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7

2000.01.13

“희망 텃밭에 행복을 일궈요”

밀레니엄 행복테크… 건강-가족 소중함 느끼며 베푸는 삶 속에 넉넉함이

  • 입력2006-06-09 12:0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희망 텃밭에 행복을 일궈요”
    어느 한적한 바닷가 장면 하나. 도시에서 온 한 부자가 해변을 거닐다 자기 배 곁에 드러누워 빈둥대는 한 어부를 만났다.

    “여보쇼, 이 금쪽 같은 시간에 왜 고기잡일 안가시오?”

    “오늘 몫은 넉넉히 잡아놨습니다.”

    “시간 날 때 더 넉넉히 잡아놓으면 좋잖소.”

    “그래서 뭐하게요?”



    “돈을 더 벌어 큰 배를 사고, 더 깊은 데로 가 더 많이 잡고, 그러면 또 돈을 더 벌어서 새 그물을 사고… 그러다 보면 나처럼 부자가 되겠지요.”

    “그러고는 또 뭘합니까?”

    “아, 그렇게 되면 편히 누워 한가롭게 삶을 즐길 수 있잖소.”

    “내가 지금 그러고 있잖소?”

    빙긋이 웃는 어부.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경쟁과 효율의 세기 20세기를 치달아오며 많은 이들이 보다 많이 벌고, 보다 많은 힘을 얻고, 보다 많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 애써왔다. 그러나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행복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초가삼간에 살며 끼니를 굶어도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온세상의 부와 명예를 움켜쥐고도 불행해하는 사람도 있다. 동서고금의 행복론은 대부분 행복을 ‘욕심이 없는 상태’와 연결시켰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신약성서 마태복음)부터 ‘행복은 자주와 자족 속에 있다’(아리스토텔레스), ‘그대가 이 순간을 즐기기 시작할 때 행복은 그대를 따라온다’ (라즈니쉬)에 이르기까지.

    다른 한편으로 20세기의 행복론은 소비와 연결되는 형태로 변질되기도 했다. ‘행복이란 보다 새롭고 것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돼버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비아그라를 비롯해 각종 우울증 치료제 등 ‘행복해지는 약’이 불티나게 팔리고 행복향수가 만들어진다. 대중매체들은 20대 80의 사회라는 엄혹한 현실보다 스포츠, 스크린, 섹스에 관심을 기울이라는 기호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막상 한국인의 행복관은 이보다는 소박한 차원에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가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확인한 ‘새 천년에 개인적으로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의 내용이 바로 그렇다. 무엇보다 가족의 건강(25.8%)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있었고, 다음은 화목한 가정(23.0%), 재산증식(10.7%), 자기계발(10.2%), 안정된 직장(10.1%), 질 높은 자녀교육(5.9%), 쾌적한 주거환경(3.0%) 등의 순이었다.

    이를 참고해 한국인의 소박한 행복관을 충족하기 위해 꼭 필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자.

    지난 93년 후두암으로 후두적출수술을 받은 이규현씨(70)는 “목소리의 중요성은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목소리를 잃게 된 직접적 원인은 공무원 생활 30년간 하루 2갑씩 피워온 담배 때문. 실제로 후두암 환자의 95%가 담배로 인한 발병이라고 한다. 그는 이제 호흡은 목에 뚫은 기관공으로, 말은 식도로 한다. 식도에 공기를 넣어 이를 이용해 소리를 내는 식도발성이 가능하기까지, 6개월이 넘는 고된 발성훈련 기간을 겨쳤다.

    후두암 4기, 방치하면 1년내 사망이란 선고에 목소리를 포기하는 수술을 받고는 “죽고 싶었다”던 그는, 막상 수술 뒤 더 활기차게 살고 있다. 음성재활교실을 찾는 후배 환자들에게 식도발성법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고, 국내최초로 식도발성법 교재를 내기도 했다. “건강할 땐 건강의 소중함을 모르지요. 한 번 건강을 잃어보면 삶에 대한 경건함이 생깁니다.”

    한 병원 홍보실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최모씨(30)는 일을 위해 건강을 무시했다가 뒤늦게 ‘철이 든’ 케이스. 1년전 지방간 판정을 받은 그는, 간염병력마저 있어 자칫 간경화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의사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술을 끊지 못했다. “업무를 따내는 것 자체가 술 없이는 어렵기 때문”이었다는 그를 심기일전하게 만든 계기는 이제 100일을 맞는 첫딸의 탄생. 밤마다 술자리에 끌려다니는 악순환을 반복하던 그는 이때부터 운동을 시작하고 술자리도 선별해 참석했다.

    그 덕에 93년 입사 때보다 20kg 이상 불었던 몸무게는 10kg 정도 줄어들었다. 이제 그는 “몸이 가벼워지면서 오히려 의욕이 생기더라”고 말한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인데, 끌려다니기만 하던 삶에서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삶으로 바꾼다는 게 일에 주는 효과도 상당하더군요.”

    아픈 만큼 성숙해진 이들의 공통된 지적은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것. 연세대 의대 가정의학과 강희철교수는 “오늘날의 질병 대부분은 잘못된 생활습관에서 오는 것”이라 지적한다.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균형있는 식생활, 운동, 금주와 금연만 잘 지켜도 대부분의 성인병의 위협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세파가 험난해질수록 ‘마지막 도피처’로서 가족의 중요성은 크게 다가온다.

    95년말 IMF가 조금 일찍 닥친 모증권사의 부지점장 직에서 퇴출된 박영길씨(48)는 “어려움이 닥칠수록 가족의 중요성이 새록새록 확인되더라”고 말한다. 한동안 집에 퇴출 사실을 알리지 못했던 그가 부인 윤순이씨(48)에게 고백을 한 순간이 그로서는 백만대군을 얻는 순간이었다. 마침 수능시험을 한 달여 앞둔 장남을 고려, 자녀들에게도 말을 못하고 부부가 끙끙 앓았다.

    그 뒤 일거리를 찾아 헤맨 과정은 박영길씨에겐 “내 인생에 원군은 아내밖에 없다”는 점을 몸으로 느끼게 한 기간이었다. 잠시 우유대리점을 내기도 했지만 지금의 스포츠마사지점을 내기까지 3년여 방황의 시간이 이어졌다.

    최근 사업이 자리를 잡는 조짐이 보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중. “둘이 함께 일하니 이 정도라도 안정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행복을 찾아야죠.” 윤순이씨의 말이다.

    지난해 강화도로 귀농한 이광구씨(38)도 “귀농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세 아이와 아내임을 더욱 절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귀농생활 자체가 가족단위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더욱 가족의 중요성이 절실해진다는 얘기다.

    일찍이 앨빈 토플러는 재택근무와 소호족 등의 등장으로 해체됐던 가족이 다시 부상할 것이라 예측한 바 있지만, IMF라는 외풍을 맞이한 한국사회에서도 “뭐니뭐니 해도 내 가족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고백하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한편 21세기 가족의 형태는 지금의 핵가족 위주보다 훨씬 다양해질 전망. 이혼과 재혼을 거친 새로운 가족, 동성애 가족, 계약결혼이나 동거가족, 일정한 연고로 묶인 공동체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에 따라 새로운 가족의 형태에 어울리는 행복찾기도 진행될 전망.

    ‘나 홀로’ 행복이란 게 존재할까. 인간(人間)이란 한자 자체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 혼자서 열락의 행복을 느껴도 바로 곁의 이웃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그 행복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

    수십년간 행복을 연구, ‘행복의 추구’라는 연구서를 펴내기도 한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빗 마이어스는 행복한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점을 자신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 낙천적인 사람, 외향적인 사람, 종교적으로 열성인 사람이라 정리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인간관계가 좋다는 점이란 설명이 뒤따랐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 항상 따뜻하고, 사교적이고 개방적이라 짝을 빨리 찾고 좋은 친구가 많으며 직장에서 인기도 높다는 것.

    특히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까운 친구를 가진 사람들이 홀로 지내는 사람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 또 기혼자가 독신자보다 행복하며 오래 산다는 점을 보여주는 국내외 조사 통계도 여럿 나와 있다.

    여기서 나아가 이웃의 개념은 공동체로 확장될 수 있다. 흔히 매스컴을 통해서나 주변에서 자원봉사나 기증을 한 미담들을 듣고 즐거워지는 일이 적지 않다.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새우젓을 팔아 전국 초등학교에 책을 보내는 일을 16년째 해온 유양선할머니(66)는 “내 행복은 이거여. 아등바등 팔아서 집을 넓히면 뭐할 거고, 저금을 많이 하면 뭐할 거여”라고 말한다. 그간 보낸 책들이 3억원어치가 넘고 평생 모은 돈으로 장만한 건물 한 채를 고향인 서산 한서대에 기증하기도 한 그에겐, 요즘 새우젓 장사가 시원치 않아 책 보내기가 어려워졌다는 게 유일한 푸념거리다.

    매일 독거노인에게 도시락 배달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정기숙할머니(61)도 “힘들다가도 일을 끝내고 집에 갈 때면 마음이 그렇게 기쁠 수 없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남 돕는 생활에는 또하나의 소득이 있다. “뜻있는 일을 하면서 자식이나 주변사람들이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는 것.

    과거 한국문화는 돈을 밝히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는 돈, 혹은 재테크는 새 천년의 중심화제다. 돈이 돈을 버는 시대에, 돈이란 그저 ‘있으면 편하고 없으면 불편한’ 것에서 이제 ‘한 번 없으면 더 없어지는 것’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 중산층의 몰락현상은 정보력을 갖춘 중산층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주식시장에 1000만명이나 되는 투자자가 몰리고, 재테크란 단어가 대중화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월급이 깎이고 미래가 없어진 샐러리맨들은 쥐꼬리만한 자산을 주식투자에 쏟아놓고 희망을 건다.

    여윳돈을 모두 주식에 넣고 “매일 주식시세를 들여다보는 게 유일한 낙”이라 말하는 회사원 신모씨(35)는 자신의 심리를 “향후 재편되는 20대 80의 사회에서 20에 낄 가능성은 희박해도, 아주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겠다는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이라 설명한다.

    내집마련도 미루고 전재산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회사원 이모씨(34)는 한걸음 더 나아간 케이스. 그는 자신의 주식투자가 ‘사활을 건 몸부림’이라 말한다. “벤처 시대에 스톡옵션이니 억대 연봉이니 해서 또래들이 몇억씩 번다는데 나같은 문과 출신은 어디에 걸어야 하겠는가.”

    지난해와 올해 정도가 승부를 걸 마지막 기회라고 본다는 그는, “윗세대가 부동산에 투자해 한몫 모았듯, 우리 세대는 바로 지금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의 불균형, 자본의 불균형이 이어지는 근래 몇년간의 혼란 속에서 한몫을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1000% 상승률을 기록했던 새롬기술을 뒤이을 종목을 발굴하기 위해 밤마다 인터넷 뒤지기로 날을 샌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입모아 강조하는 재테크의 원칙은 분산투자와 전문가에게 맡기기 등. 하나은행 압구정지점 문순민 영업점장은 여기에 두 가지를 보탠다.

    “우선 사람이 몰려들면 돈은 달아난다는 원리”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으므로 남들과 반대로 하라는 권고다. 가령 너도나도 코스닥으로 뛰어들 때는 이미 조심해야 할 때란 얘기다.

    둘째는 “돈이란 쫓아다닌다고 붙는 게 아니다”는 지적이다. 최고의 수익률을 자랑하는 재테크는 주식이나 부동산 금융상품이 아닌 사람에 대한 투자라는 것. “본인에 대한 투자 다음으로는 인간관계에 투자하라”는 게 그의 충고다. 재테크에 성공하려면 정보가 있어야 하고 이런 정보는 신문이나 매스컴이 아닌, 개개 인간관계에서 얻어진다는 것. “돈을 쫓아다니면 삶이 피곤해지지만, 인간관계를 잘 형성해두면 즐거움과 기회를 모두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기회가 왔을 때 포착할 수 있는 판단력은 본인의 것이지만.

    ◇ 지력

    밀레니엄 행복을 위해 마지막으로 필요한 게 뭘까. 세상의 흐름과 동떨어져 살 수는 없는 만큼 이를 따라잡을 어느 정도의 지력(知力)은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컴퓨터를 다룰 줄 알고 인터넷을 활용할 줄 아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심지어 농촌에서도 인터넷 없이는 생활이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 는 게 귀농한 이광구씨의 말.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이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은 21세기 행복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신문 잡지는 물론 한달에 몇권 정도의 단행본을 읽는 것도 습관이 돼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자기혼자만 뒤떨어질 수는 없다. 이웃이나 친구들을 만나 나름대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건넬 수 있는 것도 바로 독서에서 오고 이는 바로 행복이 아니겠는가. 행복을 논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쉬게 할 수 없다는 논리는 사실 아주 과학적인 것이기도 하다. 행복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서 느끼는 것이란 점이 과학의 영역에서 밝혀진 것. 늘 깨어 있는 정신 곁에 밀레니엄 행복이란 파랑새는 날개를 파닥이고 있는 게 아닐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