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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의 2세들

“나는 나!… 내 멋대로 살래”

톡톡 튀는 김지하 조한혜정 박혜란 이경재씨 자제들 화제…“열린 부모 밑에서 열린 자식 나온다”

“나는 나!… 내 멋대로 살래”

“나는 나!… 내 멋대로 살래”
최근 소설가 박경리씨의 외손자이자 시인 김지하씨의 외아들인 원보씨(26)가 문단에 데뷔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의 등단 소식은 ‘3대를 잇는 문인집안’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지만, 원보씨 개인의 독특한 경력 역시 세인의 이목을 끌 만한 것이었다. 원보씨의 ‘전직’은 컴퓨터 게임 디자이너. 고교 졸업후 대학 진학을 미뤄둔 채 ‘마리텔레콤’이라는 회사에 들어가 머드게임 ‘단군의 땅’ 컨셉트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내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을 구현하는 데 적합한 매체가 무엇인지에 따라 매체를 선택했습니다. 처음엔 그게 게임이었고, 다음엔 소설이었던 거죠. 굳이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작심했던 건 아니에요.”

학교 자퇴 뒤 언더음악에 빠져

‘문학과 의식’을 통해 발표한 그의 데뷔작 ‘마왕의 기원’ 역시 컴퓨터 키드 세대들에게 익숙한 ‘팬터지 소설’. 한땀 한땀 수를 놓듯 소설과 시를 빚었던 할머니, 아버지와는 사뭇 거리가 있는 ‘신세대적 글쓰기’다. 원보씨는 뒤늦게 대학진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입시를 준비, 올 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원보씨의 경우처럼 ‘유명인사’의 자녀이면서 부모의 후광을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는 2세들이 적잖이 눈에 띈다. 특히 이런 ‘2세들’의 진출이 두드러진 분야는 문화계. 그룹 ‘패닉’의 멤버였던 가수 이적(본명 이동준)의 어머니가 여성학자 박혜란씨이며, 가수 조관우씨의 아버지가 인간문화재 조통달씨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삐삐밴드’에서 활동했던 가수 이윤정씨는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경재씨의 딸. 드러머 남궁연(본명 김도연)은 전직 서울대 화공과 김모 교수의 아들이자 윤보선전대통령의 외손자이고 록 그룹 ‘들국화’의 멤버인 최성원씨는 ‘그리운 금강산’ 을 지은 작곡가 최형섭씨의 아들이다.

이들 중에는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대학진학을 뒤로 미루거나 아예 학교를 자퇴한 경우도 더러 발견된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 활동중인 L씨(예명:폐인)가 바로 그렇다. 그의 아버지는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서울대 L교수. “누구누구의 아들로 소개되는 것이 싫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이름은 공개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음대 작곡과를 1년도 채 다니지 않고 자퇴했다. “음악이 좋아서 대학에 진학했지만 서양 고전음악 중심의 편협한 교육풍토가 싫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게 자퇴의 변이다. 그의 아버지 L교수는 매우 ‘파격적인’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로 세인의 화제를 불러모은 주인공이지만, 아들의 외모는 아버지보다 한 발 앞선다. 허리까지 기른 머리, 귀에 열 군데 가까이 구멍을 뚫고 주렁주렁 매단 귀고리와 체인, 왼쪽 콧등에까지 피어싱(구멍뚫기)을 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 일색. 속옷도 검은 색만 입고 다닌다고 한다.



“처음 학교를 박차고 나왔을 땐 아버지와 충돌이 물론 많았지요. 하지만 결국 아버지도 제 고집과 원칙을 이해하시기에 이르렀고, 지금은 부자간에 서로를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가’로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의 아들 전한해원씨.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캠퍼스 안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다니는 등 ‘서울대 명물’로 통하는 그 역시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제도권 교육의 획일적 틀에 길들여지기 싫어서였다. 고교를 자퇴하고도 오히려 또래들보다 1년 일찍 서울대에 입학해 화제를 모으는가 하더니, 음악전문 CA TV의 비디오자키로도 활동했다. 그렇다고 그는 ‘외모만 튀는’ 신세대는 결코 아니다. ‘또 하나의 문화’ 등을 통해 대안문화운동을 활발히 펼쳐온 어머니의 영향 덕에 그는 속까지 알찬 페미니스트로 여물었다. 어머니 성 함께 쓰기 운동에 조응해 외할머니의 성을 이름 앞에 붙였고, 지난 해엔 페미니즘 저널 ‘이프’가 주관한 ‘안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유일한 남성 출전자로 참가하기도 했다.

이렇듯 유명인 2세들이 톡톡 튀는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데는 ‘자신이 걸었던 길’을 자녀에게 강요하지 않은 부모들의 ‘열린 자세’가 뒷받침되어 있다.

‘삐삐밴드’ 이윤정씨의 아버지 이경재의원은 공부 잘하는 언니와 오빠 사이에서 유독 성적이 처졌던 막내딸을 늘 허허 웃으며 대해주었고, 서울대 L교수는 아들이 어느날 귀를 뚫고 집에 돌아오자 꾸중을 하는 대신 “그거 뚫을 때 아프지 않든?”이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적의 어머니 박혜란씨가 세 아들을 ‘내팽겨치고 길렀다’는 것 역시 유명한 이야기. “부모가 일일이 간섭하지 말고 아이를 전적으로 믿어주면 아이 스스로 제 갈 길을 간다”고 굳게 믿은 그는 막내아들이 고3일 때 수험생 뒷바라지를 하긴커녕 교환교수를 맡아 훌쩍 중국으로 떠나가 버렸다. 멀쩡히 서울대 사회학과에 다니던 둘째 아들이 번쩍거리는 바지를 입고 번개머리를 한 채 TV 가요프로에 나왔을 때도 ‘놀라서 기절할 뻔’ 했을망정 가타부타 말 한 마디 안했다.

요 몇 년 사이 ‘부모의 유명세’를 박차고 나온 2세들이 부쩍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더그라운드 뮤지선이자 문화비평가인 안이영노씨는 ‘기성문화에 대한 신세대들의 회의와 반성’을 첫째 이유로 꼽는다.

“80년대 한껏 부풀어올랐던 경제 성장심리와, 진보적 운동을 통해 사회를 개혁할 수 있다는 희망이 90년대 들어 사그라들면서 ‘대안문화’에 대한 갈망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회적 심리에 ‘부모 세대의 유산을 더 이상은 고스란히 물려받지 않겠다’는 개인의 욕구가 맞물려진 결과 ‘부모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삶’을 선택하는 2세들이 배출되기 시작한 거죠.”

21세기는 갈수록 개인의 창의력과 개성이 중시되는 시대. 앞으로 ‘톡톡 튀는 2세’들은 날로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이들이 더 이상 ‘신기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고, 우리 사회의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을 날도 머잖아 다가올 것으로 전망된다.

“어머! 너 안병찬교수 아들이라며?”

신문기자 출신 부모들 ‘방목교육’… 음악활동 앞장서 도와줘


언더그라운드 록그룹 ‘허벅지 밴드’의 리더이자 문화기획자, 비평가로 활동중인 안이영노씨.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일하다 ‘딴따라’의 길로 접어든 안씨 역시 기자 출신 시민운동가 이정자씨(현재 시민운동기금 이사)와 경원대 신방과 안병찬교수 사이에서 자라난 ‘유명인 2세’다.

“저 역시 한때 ‘누구의 아들’이라는 말을 부담스럽게 여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실을 부담보다 고맙게 생각하고, 오히려 적극 활용하려는 편이에요. 부모님이 알려진 분들인 만큼 ‘후광을 입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 자신 더욱 열심히 일을 할 수밖에 없잖겠어요?”

그는 자라나면서 특별히 부모의 영향을 받은 기억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부모가 자신에게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고 방임해준 것이야말로 가장 큰 ‘빽’이 아니었던가 싶다.

신문기자 출신이었던 부모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즈음 대를 이어 언론계에 진출하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결국은 아들이 선택한 삶을 전적으로 인정해주고, 음악활동한다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땐 금전적 지원도 해주었다.

“자식이 ‘마이너리티’, 즉 ‘소수자’로 살아가려는 것을 용인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바로 그것을 제게 해주신 겁니다.”




주간동아 225호 (p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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