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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탐정시대

한국의 ‘셜록홈스’들이 뛴다

사설탐정업소 10여곳… 업체 신용도 조사 등 ‘경제탐정’임무 늘어

한국의 ‘셜록홈스’들이 뛴다

한국의 ‘셜록홈스’들이 뛴다
서울에 사는 중소기업 사장 한모씨(55)는 지난해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에 유학중인 딸(25)에게서 안부전화를 받았다.

딸은 “스탠퍼드대학에서 컴퓨터를 공부하고 있는 잘 생긴 한국남자와 교제를 시작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한씨는 딸의 얘기에서 앞뒤가 잘 맞지 않는 점을 몇 가지 발견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딸의 남자친구에 대해 알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업자 등록만 하면 누구나 영업

노심초사하는 한씨를 구원해 준 사람은 바로 ‘사립탐정’. 한씨의 의뢰를 받은 탐정 이동영씨는 그 남자의 본명, 국적, 나이, 주소, 학력, 직업을 밝혀냈다. 결론적으로 그 남자는 스탠퍼드대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건달’이었다.

이동영씨는 미국에 가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을까. 이씨는 우선 인터넷을 뒤졌다. 스탠퍼드대학의 컴퓨터통신망, 이름과 대략적인 거주지만으로 사람을 찾아주는 미국내 인터넷서비스를 이용했다. 그런 작업을 통해 이씨는 ‘그 남자는 스탠퍼드대학생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기초정보를 얻은 다음 캘리포니아 현지 미국인 탐정에게 구체적인 신상조회를 의뢰했다. 한국인이 직접 미국인 탐정에게 사건을 맡길 경우 수임료는 최고 한시간당 100달러에 이르지만 같은 탐정끼리는 무료에 가까운 ‘실비’로 정보교류가 된다고 한다. 이씨는 이들 외국 탐정회사에 수차례 한국 기업과 특정인물에 대한 ‘발로 뛴 정보’를 제공해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인 상태였다.



‘백그라운드 체크’(Background check)에 관한 한 미국 탐정업계의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 조사대상자의 친구, 가족과 직접 접촉해 그 사람의 사교성이나 장래의 비전까지 파악한다. 한씨는 일주일만에 ‘입사서류’ 같은 그 남자의 신상명세를 받았다. 비용은 30여만원. 한씨는 자신이 매우 싼값에 완벽한 보고를 받았다며 만족해하고 있다.

‘사립탐정 개척시대’가 시작됐다. ‘셜록 홈스’가 소설책 속에서 튀어나와 나의 고민을 멋지고 통쾌하게 해결해준다고 상상해 보라. ‘정의로운 해결사이면서 언제나 베일 속에 가려진 낭만적인 인물’, 번역서나 외화에서나 보던 사립탐정이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사립탐정’(Private investigator)은 개인이 자신의 여러 형태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사적으로 고용한 정보수집가다. 지켜야 할 이익의 종류가 많아질수록 탐정에 대한 수요는 커지게 마련. 그래서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 요즘 탐정산업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르윈스키 스캔들’을 실제로 발굴해 낸 사람은 미국 스타검사가 아니라 그가 고용한 탐정들이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스타검사의 비리를 캐내 ‘맞불’을 놓기 위해 찾은 곳도 탐정사무실이었다. 미국에는 무려 2만여명의 탐정들이 활동하고 있고 자신의 고민을 탐정에게 들고 가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는 일은 일상화돼 있다.

마르코스 전 필리핀대통령 가족이 스위스은행에 16조원을 예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필리핀 정부가 스위스 금융계로부터 얻어낸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특종’은 누구의 작품이었나. 필리핀 정부는 호주의 탐정을 고용했다. 그는 스위스 금융계를 훤히 꿰뚫고 있던 인물로 어렵지 않게 문제의 은행계좌 정보를 얻었다고 한다. 호주에는 웬만한 제3세계 정부보다 더 많은 고급정보를 갖고 있는 사립탐정들이 많다. 일본의 탐정은 ‘스토커’나 ‘이지메’까지 영업대상으로 둔다.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한국에서 탐정이 되기란 무척 쉽다. 지방세무서에 ‘서비스업종`-`탐정업’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기만 하면 바로 영업이 가능하다. ‘슈퍼마켓’처럼 관련법률도 없어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은 탐정산업에 있어선 지금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다. ‘탐정’이란 상호로 간판을 내건 업소는 전국을 통틀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그외 일부 외국탐정회사의 지사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국제탐정사무소를 개소한 이동영씨는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춰 국내 탐정사업의 효시로 꼽힌다. 이씨는 30건을 수임받았다.

우리의 경우 탐정산업이 아직 초기 단계이므로 전국 3000여개 흥신소나 심부름센터가 탐정역할을 대신한다. 신용정보수집, 채권추심서비스는 신용정보회사가 맡는다.

이동영씨는 이에 대해 ‘탐정산업의 왜곡’이라고 지적한다. “탐정과 불법적인 일을 하는 흥신소를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정직성’이다. 탐정은 절대로 몰래카메라를 쓰지 않는다.

미국 등 대다수 OECD 국가들은 ‘정보수집`-`이용산업’을 공인자격을 가진 탐정으로 일원화시켰다. 대신 미국에선 정부가 경우에 따라 탐정에게 개인의 신상기록을 ‘판매’한다.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의 사생활까지 보호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개인정보를 틀어쥐고 공식적으론 모든 접근을 차단한다. 그러나 뒷구멍을 통해 정보가 유출된다. 이 때문에 한국에선 개인이 억울한 피해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개인의 사생활 역시 더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

서울신용정보㈜의 오주영차장은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채무변제의무가 명백해진 채권자에 대해서도 주소나 수입명세 등 정보제공이 금지된다. 정보수집범위를 ‘상거래’로만 한정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우에 따라 물증찾기나 피고소인의 소재파악은 탐정이 맡고 국가기관이 최종 심판하는 식으로 ‘역할분담’하는 것도 고려해 보자고 서울고검 김부식검사는 제안한다. 공권력이 못미덥다는 뜻이 아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사람도 급하면 자가용이나 렌터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논리다.

‘의문의 살인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하는 것이 과거의 탐정상이었다면 21세기의 탐정은 ‘경제탐정’을 지향한다. 이런 분위기는 한국에 진출한 외국탐정회사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미국탐정회사인 핀커튼(Pinkerton) 한국지사에 지난해 11월 영국기업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합작생산 최종계약을 맺기 직전인데 파트너인 한국업체의 신용도를 조사해 달라는 것이었다. 핀커튼 요원들은 미공군방첩수사대(OSI) 등 정보기관 출신이 대부분. 핀커튼은 기초정보수집후 이들을 직접 해당 회사에 잠입시켜 직원들의 월급이 밀리지 않는지에서부터 서류상으로 나온 대외사업을 실제로 현장에서 하고 있는지, 빚은 잘 갚는지까지 세세하게 밝혀냈다. 조사 결과 핀커튼은 ‘이 한국업체가 유령회사에 가깝다’고 결론을 내렸다.

핀커튼은 자신들이 왜 이런 결론을 이끌어 냈는지에 대해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인터뷰자료, 관련서류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고객의 궁금증은 말끔히 풀렸고 합작계약은 물론 파기됐다.

일본의 한 컴퓨터게임CD제작사는 핀커튼 한국지사의 단골고객이다. 이 회사는 최근 자신들의 제품이 한국의 용산전자상가 등지에서 얼마나 많이 불법복제돼 유통되는지 알고 싶어했다. 핀커튼은 개별상가별로 갯수가 나오는 현장조사보고서를 제출했다. 또 고객이 원하자 한국 검찰로 하여금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도록 했다.

핀커튼은 지난 한해 한국에서 무역과 관련해 200여건의 의뢰를 받았다. 이 회사 김명열이사는 “이제 한국에 첫발을 내딛는 외국기업들이 가장 의지하는 곳, 가장 먼저 달려오는 곳이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탐정이 뭔지도 모르는 새 한국에선 ‘외세’에 의해 ‘탐정시장’이 만들어졌고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탐정만큼 연대감이 강한 직업군은 없다. 국제탐정협회 등 세계기구에 소속된 탐정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상당한 고급정보까지 서로 공유하고 협력한다. 국경을 넘나드는 교류로 정보는 더욱 ‘정밀’해지고 사용목적에 맞게 ‘가공’돼 간다. 탐정들은 이런 식으로 정보의 ‘부가가치’를 키운다.

그러나 한국은 이런 세계적 흐름에서 소외돼 있다. 한국의 한 대기업이 남미에 자동차수출을 하면서 막대한 액수의 사기를 당한 것과 같은 일은 ‘정보마인드’가 정착돼 있는 나라에선 일어나기 힘든 사례. 또 한국기업이나 한국인 근로자에 대한 외국의 불신은 ‘이들의 이력서가 사실’이라고 검증해줄 만한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보호하고 싶어하고 자신과 연관된 일에 관해 보다 많이 알고 싶어한다. 이러한 ‘원초적 본능’에 봉사하는 데서 출발한 탐정산업은 이제 급속하게 국제화-정보산업화-거대기업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같은 세계적 추세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한나라당 하순봉의원은 일정 자격시험을 거친 공인탐정을 양산해 이들에게 정보수집-제공사업을 맡기는 ‘공인탐정법’을 올해 초 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하의원은 “국제감각을 갖춘 탐정 육성은 경제정보의 전세계적 유통시대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98년 8월 미국공인탐정 강효흔씨는 한국 재벌들이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수십, 수백억원대의 부동산투기로 재산을 빼돌린 사실을 밝혀내 한국에서 일약 유명해졌다. 그는 요즘 자신의 탐정사무소 서울지사를 준비하고 있다. 강탐정은 탐정산업이 제시하는 ‘새로운 비전’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탐정은 투명한 사회, 정보민주주의를 지향합니다.”

“탐정은 경제보안관”

경호서 컨설팅까지 토털서비스 … 사기 - 경제스캔들 보호막 돼


탐정이라면 ‘남의 뒤 캐기’, 보안 하면 ‘새콤’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외국탐정회사들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탐정회사 핀커튼 한국지사의 허브 펠험 지사장은 최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의 소식지에 한국의 보안의식와 관련된 논문을 기고했다. 다음은 그 내용을 요약한 것.

“보안이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보안의 전영역이 이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업경영자들은 폭력사태 같은 전통적인 보안문제가 다른 차원의 잠재적 재앙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산업 보안이란 한 회사의 모든 자산을 모든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남의 뒤통수를 치는 사기 같은 위협으로부터 말이다. 경비원과 알람, 열쇠만으로는 이런 자기방어를 성취할 수 없다.

보안은 사전에 디자인돼야 하고 통합적이어야 한다. 국제적 산업보안 스탠더드가 한국에 지금 막 소개되기 시작했다. 미래에는 산업보안은 보편적인 개념이 될 것이다.”

펠험 지사장이 말하는 산업보안은 크게 물리적 보안, 인적 보안, 재정적 보안, 정보 보안 등 네 가지로 탐정회사는 건물과 장비를 지키는 것에서부터 직원채용시 경력조회, 안전한 금융거래, 무역에서 돈을 떼이지 않도록 상대회사의 정보를 파악하는 것, 통신과 컴퓨터의 안전성 확인을 관리한다. 기업간 M&A 수출입에서도 탐정은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미국의 탐정회사인 ION의 사업영역은 교통사고나 고소-고발사건 또는 재판에 유리한 물증확보, 재산-수입조회, 사람소재 파악, 유명인사 경호, 신용조사, 지적재산권 문제, 내부의 적 찾기 등 광범위하다. 탐정은 의뢰인의 이익보호를 위해 한국의 사설경호, 경비용역, 신용정보서비스, 심부름센터, 경영컨설팅을 망라한 ‘토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광의의 ‘보안’개념으로 정의된다. 이중 ‘경제보안관’으로서의 탐정의 역할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탐정은 사기사건-경제스캔들의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외국탐정회사의 얘기다.




주간동아 2000.01.13 217호 (p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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