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3

1999.12.16

농사꾼 주름살 또 늘겠구먼!

시애틀 협상 결렬 농산물 개방 확대 불가피…수출국 매몰차게 몰아붙일 듯

  • 입력2007-05-02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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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애틀 뉴라운드협상이 결렬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다. 한국 대표단이 시애틀로 떠나기 직전 만났던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제네바는 휴업 중”이라는 말로 협상 결렬 가능성을 암시했었다. 시애틀 협상에서 각료선언문이 채택되려면 적어도 세계무역기구(WTO) 본부가 있는 제네바에서는 막판까지라도 선언문 초안을 만들어내려는 숨가쁜 노력이 경주돼야 할텐데 시시각각 전해져 오는 제네바의 분위기는 ‘뭔가 포기한 듯한’ 인상이라는 것이다. 시간에 쫓겨 ‘일단 시애틀로 가보자’ 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대규모 시위로 인해 각료 선언문 채택 가능성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협상준비 과정에서부터 가장 큰 비중을 두어왔던 농산물 분야 역시 관세 인하와 국내 보조금 감축이라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이 이뤄졌을 뿐 수출보조금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이견으로 인해 각료 선언문 채택을 위한 최종 합의에는 실패했다.

    ‘농산물 양보-공산품 관세 인하’ 차질

    협상 결렬에 따른 우리나라의 득실과 관련해 가장 관심을 모으는 분야 역시 농산물이다. 그러나 농산물과 관련해서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노동이나 환경, 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협상이 배제된 채 농산물과 서비스 분야에만 협상이 집중되면 농산물을 방어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결정적으로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농산물에서 일부 양보하더라도 공산품 관세 인하나 반덤핑 협정 개정을 따내기 위한 협상전략을 세웠던 것도 일괄 타결 방식의 ‘주고받기식’(trade-off) 협상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분야는 배제된 채 우루과이라운드(UR)에서 합의된 농산물과 서비스 분야 협상만 논의하게 되면 우리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협상카드는 결정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UR협정에서 합의된 바에 따르면 농산물 분야는 서비스 분야와 함께, 시애틀 협상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내년부터는 자동적으로 협상이 개시되게 돼있다. 농산물의 개방 확대와 서비스 분야 자유화는 그래서 뉴라운드의 의제를 확정짓는 시애틀 협상 이전에도 ‘기설정 의제’(Built-in-Agenda·BIA)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동국대 곽노성교수(경제학)는 “농산물만 갖고 협상하게 되면 수출국들이 엄청나게 몰아붙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협상 결렬의 핵심적 요인이었던 농산물에 대한 수출보조금 철폐 문제에서 우리가 미국 입장에 동조하는 것은 어떨까. 실제 미국은 시애틀 협상 과정에서 이 문제에 대한 협상카드를 노출시킨 바 있다.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을 인정하는 대신 수출보조금 철폐에 동의해 달라는 제안을 한국측에 해온 것이다.

    수출보조금 문제는 EU로서는 사활을 걸고 있는 문제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자면 대단치 않은 문제일 수도 있다. EU는 농산물 수출 보조금의 8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수출보조금에 대한 의존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수출보조금은 EU 농업정책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편이다. 농촌경제연구원 임정빈박사는 “우리나라의 수출보조금 규모는 약 10억원 정도로 과실류나 화훼류에 대한 포장비, 선별비, 국내 수송비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출보조금 문제는 우리가 미국과 EU 사이에서 협상의 여지를 확보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측은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을 인정하겠다는 미국측의 ‘솔깃한’ 제안을 거부했다.

    미국입장 카드로 활용해야

    여기에는 한국이 독자적인 노선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현실적 배경이 깔려 있다. 미국에 맞서 정책공조를 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EU를 등지게 되면 다른 분야에서도 협상력을 갖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시애틀 협상에 직접 참가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채욱 박사는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나라와의 공조가 아닌 독자적인 주장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결국 문제는 이번 협상을 통해 드러난 미국의 입장을 어떻게 최대한 활용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비정부기구(NGO)의 대규모 시위를 등에 업으면서까지 미국이 강하게 주장했던 환경이나 노동문제가 그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동국대 곽노성교수는 “미국이 노동이나 환경 등에서 예상보다 강한 입장을 보인 것은 나름의 절박한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잘 활용하면 반덤핑 협정을 개정하거나 비교역적 기능을 선언문에 명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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