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0

1999.11.25

병역비리 '몸통' 따로 있다?

'중개인' 기무 - 헌병 수사 흐지부지… 재벌 . 정-관계 고위인사 한 건도 못밝혀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7-03-09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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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창원이 붙잡히고 이근안전경감이 자수함으로써 세상을 시끄럽게 한 ‘도바리’(도망자) 3인방 중 이제 박노항전원사(헌병)만 남게 되었다. 이근안은 ‘고문’을, 박노항은 ‘병무비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김대중정부 들어 가장 의욕적으로 추진한 것이 병무비리의 근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 수사는 새로운 수사책임자가 병무비리 연루 기관과 유착되었다는 시비가 일면서 적잖게 왜곡돼 가고 있다. 김대통령이 ‘성역 없이 수사하라’고 특별지시한 병무비리 수사가 왜곡돼 간 이유는 무엇일까.

    병무비리는 군내에서 좋은 보직을 받으려는 ‘인사비리’와 현역 근무를 피하려는 ‘면제비리’로 나뉜다. 병무비리 수사는 98년초 국방부 검찰부장 직무대리를 맡게 된 A법무관(소령·36)의 단호한 의지에서 비롯됐다. 군에는 다양한 병과가 있는데, ‘부관’ 병과는 인사문제를 주로 담당한다. 98년 3월 A법무관은 카투사 선발 과정에 인사비리가 있다는 첩보와 함께 부관 병과 소속 원용수준위가 준위 봉급으로는 갖기 어려운 ‘포텐샤’를 타고 다니며 수시로 군고위층을 골프 접대한다는 사실을 포착하고 내사에 착수했다.

    그러던 차에 역시 카투사 비리에 관여한 합참 문서실의 김성국준위가 ‘국방부 합조단’의 수사1과장에게 300만원을 주고 자신에 대한 수사를 무마해달라고 한 사실을 알아내고, 김준위는 구속하고 수사1과장은 기소유예 조건으로 전역시켰다. 김준위를 구속하기 직전 A법무관은 원용수준위가 김준위에게 전화를 걸어 “친구야, 나를 노출시켜서는 안된다. 너 혼자 다 안고 가라”고 부탁한 사실을 감청해 냈다. 그래서인지 김준위는 원준위의 혐의에 대해 끝까지 함구했다. 그러나 A법무관은 다른 루트로 원준위의 혐의점을 발견하고 그해 5월 원준위를 구속했다.

    서울서 헌병, 지방선 기무사가 면제비리 주도



    핵심 병무비리는 인사비리보다는 면제비리다. ‘유전무역(有錢無役) 무전유역(無錢有役)’의 현실을 뿌리뽑겠다고 생각한 A법무관은 압수한 원준위 수첩에서 면제비리를 암시하는 정보와 함께 헌병으로 구성되는 국방부 합동조사단의 서울지방병무청 분실장인 박노항원사에 관한 기록을 발견했다.

    법무관으로 구성되는 군 검찰이 사회의 검찰에 대응한다면 헌병은 경찰, 기무사는 국정원에 대응한다. 병무비리 수사는 군 검찰과 헌병이 맡아야 한다. 이 가운데 조직이 큰 헌병은 면제비리를 차단키 위해 지방병무청과 국군병원 등에 분실을 운영한다. 이러한 분실 중 가장 큰 것이 서울지방병무청 분실이고 이곳의 책임자가 바로 박원사였다.

    기무사는 법적으로는 국가보안법과 군사기밀보호법 관련 사항에 대해서만 수사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좌경 사상을 가진 대학생이 군에 입대해 좌익사상을 퍼뜨리면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각 병무청에 ‘대공상담소’라는 분실을 두고 좌경 대학생의 입대 사항을 체크하고 있다. 기무사는 또 출입기관의 주요 인사에 대한 ‘동향보고’를 올린다. 이 보고는 진급시 큰 영향력을 발휘하므로 대공상담소가 설치된 기관 소속원들은 대부분 기무사의 요구를 수용한다. 98년 서울지방병무청 대공상담소 책임자는 기무사 군무원 여광조씨(구속)였다.

    헌병과 기무사의 병무청 분실은 병역비리를 막아야 하는곳이다. 그런데 거꾸로 병역비리를 조장하고 있었다. 박노항이나 여광조씨 등 두 기관의 일부 소속원들은 아들의 신체검사를 앞둔 부모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군의관으로 하여금 면제 판정을 내리게 했다. 병무청 직원이나 군의관들이 부모로부터 바로 돈을 받는 경우에는, 두 기관원들에 ‘눈감아 달라’는 조로 뇌물을 상납했다. 이렇게 신체검사 판정 기관과 군 사정기관이 한통속으로 돌아가면서 병무비리가 지금까지 척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A법무관은 면제비리를 없애려면 군 사정기관과 판정기관의 유착을 끊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유독 헌병 출신인 박노항원사가 면제비리를 독식하고 있었다. 기무사의 여광조씨 혐의는 ‘새발의 피’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방에서는 기무사 분실이 막강하다는 첩보가 있었다. 이러한 첩보를 토대로 A법무관은 박원사 검거에 나섰다. 박원사는 정보에 밝은 헌병 출신답게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몸을 숨겼다.

    박원사 검거 실패로 수사는 벽에 부닥쳤다. 그러나 원용수준위를 구속하고 박노항원사를 지명수배했다 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국민은 군 검찰을 격려했다. 이 무렵 전직 의정(의무행정) 하사관 출신 B씨(41)가 A법무관을 찾았다. B씨는 전과 5범으로 교도소를 출소한지 불과 이틀밖에 안됐는데, “나는 과거 병무비리에 관여했던 사람으로 면제비리 메커니즘에 정통하다. 박노항원사를 지명수배할 정도면 이번 수사는 결코 장난이 아닌 것 같다. 군검찰의 수사를 돕고 이번 기회에 부끄러운 과거를 털고 새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A법무관은 B씨에 대해 여러 가지 조사를 해본 끝에 수사를 돕겠다는 그의 의지가 확실하고 면제비리를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고 상급자에게 B씨로부터 도움을 받겠다고 보고했다. B씨의 참여로 면제비리 수사는 날개 단 듯이 진행됐다.

    면제비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되지만,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징병 검사를 앞둔 병원 자료 위조로부터 시작된다. 신검 장정의 부모는 병원 관계자에게 돈을 주고 가짜 CT(컴퓨터 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 진단) 필름을 마련한다. 평소 장정의 허리가 약하면 부모들은 병원에 대해 척추을 찍어줄 것을 요구한다. 이때 뇌물을 받은 병원측은 장정의 척추 부위를 향해 CT를 찍지만 필름을 내줄 때는 진짜 디스크환자를 찍은 필름을 내준다.

    가짜 필름을 마련한 부모는 두번째로 병무청이나 헌병-기무 요원을 찾아가 면제판정을 부탁한다. 이들은 받은 뇌물 중 100만∼200만원 정도의 ‘푼돈’을 떼어 군의관에게 주고 면제판정을 부탁한다. 부모로부터 바로 뇌물을 받은 일부 병무청 직원들은 잊지 않고 헌병이나 기무 요원들에게 고액의 ‘무사 통과세’를 납부한다. 반대로 기무-헌병 요원들은 때때로 평소 잘 협조해 주는 군의관들을 술자리로 불러 ‘우의’를 다져 놓기도 한다.

    국군병원에는 CT나 MRI 촬영기가 없어 장정이 들고온 필름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가 없다. 군의관 들은 하루 평균 200여명의 장정을 상대하기 때문에 매우 바쁘다. 또 의무 복무가 끝나면 일반 병원에 취업해야 할 처지기 때문에, 대형 병원이 발행한 자료에 대해서는 검증하려는 의지가 작다. 나중에 문제가 돼도 “병원 자료가 잘못된 것인 줄 몰랐다”며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니, 큰 죄책감 없이 면제판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렇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니 ‘유전무역’의 비리가 계속돼 온 것이다.

    한해 평균 징병 검사에 응하는 장정수는 38만여명. 이중 병역 면제자는 4만8000여명인데, 장애자나 고아 등 반드시 면제받아야 할 사람을 제외하면 약 2만5000여명 정도가 각각 다른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는 셈이다. 이중 뇌물을 써서 면제받는 장정은 5000여명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군 검찰에 따르면 장정 한명의 병역을 면제받는 대가로 그 부모가 지불하는 평균 뇌물총액이 4500만원이므로, 병역 면제 시장 규모는 한해에 약 2250억원에 이르게 된다.

    군 검찰은 이 면제비리 시장을 모두 수사할 수가 없어, 서울지역으로 수사 범위를 한정했다. 서울에서는 한해 약 9만명 정도가 징병검사를 받고 5800여명 정도가 각종 이유로 면제판정을 받는다. 그중 1000여 명 정도가 부정한 방법으로 면제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수사는 이 5800여명의 병적카드 중 ‘냄새 나는 것’을 뽑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병적카드에는 CT나 MRI 필름, 일반인들에게는 암호로밖에 보이지 않는 각종 의학용어가 적힌 진단서가 첨부돼 있어 어느 것이 냄새나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B씨는 이 카드 중에서 ‘냄새나는’ 것들을 쑥쑥 뽑아냈다. 카드를 뽑아낸 B씨는 “이 면제자를 불러 ‘이러이러한 증세가 있느냐’고 물어보라. 그가 ‘없다’고 대답하면 틀림없이 뇌물을 써서 면제판정을 받은 것이니 수사하라”고 당부했다. 이 방법대로 수사하자 B씨가 뽑아준 자료 중에서 70~80%가 부정한 방법으로 면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면제자의 부모나 브로커 역할을 한 병무청 직원은 민간인이라 군 검찰은 수사할 수가 없다. 그해 11월 군 검찰부가 이러한 문제점과 함께 면제비리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로 올렸다. 김대통령은 즉각 ‘성역 없이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98년 12월1일 이에 따라 군 검찰부와 서울지검 특수3부`- `서울지방경찰청이 연합한 ‘병무사범 합동수사부’(합수부)가 출범했다.

    합수부는 B씨가 뽑아주는 자료 덕분에 5개월도 안된 99년 4월27일 1차 수사발표를 통해 무려 137건의 면제비리를 공개했다. 이 발표는 큰 파장을 몰고와 97년까지 6.8%대이던 면제 비율이 98년에는 5.4%, 99년에는 2.7%로 급락했다. 그러나 이 발표에서는 재벌이나 정-관계 고위인사 자제들의 면제 비리는 단 한건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B씨는 “재벌과 정-관계 인사에 대한 수사는 신중하게 할 생각이었다. 당시 수사는 97년 이전 면제비리에 집중됐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구여권쪽 인사들이 많았다. 이들이 면제비리를 저지르는 데는 기무사요원들이 연결고리가 됐다. 기무사요원들은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면제비리에 관여돼 있어, 이들을 척결하지 않고는 고위직의 면제비리는 적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군의관들에게 면책해 줄테니 기무 요원들의 혐의점을 말하라고 압박했다”고 말했다.

    A법무관의 이러한 수사 방침은 일파만파를 일으켰다. 그 즉시 기무쪽에서는 똑같은 부정연루자인 군의관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은 불공정한 처사라는 보고서를 국방장관에게 올렸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수사에 적극적으로 참여치 않던 군 검찰부장 C중령(육사 출신 최초의 사시 합격자)이 수사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C중령은 “대통령이 성역없는 수사를 하라고 지시했으니 군의관들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A법무관은 “그러한 수사는 결국 군의관의 입을 다물게 해, 고질적인 면제비리를 칠 수가 없다”고 항변했다.

    이런 대립을 겪으면서 수사 주도권은 C중령으로 넘어갔고, 실의에 빠진 A법무관은 미국 유학을 떠났다. 지난 7월 미국유학을 앞둔 그는 A4 용지 20장에 ‘병무비리 수사에 관한 전과정과, C중령의 수사방법은 기무사의 비리를 덮어주는 결과를 낳는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국방부 장관에게 보냈다(사진). 이러는 사이 C중령은 “준엄한 국가형벌권이 전과자에 의해 자행되는 현실이 옳은가. 전과자의 가치관에 따라 국가형벌권이 행사될 수는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B씨의 신원을 공개하고 수사팀에서 배제했다.

    이 무렵부터 국방부 주변에는, B씨는 간통죄로 기소된 사실이 없는데도 “B씨는 전과5범이고, 간통한 경력이 있다. A법무관은 B씨를 너무 믿었다”는 등의 소문이 돌았다. 동시에 “기무사와 C중령이 법무관들이 주도한 면제 비리 수사를 고의적으로 훼방했다”는 소리도 들렸다. 이런 와중인 지난 7월7일 C중령이 주도한 수사팀은 면제비리뿐만 아니라 의병(依病) 전역 비리`-`공익근무요원 판정 비리 등을 포함된 2차수사 발표를 했으나 사회적 파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에 대해 B씨는 “정-관-재계 고위직의 면제비리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무사 요구대로 군의관을 처벌하면 고위직의 면제비리는 드러날 수가 없다. A법무관은 1차 수사에서 발표한 137건 외에 약 400여건의 면제 비리를 내사중이었는데, C중령 수사는 내사가 끝난 이 400여건을 확인하는 선에서 그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파문이 커지자 국방부는 C중령을 배제하고 전원 법무관으로 구성된 특별수사팀을 만들어 3차 면제비리 수사에 착수했다. 동시에 C중령이 기무사를 보호하기 위한 수사를 한 것인지, 제대로 수사한 것인지에 대해 감사에 들어가 현재까지 감사중이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기무사측은 A법무관과 B씨의 주장에 대해 반론을 행사해 달라고 하자, “국방부의 공정한 감사 결과를 기다리겠다. 우리는 이 사태에 대해 노코멘트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C중령도 “국방부의 정식 허가만 있다면 내가 어떻게 수사했는지 떳떳이 밝히겠다. 그 전에는 현역 군인인 만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B씨는 A법무관이 주도한 1차 수사만으로도 ‘노블리스 오블리지’(Noblesse Oblige) 정신을 일으켰다며 이렇게 말했다. “서슬이 시퍼렇던 박정희 군사정권도 야당으로 전락한 당시 구여권의 반발 때문에 고위 공직자의 병역 공개법 제정에 실패했었다. 그런데 우리가 수사 발표를 하자 불과 한달만에 국회는 ‘공직자 등의 병역사항 신고 및 공개에 관한 법률’(병역 공개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병무청이 지난 10월29일자 관보를 통해 고위 공직자의 병역 사항을 공개했으니 우리 수사의 파장은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어온 병무비리 수사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타오를 가능성이 있다. 정형근 의원이 언론 문건을 공개했을 때 국민회의에서는 “한나라당 의원 중 면제비리에 간여된 사람이 많다. 한나라당 공세를 막기 위해 병역비리 수사를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보인 사람이 적지 않았다. 국방의 의무 중 핵심인 병역의 의무에 관한 수사는 정도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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