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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가족의 반란

“가족? 그런 거 필요없어!”

청소년들 가출 뒤 가족과 단절… “핏줄이라는 이유로 날 잡지 마”

“가족? 그런 거 필요없어!”

“가족? 그런 거 필요없어!”
가출 중인 노양(18)은 1월26일 ‘지나가다가 너무 추워서’ 서울 ‘구로청소년쉼터’에 들렀다. 3일 뒤 기자가 그곳을 찾았을 때 그녀는 ‘몸을 충분히 녹였다’며 짐을 싸고 있었다.

이날 밤 가리봉오거리 유흥가에서 술집에 다니는 친구 S양을 만나 ‘진탕’ 논다. 그리고 어디든 들어가 돈을 번다. 노양의 향후 계획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 설엔 경기도 부평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부모와 함께 지낼 거라 한다. “‘혹 떼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요.”

노양에게 ‘가족’이란 무슨 의미일까. 노양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상습적으로 가출했다. 중산층의 친부모인데다 특별히 구박한 것도 아니며 부모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다. 단지 부모와 사는 것이 재미없고 친구들과 자유롭게 어울리고 싶기 때문. 그러다가 이번처럼 임신 등 갑작스레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염치불구’하고 집에 잠시 들어가 있다가 나오는 것이다. 노양은 원조교제까지 함께 하는 S양이 자신의 진짜 가족이라고 말한다.

‘가족? 그런 거 없으면 어때.’ 요즘 청소년들은 전통적 의미의 가족을 쉽게 버린다. 가족이 자신을 쫓아내도 ‘세상이 무너질 듯’ 상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새로운 유형’의 가족관계를 만들어 간다.



가출하는 청소년들의 대부분은 결손가정 출신이다. 가출이 일시적 혼란으로 그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민우회 유경희사무국장은 요즘의 10대들에게서 가족에 대한 인식은 확실히 바뀌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혈연관계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잡지 말라. 가족이라도 내가 싫으면 떠난다’가 가출하는 청소년이 생각하는 가족관입니다.”

그러나 정말 ‘집 나가면 고생’이란 말이 틀리진 않다. 10대의 가출은 대개 자신에게 생산적이지도 않고 비전도 없는 ‘막 살기’ 식으로 흐른다. 그래서 이들은 더욱 더 ‘가족의 대안’에 집착하는지 모른다.

구로청소년쉼터에서 만난 이양(18)의 7년 가출생활은 ‘새로운 가정’을 만들고 싶어하는 가출청소년의 심리를 그린 것 같았다. “친부모가 이혼해 13세 때 소꿉친구 K양이랑 집을 뛰쳐나왔죠. 광주의 다방에서 1년 있다가 서울 압구정동에서 보도생활을 했습니다. 그것 외엔 할 일이 없었습니다. K랑 서울 중곡동에 월세 20만원짜리 방을 마련해 공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6년이 지난 지금 남은 돈은 300만원도 안됩니다. 보도생활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이틀 전 쉼터를 찾았습니다. 미용기술을 배울 생각입니다. K와 난 가족입니다. 둘은 언제나 함께 있었고 어려울 땐 돈도 그냥 줍니다. 앞으로도 늘 같이 있을 겁니다.”

보호기관에서 만난 가출청소년들은 ‘사랑’이나 ‘희생’ 같은 가족의 의미까지 하찮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가족 특유의 따뜻함’이 무엇인지 너무 느껴보고 싶어서 가족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청소년문제 전문가들은 가출청소년을 집에 돌려보내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귀가’만이 능사일까. 전문가들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도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가출청소년에겐 일자리가 없어요. 정부예산이 지원되는 쉼터는 전국에 11곳뿐. 그나마 쥐꼬리만한 예산에 아이들이 아파도 치료도 못해 주죠. 공부를 가르쳐 준다는 ‘그룹 홈’이나 ‘직업기술학원’도 열악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출청소년에게 ‘계속 여기에 머무르며 인생을 설계하라’ 고 권할 만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사회복지사 김세희씨)



주간동아 2000.02.10 221호 (p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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