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5

2000.03.16

“JP 이탈 땐 한나라 일부세력 잡아라”

여권신당 창당 99년초부터 은밀히 진행…“30, 40대 시민운동가들과 창당 논의”

  • 입력2006-02-21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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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P 이탈 땐 한나라 일부세력 잡아라”
    여권 핵심부는 오래 전부터 DJP 공조가 와해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나름대로 대비책을 세웠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새천년민주당이 창당되기 훨씬 전인 작년초부터 은밀하게 진행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대중대통령이 여권신당의 창당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김종필총리 및 자민련과의 공조와해까지도 각오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여권 핵심부는 민주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 일부 세력을 끌어들이는 방안도 고려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주간동아’가 단독입수한 ‘집권여당 창당계획’(이하 창당계획)이라는 제목의 비밀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서울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민주당이 창당대회를 가진 것은 지난 1월20일. 그러나 김대통령의 일부 핵심측근들은 지난해 4월께부터 새로운 집권당 창당을 위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려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창당되기 9개월 전이다. 당시 작성된 ‘창당계획’에 그 전모가 실려 있다.

    A4용지 24쪽 분량의 이 문건은 크게 여섯 가지 내용으로 나뉘어 있다. △창당의 필요성 △창당 모토 △새 여당이 정립해야 할 기본 이미지 △당명 △정당의 기본골격 △창당 경로와 방식 등이다.

    이 문건의 작성자는 내용으로 보아 정국사정에 정통한 김대통령의 측근 인사로 판단된다. 이 문건은 조직원리와 정강정책, 지구당 혁신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문건 곳곳에 ‘대통령님’ ‘통치권’ 등의 용어가 등장하고 있어 김대통령에게 보고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건은 우선 새로운 집권여당 창당 필요성을 크게 세 줄기로 정리하고 있다. △국정쇄신 분위기의 극대화 △총선 대비 집권당에 대한 지지 강화 △DJP 연합, 국민회의-자민련 관계 재정립 등이다.



    “경제위기 극복 중심의 국정을 국민생활의 안정화 향상 중심의 국정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 “국민회의는 능력있는 집권여당으로 탈바꿈하는 데 실패했고 전국정당화하는 데도 한계에 봉착했다. 따라서 국민회의의 보완보다는 새 집권당 창당이 여권을 혁신하고 국민지지를 극대화하는데 유리하다” “국민회의-자민련 연대는 국민의 정부에 부여된 시대적 사명을 실현하는데 한계가 너무 크다.”

    문건은 ‘DJP 연합’과 관련해 한 페이지 이상을 들여 설명하고 있다. “창당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내각제 문제의 깨끗한 마무리와 DJP 연합의 재정립”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신당은 합당이 아닌 새로운 집권당 창당운동에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동참하는 것”이라고 규정, 실질적으로 ‘자민련의 흡수를 통한 집권당 창당’을 계획했다. 이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문건은 “양당 합당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합당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준비를 해두는 것이 현명하다. 창당이 양당의 단순통합 방식일 때 야합보수회귀란 비판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집권당 건설 과정에서 양당 관계를 공론화하고 제3세력을 능동적으로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양당 참여는 합당이 아닌 새로운 집권당 창당운동에의 동참방식이 돼야 한다. 새로운 집권당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수순을 통해 야합-보수회귀란 비판을 차단해야 한다”고 창당의 큰 틀을 그리고 있다.

    또 “내각제 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와 대책을 시급히 수립해 이제는 마무리할 채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라며 내각제 문제의 빠른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내각제 약속에 대해 여권 핵심부가 갖고 있는 부담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의 정부의 최대 정치적 부담은 내각제 문제다. 이 문제를 깨끗이 정리해야 국정 안정화 및 재집권에 대한 국민적 믿음의 확립이 가능하다. 내각제 추진을 총선 후로 연기하되 추진방법-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혀 신뢰성에 대한 국민적 믿음을 강화하고 차기 총선에서 이슈화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이유는 분명히하는 당당한 자세로 임해 통치권의 자신감을 보여줘야 한다.”

    문건에 나타난 신당의 기본 골격은 현 민주당의 구성과 비슷하다. 문건은 “지도부 인물특성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 지지기반 확대에 유리하다. 국정 안정감을 주는 인물, 차세대 이미지의 인사, 비정치권 신진인사들이 골고루 참여하는 방식으로 구성해야 한다. 국정능력, 미래지향성, 정치권 개혁(수혈)의 이미지를 통합해 재집권에 대한 국민적 확신을 강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강원도 대접론’도 눈에 띈다. “지역들의 수평적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권역별 대표들을 최고위원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강원을 충청권 등에 포함시키지 않고 독자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예상 외로 깊은 강원지역의 소외감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이 대목은 강원 출신 장을병 최고위원이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은 점 등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문건은 ‘집권여당 창당에 대한 사회 정치적 반응’을 일반 대중, 개혁세력, 보수세력, 정치권 등으로 나눠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그러면서 “외곽 때리기를 통해 창당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권 외부세력(종교인, 새롭게 정치에 입문코자 하는 세력, 시민사회운동 세력이나 전문가 그룹 등)이 정치권의 개혁을 제기하며 ‘재창당을 통한 여당혁신’을 제안하면 자민련이 반발할 근거가 약하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들과 교감을 가지려는 세력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여권 핵심과 교감한다는 의심을 받지 않을 학자, 시민사회운동가들의 언론칼럼 등을 유도” “정권교체의 정신, 국민의 정부의 시대적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에너지를 모아낼 수 있는 새로운 여당, 힘찬 집권당을 창당해야 한다고 당 외부에서 제안”할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문건은 또 “30, 40대 시민사회 운동가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비공식적으로 전개하고 있다”며 사람들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현재의 정국과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對정치권 전략’이다. 우선 ‘對자민련 전략’. “우선 창당운동에 박차를 가해 성과를 거둔 뒤 자민련을 설득한다. 창당운동의 성공은 새로운 집권당의 지지기반 확대를 예고하는 것으로 자민련의 입지약화와 진로 문제의 심각화를 야기할 것이다. 그때 자민련 동참시의 공생과 JP 고사불가 등을 적극 설득한다. 자민련이 ‘DJP 파기 위협’을 해올 경우에 대해서 당 외의 제3 주체들이 한나라당 일정세력들과 대화한다. 이런 대화는 DJP 파기시 ‘자민련을 대체하는 새로운 연대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정치권 한 소식통은 ‘JP를 대체할 한나라당 일정세력들’을 크게 두 갈래로 분석했다. 그는 “민주당 창당을 앞두고 한때 조순 의원 등이 참여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었다. 강원도에 기반을 갖고 있고 나름의 인기가 있는 그를 ‘JP대체재’로 봤던 것이 아닌가 싶다. 또 김대중정권 초기부터 꾸준히 거론됐던 이른바 ‘DJ-YS 연합’도 한 갈래로 볼 수 있다. 막후에서 상당한 이야기가 진행됐었는데 YS가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건에 나타난 ‘對한나라당 전략’의 핵심은 ‘당 외부세력이 한나라당 사람들과의 접촉을 담당하도록 한다’는 것. “한나라당 일정세력을 집권여당 창당운동에 끌어들일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국민회의가 직접 교섭하면 한나라당의 강한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당 외부세력들(나중에 제3의 창당주체가 될 세력들)이 세력확장을 위한 방책의 하나로 한나라당 사람들을 만난다면 한나라당 지도부가 대응키 어려울 것임.”

    문건은 “창당 기획을 위한 비밀 태스크포스 팀 구성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집권당 창당을 위한 당 외부 인사모임을 결성하는 방식으로 출발해서 창당주체를 형성해 가야 한다”고 창당 수순을 그렸다. 실제로 민주당은 이와 유사한 창당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다. 민주당 이재정 현 정책위의장이 이사장으로 있었던 국민정치연구회, 실제로 가동됐던 창당 비밀작업팀의 존재 등이 이를 입증한다.

    ‘창당 비밀팀’ 실제로 있었다

    정동채 정동영 김민석의원 주도 … 마포에 비밀사무실 열어 실무작업


    문건에 나타난 창당을 위한 ‘태스크포스’는 실제로 있었을까. 결론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창당 수개월 전부터 보이지 않는 비밀팀이 움직였던 것. 팀장은 정동채의원. DJ의 비서실장을 지낸 정의원은 김대통령의 의중에 밝으며 탁월한 기획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사. 정의원과 팀을 이룬 사람은 정동영 김민석의원 등이었다. 이들은 서울 마포에 있는 한 오피스텔에 비밀사무실을 마련해 놓고 창당을 위한 실무작업을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밤에 만나 작업을 하곤 했다는 것.

    정동채의원이 전체적인 그림과 기획을 담당하고, 정의원과 김의원이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고 실무접촉을 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김의원은 실무 부분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김의원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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