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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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석유로 떼돈 벌 수 있다”

“남는 지하 비축기지 ‘동북아 석유물류창고’로 전환…외국업체 빌려줘 수천억 임대료 챙기자”

  • 입력2006-02-21 13: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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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도 석유로 떼돈 벌 수 있다”
    한국을 동북아 석유 물류센터로 만들자’는 거대한 안(案)이 김대중대통령에게 보고돼 관심을 끌고 있다. ‘주간동아’가 단독으로 입수한 이 보고서는 한국석유공사(사장 나병선·66)와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 백영훈·70)이 공동으로 작성한 것. 이 보고서는 전쟁 발발 등 유사시를 대비해 석유를 비축해둔 국내 석유비축기지를 외국 석유회사에 개방해, 이 회사들의 동북아 물류 센터로 활용케 하자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 울산광역시 울주군과 경남 거제시, 전남 여수시 등 전국 여덟 군데에 66일분의 석유를 비축할 수 있는 비축기지를 건설해 놓고 있다. 이 비축기지는 대개 화강암으로 구성된 해안가를 택해, 해수면 기준으로 지하 50m쯤 되는 곳에 굴을 뚫은 것이다. 이 지하동굴은 높이 30여m, 폭 18m쯤 되는 거대한 규모로 그 길이는 수십km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한국은 이 지하 비축기지에 30일 분의 석유를 채워두고 있다.

    지하 석유비축기지는 70년대에 발생한 두 차례의 오일쇼크 때문에 건설한 것이다. 오일쇼크 이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유사시를 대비해 각국은 90일분의 석유를 비축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한국은 자금 부족 때문에 2000년 현재 66일분을 저장할 수 있는 비축기지에 30일분의 석유만을 저장해두고 있다. 그런데 문제의 보고서는 이러한 허점을 일거에 만회하고 돈까지 벌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한국-일본-중국-대만이 포진한 동북아는 세계에서 소비되는 총석유량의 15%, 아시아에서 소비되는 석유량의 63%를 소비하는 대소비지다. 한국을 제외한 3개국은 소량의 석유를 생산하지만 4개국 모두 석유 수입국이란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이 지역으로 가던 대형 유조선이 태풍을 만나 피항하거나 기타 사고 등으로 도착이 늦어지면, 이 지역의 유가는 일시적으로 오르게 된다. 이러한 불안정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 어디엔가에 대형 석유 물류센터를 만들어둘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한국이 자금 부족으로 다 채우지 못한 석유비축기지를 외국 석유회사에 석유 물류센터로 빌려줘, 그들로 하여금 석유를 채우게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남아 도는 비축기지를 채우면서 동시에 외국 석유회사로부터 비축기지 사용료를 챙길 수 있다. 반면 외국 석유회사는 동북아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으므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또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등 유사시에는 외국 석유회사가 갖다 놓은 비축유를 한국 정부가 돈을 지불하고 우선 사용한다는 단서 조항을 삽입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유사시를 대비한 비축유 부족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꿩 먹고, 알 먹고, 털 뽑아 부채질까지 하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석유비축기지를 석유 물류센터로 활용하자는 안에 제일 먼저 관심을 기울이는 회사는 노르웨이의 ‘스타트오일’(Statoil)사. 많은 사람들은 중동국가들이 석유를 수출한다고 생각하는데, 영국과 함께 북해에서 석유를 생산하는 노르웨이는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석유를 많이 수출하는 세계 제2위의 석유 수출국이다. 그러나 동북아 국가들은 대부분 중동에서만 석유를 수입하고 있어, 노르웨이로서는 동북아 시장을 개척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이해 관계 때문에 스타트오일사는 한국이 4일 동안 소비할 수 있는 석유(약 800만 배럴)를 한국의 남아도는 비축기지에 옮겨놓았다. 이로써 한국은 유사시에는 4일분의 비축효과를 거두게 됐고, 한국석유공사는 연간 65억∼100억원의 비축기지 사용료를 벌어들이게 되었다. 보고서는 이러한 사례가 있는 만큼 한국을 동북아 석유 물류기지로 만드는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자고 주장한다.

    석유 비축기지는 화강암지대에 건설해야 한다. 이러한 기지는 20만∼30만t급 초대형 유조선이 접안할 수 있도록 수심 30m 이상의 깊이를 가진 해안가에 위치하여야 한다. 동북아 4개국 중 이러한 지형조건을 갖춘 나라는 사실상 한국뿐이다. 중국은 수심 30m 이상의 해안도 없지만, 해안가 대부분이 흙으로 된 퇴적층 지대다.

    일본은 가고시마 일대에 무려 116일 분의 석유를 비축할 수 있는 지하 기지를 건설해 놓았다. 따라서 일본은 한국이 동북아 석유물류센터를 유치하려고 할 때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환태평양 지구대에 위치했기 때문에 비축기지를 늘릴 여지가 없다. 대만 역시 환태평양 지구대에 위치해 있어 지하동굴을 건설할 만한 곳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은 울주군-거제시-여수시 외에도 이런 자연 조건을 갖춘 곳이 많다. 이런 곳을 모두 비축기지로 개발할 경우, 한국은 무려 200일분의 이상의 석유를 비축할 수 있다. 또 석유 대소비국인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어, 석유 물류센터로서는 일본보다 더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점을 지적하며, 국내 자본이 부족하면 외국 자본을 유치해 비축기지를 지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보고서 내용대로 일이 추진되면 한국은 뉴욕-런던에 이어 새로운 석유 현물시장으로 부상할 수가 있다. 현물시장을 거쳐 선물(先物)시장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보고서는 한국이 국제 석유 유통의 중심지가 된다면 그만큼 안보도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두 번째로 한국도 적극적으로 석유 탐사 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각 산업은 대부분 G7이나 G10 국가 수준에 올라섰으나, 석유산업만은 중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70년대만 해도 석유 탐사는 미국 메이저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오일쇼크 후 유럽과 일본의 국영석유회사들은 적극적으로 석유 탐사에 나서, 지금은 대부분 석유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원유를 구입해 이를 정제하는 정유산업과 정제한 석유를 기반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석유화학산업만 보유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석유산업 구조로는 석유산업의 후진성을 면할 수 없다며 동해 고래 Ⅴ전에서 천연가스가 발견되듯 한반도 주변 대륙붕에도 원유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이를 찾아내는 산업을 육성하자고 주장한다. 보고서는 석유 탐사 비용은 실업자 구제대책기금 등 엉뚱한 데로 사용되고 있는 ‘에너지 특별회계’(구 석유기금)를 제대로 활용하면 된다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요즘 나병선사장과 백영훈원장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이 보고서 내용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나사장은 김대중대통령에게 이 안을 단독보고해 “아주 괜찮은 생각”이라는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백원장은 한국이 비축 시설을 늘릴 경우, 석유를 갖다 놓을 외국 석유회사가 있는지에 대해 사전 조사작업을 벌이고 있다. 김대중대통령은 한국을 동북아 석유물류센터로 만들고 한국도 산유국 대열에 적극 참여하자는 거대한 비전을 과연 행동으로 옮길 것인가.

    오! 제6광구… “석유는 있다”

    고래Ⅴ전 일대 여덟 곳 매장 가능성… 시추공 하나에 100억원 들어가


    브루스 윌리스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 ‘아마겟돈’은 지상에서 가장 큰 구멍을 뚫는 석유 시추 전문가들을 소재로 했다. 이 영화는 반(半) 건달인 구멍뚫기 전문가들이 지구로 떨어지는 유성으로 날아가, 거대한 구멍을 뚫고 핵폭탄을 삽입해 유성을 폭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인 중에서 가장 크고 깊은 구멍을 뚫는 이는 98년 6월7일 시추선 ‘두성호’를 이용해 울산 앞바다 60km 해상에서 ‘고래Ⅴ 가스전’을 찾아낸 한국석유공사의 이재택씨다. ‘툴 푸셔’(tool pusher)로 불리는 그는 18년간 구멍을 뚫어왔는데, 이날 10억달러로 추산되는 천연가스전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한국석유공사로서는 생산비와 각종 세금을 빼고도 3억달러의 순수익을 챙길 수 있게 됐으니, 대단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고래Ⅴ가스전 일대는 박정희대통령 시절부터 천연가스나 원유가 묻혀 있을 지역으로 꼽혀왔다. 그래서 외국 석유회사들이 앞다퉈 탐사에 착수했으나 전부 실패했다. 98년 나병선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최병구 국내탐사부장에게 외국 석유회사들의 실패 원인을 분석케 했다. 최부장은 ‘석유는 1000만년 전 지층에 묻혀 있을 것 같은데, 외국 석유회사들은 1600만년 전 지층만 집중 탐사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시추공을 하나 뚫는데 대략 100억원 정도가 들어간다. 당시는 IMF 경제 위기가 심각했으니 실패를 전제로 한 시추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단 한 번이라는 전제하에 1000만년 전 지층이 있는 지하 2500m 지점에 대한 탐사를 시도했는데, 단번에 가스층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99년 두 군데 평가정을 뚫어 조사하자, 10억달러로 추산되는 가스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박정희대통령 시절 ‘제7광구’라는 노래가 유행했었다. 박정권은 이렇게 분위기를 띄워 놓은 뒤 포항에서 석유가 나왔다는 사기극을 연출했다. 그때의 실망 때문일까. 국민은 한반도 주변에서는 석유가 나오지 않는다는 강한 선입견을 갖게 되었다. 석유 탐사는 메이저들의 전유물로만 생각하고 석유 탐사 쪽은 아예 넘보지도 말자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 대륙붕에는 석유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동해 울릉분지와 이어져 있는 일본 니가타(新瀉)현에서는 석유가 생산된다. 중국은 제주분지와 연결된 동중국해의 핑후유전에서 석유를 뽑아 올리고 있다. 고래Ⅴ전 일대는 6광구에 속한 곳인데 한국석유공사는 6광구의 여덟 군데를 석유나 가스가 묻혀 있을 유망지역으로 보고 있다. 이제는 지상에서 가장 큰 구멍을 뚫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제6광구’라는 노래를 지어 불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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