하는 부실은행이란 기업여신 비중이 높아 아직껏 주가가 1000~2000원대에서 헤매는 대다수 대형 시중은행들과 상당수 지방은행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금융권 일각에서 거론되는 한빛은행과 조흥은행간 합병 시나리오나 조흥은행과 외환은행간 합병 시나리오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속내를 드러냈다. “외환위기후 1차 구조조정 때 정부는 한일- 상업-조흥은행을 하나로 합치려 하다가 한일- 상업 두 곳만 합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는 그러나 기대 이하였다.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음에도 현재 한빛은행의 주가는 조흥-외환은행보다도 낮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더욱이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공적자금이 바닥났다. 정부가 부실은행간 합병을 추진하려면 추가로 공적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총선 후에 여권이 압승을 거둬 추가로 공적자금이 마련된다면 몰라도 현재로서는 하고 싶어도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남는 모델은 우량은행간 합병 또는 우량은행의 부실은행 인수합병 두 가지밖에 없다. 그러나 이 또한 실현되기까지에는 넘어야 할 산이 한 두개가 아니다.

    우량은행간 합병 모델의 대명사는 뭐니뭐니 해도 주택은행과 국민은행간 합병. 두 은행 모두 소비자금융에 주력한 결과 국내 금융계를 강타한 외환위기와 대우사태라는 두 차례 해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또한 이들 은행의 주력 영업부문인 소비자금융은 앞으로도 은행의 여러 비즈니스 영역 중에서 가장 안정적 수익이 보장되는 황금지대다.

    따라서 이들 두 은행간 결합은 비록 그 과정에 중복점포 정리 및 과잉인력 정리라는 한 차례 진통을 겪게 될 것이지만, 가계대출 주택금융 카드 등 노른자위 사업부문에서 독점적 우위를 차지할 국내 최대규모의 소비자은행 탄생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 결합은 수익성이나 자산건전성 측면에서 가장 이상적 모델을 창출하게 될 것이라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실제로 최근 김정태 주택은행장은 국민은행과의 합병 가능성에 대해 다각적 검토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은행권을 초긴장시키고 있다. 김행장측은 주택은행의 경우 이미 전체 직원의 25% 정도를 계약직으로 전환시킨 만큼 합병시 불가피한 감원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소비자 전문은행의 경우 앞으로 점포수를 더욱 늘려야 하는 게 세계적 추세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결론적으로 주택-국민 합병을 통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주택-국민 합병 시나리오에 대한 여타 은행의 반응은 위기감 탓인지 대다수가 부정적이다. 우량은행으로 분류되는 한 시중은행장은 “주택-국민 합병이 이뤄지면 분명 국내 소비자금융시장을 독점, 다른 은행들보다 우월적 위치에 설 수 있을텐데 그러면 IMF 위기 후 소비자금융시장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다른 은행들은 모두 죽으란 말인가”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정부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 정부관계자의 말이다.

    “이론적으로는 주택-국민은행이 자발적으로 합병을 단행, 합병을 기피하고 있는 다른 은행들에 압박을 가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실적 측면에서 보면 현재 우리에게는 우량은행간 합병 외에 부실은행 처리문제도 병존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은행들이 부분적으로라도 이 문제를 처리하는 데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요컨대 이위원장이 제시한 세 번째 합병시나리오인 우량은행의 부실은행 인수방식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주문은 우량은행들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무리한 주문이다.

    한 예로 최근 벌어졌던 금융감독원 부원장 출신인 김상훈 신임 행장의 취임을 막기 위한 국민은행 노조원들의 싸움을 들 수 있다. 노조원들은 “김행장 취임을 계기로 혹시 정부가 서울은행을 국민은행에 떠넘기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기에 은행 사상 가장 길었던 장장 2주간의 싸움이 가능했다.

    정부는 홍콩상하이은행(HSBC)으로의 매각협상이 결렬된 뒤 오랜 기간 표류하고 있는 서울은행 문제를 풀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우량은행들의 협조를 얻어내려고 다각도로 노력했으나 별무성과였다. 주택은행의 경우 한때 서울은행을 소비자금융부문과 기업금융부문으로 나눠 소비자금융부문만 프리미엄을 주고 인수하겠다는 안을 내놓기도 했으나, 이 방식 또한 어느 은행엔가는 맡겨야 할 기업금융부문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던 만큼 공적자금이 바닥난 정부로서는 수용할 수 없었다.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할 때 최근 제3의 해법으로 금융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우량은행 두 곳과 부실은행 한 곳을 합치자는 ‘2+1 방식’의 이른바 ‘3자합병론’이다. 이렇게 하면 우량은행들이 떠맡게 될 부담을 분산할 수 있으며, 더욱이 과거 2자간 합병 때 심각한 부작용으로 발생했던 뿌리깊은 분파주의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3자합병론의 요지이자 특장이다.

    또한 이 경우 자산규모 100조원 이상으로 세계 랭킹 100대 은행 안에 드는 메가뱅크가 출현, 국제적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정부 관계자는 “최근 정부 내에서 3자합병안을 검토한 바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금융계에는 각종 3자합병 모델이 확대생산되고 있다. 가장 먼저 거명된 시나리오는 국민-외환-하나은행간 합병시나리오. 국민-외환은행의 경우 행장들이 모두 교체되거나 사의를 표명한 상태로 정부 영향력이 작용하기 용이하며, 하나은행의 경우 최근 주가급락 쇼크로 김승유행장이 기존의 투자은행화 전략에서 합병후 전문화로 전략을 수정하면서 합병에 적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3자합병 모델 주창자들은 세 은행이 합할 경우 국제금융, 소비자금융, 투자금융 및 프라이빗뱅킹 분야에서 고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합병시나리오에 대한 국민-외환은행의 반응이다. 이들은 3자합병의 시너지효과를 인정하는 전제 아래 보다 이상적 파트너로 기업은행을 꼽고 있다. 향후 가장 큰 자금수요처인 중소기업 고객을 광범위하게 확보하고 있는 기업은행이 다른 은행쪽보다 시너지효과가 크리라는 이유에서다. 비슷한 맥락에서 소비자금융과 중소기업 고객을 고루 확보하고 있는 한미은행을 선호하는 이들도 적지않다.

    금융계에서는 앞으로 전개될 가장 유력한 합병 시나리오로 3자합병을 꼽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일본의 최근 예에서도 볼 수 있듯 한 곳의 3자합병만 단행되면 그 뒤를 이어 생존차원에서 제2의 3자합병 또는 2자합병이 진행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어떤 이는 최근 주택은행이 국민은행과의 합병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도 3자합병의 가공스런 파괴력을 미리 읽고 사전대응하기 위한 측면이 강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현재로선 과연 어떤 형태의 합병이 진행될지 미지수다.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4·13총선 직후 합병의 거대한 파노라마는 시작될 것이며, 각 은행의 행장들과 구성원들은 가장 중차대하고도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리라는 사실이다.

    내부 갈등 줄이고 시너지효과 극대화 평가

    “검증되지 않은 시험 모델” 회의적 시각도


    지난 3월 초 독일의 자산규모 최대은행인 도이체방크와 3위 은행인 드레스드너방크가 합병을 선언, 자산규모가 자그마치 1조2000억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메가뱅크가 출현하게 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ABN암로, HSBC 등 내로라 하는 은행들이 독일의 또다른 대형 시중은행인 코메르츠방크 인수전을 시작하는 등 지금 세계금융계는 하루가 멀다하고 ‘메가 머저’(초대형 합병)가 단행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금융계와 당국이 예의 주시하고 있는 곳은 일본 금융계다. 지난해 중반 이후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합병방식은 3개 은행간 메가머저. 지난해 8월 다이이치간교, 후지, 닛폰고교은행 세 곳이 합병선언을 했다. 이어 지난 3월 중순에는 산와, 도카이,아사히 3개은행이 합병선언을 했다.

    일본이 이처럼 최근 3자간 합병을 선호하는 이유는 지난 95년 단행된 도쿄-미쓰비시간 합병처럼 2개 은행간 합병은 합병후 파벌간 갈등 등 각종 부작용을 낳는 데 반해, 3개 은행간 합병은 내부 갈등을 최소화하며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3자 은행간 합병은 다수결 원칙에 따라 의사결정을 빨리 할 수 있고, 각자 특장 분야별로 사업본부화를 단행할 수 있다는 점 등 다양한 장점을 갖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한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과연 3자가 모인다고 해서 분파주의가 쉽게 극복될 수 있겠는가”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3자 합병 모델 또한 검증되지 않은 시험 모델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이어 “합병을 유행에 따라가듯 해서는 안된다”고 전제, “합병의 시너지효과를 최우선시하고 합병 과정에 정리해야 할 인원 규모를 명백히 정한 뒤 1, 2년치의 명퇴금을 줘서라도 반드시 불필요한 군살을 빼겠다는 경영원칙 등이 확립된 뒤 둘이 합치든 셋이 합치든 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때 합병의 주체인 경영진들이 자신의 자리를 내놓는다는 비장한 각오로 사심없이 합병에 임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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