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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장정일의 ‘중국에서 온 편지’

너희가 진시황을 아느냐

  • 김정희 기자 yhong@donga.com

너희가 진시황을 아느냐



‘장정일’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당신은 무엇이 연상되는가. 수동 타이프라이터를 두드리며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하는 진지한 문학소년? 시와 소설, 희곡을 넘나들며 재기를 발휘하는 전방위적 문화 게릴라? ‘내게 거짓말을 해보라’며 10대 소녀와 중년 남자의 파괴적 사랑을 그려 기성 세대의 엄숙주의에 ‘똥침’을 날리는 반항아?

이 모두는 장정일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장정일의 전부는 아니다. 최근 그가 발표한 ‘중국에서 온 편지’(작가정신 펴냄)는 진지한 문학소년이자 재치있는 문화게릴라, 반항아로서의 그의 모습이 모두 담겨 있으면서, 또한 이제껏 보지 못했던 또다른 글쓰기 방식이 시도된 작품이다.

이번에 그가 선택한 장르는 ‘역사소설’. 이 작품은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진시황과 그의 장자 부소(扶蘇)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진시황의 40명 공자 중에서 가장 무용이 뛰어나고 어질었다는 장남 부소. 그러나 부소에 대한 기록은 “부왕의 노여움을 사서 변방으로 유배되었다가 진시황의 유언을 따라 자결했다”는 정도로밖에 역사서에 남아 있지 않다. 작가는 바로 이같은 기록의 ‘빈틈’을 노려 소설적 상상력을 개입시킨다.

부소는 편지의 형식을 빌려 독자들에게 자신의 진실을 밝힌다. ‘영원한 권력’을 꿈꾸는 아버지 진시황은 언젠가 자신을 대체할 새로운 권력, 즉 아들에게 두려움과 경쟁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터.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을 일찌감치 제거함으로써 권력의 구심력을 공고히 하는 한편, 백성과 봉건귀족들의 불만과 반항을 무마시키는 효과까지 노렸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까라면 아들은 까야 하고 아버지께서 돌리라면 아들은 돌리는 거지요”라며 유배의 길을 떠나는 부소는 아버지에게서 버림받는 순간 눈이 멀어버린다. 시력을 잃음으로써 그는 태양을 볼 수 없게 된다. 부소에게 태양은 곧 아버지를 상징하는 것. 그가 다시 시력을 회복하고 태양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은, 변방에서 그를 거두어 보살펴준 몽염장군과의 동성애를 통해서다. 몽염장군은 부소에게 연인인 동시에 ‘새로운 아버지’가 된다.

“그날 밤 나는 장군의 크고 뜨거운 해를 입으로 삼켰습니다. 아주 조심스레 내 달 속으로 장군의 태양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내 몸 속을 밀고 들어온 장군이 나의 아버지였으면 했던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원했던 거지요.”

작가는 역사서에 기록된 것처럼 부소를 아버지 진시황의 유언에 ‘순순히 따라’ 자결하는 착한 아들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소설 속의 부소는 사랑하는 몽염을 두고 죽느니, 자신의 두 눈을 손수 파내버림으로써 현실을 부정해버리는 길을 택한다.

아버지(진시황)와 아들(부소)의 갈등 관계는 장정일이 그간의 작품 속에서 일관되게 이야기해온 살부(殺父) 콤플렉스 구도를 고스란히 유지한 것. 작가에게 있어 ‘아버지’란 세상의 폭력과 권위주의를 나타내는 아이콘이며, “내용이 아닌 스타일을 통해 명령하는 전형적인 독재자”다. 뒤이어 부소, 아니 작가는 주장한다. “자신은 지배집단의 스타일을 제도화하는, 평론가라는 밥버러지 스키들에 의해 박해받는 소수언어집단”이라고. 결국 작가는 부소의 입을 빌려 자신을 박해 혹은 탄압했던 기성세대의 보수주의에 야유를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편 소설의 스타일 면에서는 가벼움과 분방함이 두드러진다. 육두문자와 비어가 심심찮게 삽입되는가 하면 분명 시대적 배경은 진나라인데 웬 벤츠며 그랜저가 등장하고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가 인용되기도 한다. 한술 더 떠 작가는 화약이며 나침반, 심지어 오디오가 실은 변방에서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던 부소에 의해 발명된 것이라는 능청까지 떨고 있다. 작가는 권위주의를 조롱하고 비웃기 위한 무기로 진지함보다 가벼움과 발랄함이 더 적당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장정일 지음/ 작가정신 펴냄/ 104쪽/ 5000원



주간동아 210호 (p108~109)

김정희 기자 y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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