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커버스토리|남자 vs 여자

작아지는 男, 커지는 女

‘군필자 가산점 위헌’ 계기로 본 男과女… 산업화 정보화는 父權파괴 주범?

작아지는 男, 커지는 女

작아지는 男, 커지는 女
‘새 밀레니엄 패러다임은 타도 징병제! 쟁취 모병제!’. 이는 ‘징병제를 반대하는 모임’ (www.kebi.com/∼zingbanmo)에서 내건 구호다.

새 밀레니엄의 벽두부터 왜 이런 과격한 구호들이 올라와 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공무원 채용 시험 등에서 군필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군필자 가산점 제도’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난 까닭이다. 헌법재판소 홈페이지(www.ccourt.go.kr)에는 항의 의견이 폭주, DB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또한 각종 PC통신에도 이를 둘러싼 네티즌들의 매우 ‘거친’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무효화시키겠다는 사이트 ‘싸우’(www.ssaw.co.kr)까지 생겨났다.

이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ID ‘나 육군병장 이병장’의 ‘급구:사원모집’이라는 글을 한번 보자. ‘1.모집인원:600만명 2.지원자격: 가장 힘 좋고 의욕 넘치는 시기인 20∼25세의 여자 3.급여:숙식제공, 월 6000∼1만원(담뱃값 포함) 4.근무 내용:삽질, 톱질, 곡괭이질, 총질, 칼질 등 다양함(단 비상사태시 총알받이 역할을 해야 함). 야간 근무는 매일 한시간 이상 해야 하며 별도 수당 없음 5.근무 지역:주로 강원도 6.특기사항:애인과 헤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음…’.

더 이상은 말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이 나라 신체 건강한 남성이 군대에 가서 겪는 일의 패러디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은 엄밀하게 보면 시험에서 가산점을 받는 군필자와 가산점을 받지 못하는 사람(군에 가지 않은 남성, 여성, 장애인 등)간의 문제. 그런데도 사태는 남자와 여자간의 성대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공부해야 할 나이에 군대 갔는데, 여자를 포함한 군 면제자들은 따뜻한 밥 먹으면서 학원 다니고 2년2개월 동안 공부했다. 이게 평등한 것이냐”는 남성들의 반발과, “군필자에게 주는 가산점 5%는 공무원 시험에서 당락을 가르는 변수다. 여동생이나 누나가 이 때문에 떨어졌다 해도 그렇게 생각하겠느냐”는 여성들의 지지가 충돌하면서 파열음을 내고 있는 것. 이번 헌재 결정은 그동안 있어왔던 남녀간의 성대결 논리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진작부터 남녀 성문제를 둘러싼 전선이 형성돼 있었는데, 헌재 결정으로 그동안의 대치 국면이 일시에 격돌로 번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금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전선이, 왜 형성돼 있는 것일까. 사실 지나간 20세기의 후반부는 남성과 남성성에게는 위기의 시대였다. 어쩌면 이런 위기는 산업혁명 이후 줄곧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갈수록 확산되고 진보하는 기계문명은 남성들이 가진 전통적인 ‘근육의 힘’과 그 가치를 떨어뜨렸다. 전쟁 역시 근육과 근육이 맞부딪치고 창과 칼이 격돌하는 양상에서 점차 첨단 무기를 동원한 전자전쟁이나 정보전쟁으로 바뀌면서 컴퓨터를 클릭하고 버튼을 누를 힘만 있으면 되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여기에다 문명의 발전에 따른 각종 공해 역시 수컷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중이다. 수컷들의 정충이 줄어드는가 하면, 일부 종의 경우는 수컷이 암컷화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IMF 사태와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구조조정)이 전통적인 남성의 권력과 권위를 실추시키는 데 대대적인 ‘공헌’을 했다. IMF 이전의 ‘거품 경제’ 시대에도 각 가정의 가장들은 아침을 ‘못먹고’ 출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단지 ‘돈 벌어오는 기계’ 쯤으로 인식되었던 것이 사회의 전반적인 세태였다. 그래도 그런 역할을 통해서나마 가까스로 부권(父權)을 지킬 수 있었으나 IMF 사태는 이 땅의 남성들에게서 최소한의 권위마저도 박탈해 공원이나 산에서 방황하게 만들었다. 가정은 해체되었고, 노숙자들이 양산되었으며, ‘가정 지킴이’로서의 부권은 파괴됐다.

문학적으로는 그다지 뛰어난 완성력을 갖지 못한 ‘아버지’라는 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시대상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젊은 소설가 박영규씨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장편소설 ‘그 남자의 물고기’ 또한 ‘방황하는 수컷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 박철수는 ‘방황하는 수컷들을 위한 남성학’이란 책의 저자로 “이 시대의 남성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방황할 수밖에 없다”고 열변을 토한다. 지은이 박씨는 이 소설을 쓴 동기에 대해 “지금까지 남성이 사회를 지배한다는 관념이 강했고, 역설적으로 여성의 성에 대한 연구보다 남성의 성에 대한 연구가 소외됐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세기말의 남성들이 이처럼 자기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면서 방황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여성들은 점점 조직화되고 의식화된 ‘파워 그룹’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발족한 ‘한국여성기금 추진위원회’ 역시 이런 움직임의 일환이다. 이 위원회의 박영숙집행위원장(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장)은 “단지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진학 취업 승진 등에서 많은 제약을 받았던 20세기를 청산하고 21세기에는 우리 모두의 딸들이 역량을 한껏 발휘해 세계적 여성 지도자, 각 분야의 훌륭한 인력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이 나라에 딸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그들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다.

지난해 10월 전문직여성클럽 한국연맹의 창립 30주년 세미나의 주제 역시 ‘21세기에는 여성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였다. 이 세미나에서 이화여대 조기숙교수(국제정치학)는 △정보화와 대중매체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한 후기산업사회에서는 여성적 특질이 우성(優性)으로 간주된다는 점 △냉전 종식과 세계화의 결과로 군사와 안보를 강조하는 상위정치는 퇴조하고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를 강조하는 하위정치가 중요하게 대두하고 있다는 사실 △민주화와 인권, 특히 여권에 대한 관심의 확대가 세계적인 추세라는 사실 등을 내세워 ‘여성 리더’의 도래를 전망했다.

결혼정보회사인 ㈜선우는 최근 이혼 경험이 있는 20대에서 50대 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이혼 남녀의 표준 외모 및 평균 라이프 스타일 조사’를 실시했는데, 이혼 여성의 경우 2명 중 1명이 다른 남자와 성적인 접촉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보다 남성들이 더 많은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과 관련해서도 여성들의 권익이 더 신장됨은 물론, 당당해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21세기의 남녀관계는 어떻게 발전할까. 미국의 컨설턴트 회사 ‘브레인리저브’ (www.brainreserve. com)의 경영자 페이스 팝콘이 쓴 최근 저서 ‘클릭! 미래 속으로’는 17가지 ‘뉴 밀레니엄 트렌드’를 전하고 있다. 그 중의 일부가 다음 같은 것들이다. △남성 해방:남성들이 전통의 역할을 거부하고 자유를 만끽하려 한다 △여성적 사고:비즈니스가 여성의 생각과 행동 방식으로 바뀐다 △환상모험:큰 위험이 없는 모험을 통해 흥분과 자극 찾기를 한다 △코쿠닝(cocooning):안전하고 포근한 가정 속에 안주하는 현상이 심화된다. 결국 새 천년에도 남녀들은 서로를 갈망하고 포근한 가정을 꾸미려 하지만, 남성들은 기존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상당수 비즈니스의 틀이 여성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자는 졸고 있는 남자를 증오한다’는 베스트셀러를 낸 프란체스코 알베로니는 이 책의 머릿글에서 “여자와 남자는 모두 상대가 줄 수 없는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남자와 여자는 서로 만나고 사랑한다”며 마치 남녀관계의 결론처럼 말하고 있다. 남성학 역시 그동안 친페미니즘, 반페미니즘, 중립적 태도 등 다양한 갈래로 분화됐지만, 최근에는 어느 한쪽 성(性)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여성학과 통합된 ‘성학’(Gender Studies)으로 발전하는 추세다. 결국 남자든 여자든 상대방에 대한 억압은 ‘인간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남녀가 상호 보완의 관계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남성이나 여성으로서의 권리가 아니라 인간의 권리이며, 그것도 전투가 아닌 상호 공존과 호혜 평등의 입장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유명한 동물행태학자인 데스먼드 모리스는 그의 저서 ‘털 없는 원숭이’에서 인류를 지구상에 현존하는 193개 종의 원숭이 및 유인원 가운데 유일하게 몸에 털가죽을 걸치지 않은 별종 원숭이로 규정하고 “우리가 오래 전부터 갖고 있던 영장류로서의 충동(본능)들은 사소한 형태로나마 지금도 계속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한다. “문화 발전이 우리에게 과학기술의 대단한 진보를 가져다주었지만, 이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생물학적 자질과 충돌할 경우에는 항상 강력한 반발이 일어나곤 했다”는 것이다. 이는 아무리 21세기라고 해도 본래의 정체성을 떠난 남성과 여성은 있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진리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깃발 올린 ‘남성해방운동’

한국남성協 첫 결성… 대학엔 남성학 과목 개설


“이 땅의 남성들이여, 질곡의 역사를 넘어서 참된 새 천년으로 함께 나가자.” 이름하여 ‘한국남성협의회’. 2000년을 코앞에 둔 시점(99년 11월)에 이러한 ‘남성 단체’가 생겼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들이 내건 구호는 “이제 남성도 할 말은 하고 살자”. 그동안 지배자`-`가해자로서만 인식되던 남성들도 사실은 엄청난 ‘역 성차별’에 시달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왜 숙직은 남자만 서야 하는지, 왜 모자보건법은 있어도 부자보건법은 없는지, 여성발전기본법이 필요하다면 남성발전기본법은 필요없는지 등등.

이 모임의 공동회장 정채기씨(한국남성학연구회장)는 “미국의 경우 70년대부터 남성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일본 역시 해마다 남성대회를 열고 있지만,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해 있다는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가운데 변변한 남성 연구나 운동단체가 없는 몇 안되는 나라”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남성 운동’에 대해 여성계는 싸늘한 눈흘김을 보내고 있지만,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남성학이 필요하다는 것은 대체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듯하다. 부산대 사회학과는 지난해 2학기 4학년 과목으로 ‘남성과 사회’라는 남성학 강좌를 개설했다. 물론 처음 있는 일이다.

남성학은 50년대말∼60년대초 미국 히피족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된다. 가정을 뛰쳐나와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남자들을 보면서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은 ‘남자로서 감당하기 힘든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본격 연구를 시작한 것. 70년대 들어 여성해방운동이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남성운동’도 싹을 틔웠고, ‘변화하는 남성들의 전국연맹’이란 조직이 결성되면서 그 산하의 남성학 연구분과가 남성학을 본격적인 학문으로 발전시켰다.

84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 첫 강좌가 개설된 남성학은 2년만에 200여개 대학으로 퍼졌다. 일본에서도 지난 92년부터 교토대, 오사카대, 오카야마대 등에 강좌가 개설됐으며 이에 앞선 91년에는 남성운동 조직인 ‘Men′s Lib 연구회’가 오사카에서 생겨나 95년부터 전국 규모의 ‘남성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70년대 초반에 나온 ‘버클리 남성센터 성명서’는 남성학의 출발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남성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완전한 인간성을 다시 찾기 원한다. 우리는 더이상 압제적인 포악한 남성적 이미지로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성과 동등해지기를 원하며, 동성의 남성들 사이에 있는 파괴적 경쟁관계를 끝내고 싶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삶과 경험을 공유할 인간을 원한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신문’ ‘if’등 여성매체 눈길… 여성전용 사이트도 봇물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사회참여와 권리가 늘어남에 따라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대안 언론과 커뮤니티(동호모임) 활동도 활성화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창립 10주년을 맞은 ‘여성신문’(대표 이계경). “상업주의가 팽배한 우리나라 잡지 시장에서 몇 달이나 버틸 수 있겠는가”라는 안팎의 우려 속에 창간, 초기에는 한동안 재정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현재는 흑자 구조를 갖추고 ‘여성정론지’로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매체가 97년 5월 창간돼 지난 겨울 11호를 펴낸 계간 페미니스트 저널 ‘if’. 연륜은 짧지만 우리 사회의 ‘반 여성적’ 남성 지식인 명단을 공개하는 등 사뭇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꾸준히 시도해 장안의 화제를 모아왔다. ‘if’의 백미는 매호 꾸며지는 특집기사. 여성의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한 ‘네 거울에 침을 뱉어라’(99년 봄호), ‘모성’에 대해 집중 분석한 ‘남자는 어머니를 모른다’(99년 여름호) 등을 다룬 바 있으며 최근 발간 된 99년 겨울호에서는 ‘악녀에게 말걸기’를 특집으로 꾸몄다.

최근 들어 여성들의 커뮤니티와 ‘자기 목소리 내기’ 활동이 가장 두드러진 곳은 통신과 인터넷 공간. 각 통신사에 여성학동호회와 주부동호회가 결성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고, 인터넷에도 여성전용 포탈 서비스와 커뮤니티 ‘아이지아’(www.izia.com), ‘톡투미’(www.talk2me.co.kr), ‘우먼플러스’(www.womenplus.com) 등이 마련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달나라 딸세포’(dalara.jinbo.net)라는 웹진. 서울대 여성모임연대를 모체로 한 젊은 페미니스트 모임 ‘여해그림’이 운영하는 인터넷 잡지로, 매달 새로운 기사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웹진 이름을 ‘달나라 딸세포’라고 지은 것은 예로부터 달이 여성성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데다 달의 차고 기울기가 여성의 생리주기와 비슷하기 때문. 톡톡 튀는 젊은 감각의 ‘글발’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한편 ‘남성학’ 혹은 ‘남성들만을 위한 모임’ 활동은 상대적으로 미미해 지난해 10월에야 ‘남성학 연구회’(go men)가 처음으로 천리안에 입성했다.

김정희 기자 yhong@donga.com




주간동아 2000.01.13 217호 (p32~34)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40

제 1240호

2020.05.22

“정의연이 할머니들 대변한다 생각했던 내가 순진했다”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