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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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 권하는 사회’ 안전지대는 없다

‘생계 수단’ 아닌 돈벌이로… 전화방 - 몰래카메라 - 비아그라 등 ‘性의 상품화’ 봇물

  • 문철 기자 fullmoon@donga.com

    입력2007-03-09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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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性 권하는 사회’ 안전지대는 없다
    1999년 10월 한국의 케이블TV 업계는 두 가지 경험을 했다. 하나는 한국 케이블텔레비전방송협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이 조사에서 남자들이 바라는 새 채널 1순위는 ‘성인채널’(20.7%) 이었다.

    또 하나는 영화전문채널 OCN이 10월22일 금요일 밤, 평소 이 시간대에 방영하던 성인 에로물 대신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공포와 다큐멘터리 장르를 섞은 영화 ‘블레어 윗치’를 시청자들을 위해 특별방영했다가 낭패를 본 일. 평소 성인용 에로물을 방영하면 최소 30%의 시청률을 올렸으나 ‘블레어 윗치’의 시청률은 0%에 가까웠다. 두 에피소드는 한국 남성들의 성인물에 대한 관심을 쉽게 짐작케 한다.

    성욕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처리하는 성 산업은 오랜 세월 인간사회의 한쪽에 위치해 있었지만 언제나 눌리고 숨겨진 채였다. 한마디로 ‘억압과 금기의 존재’였다. 그리고 정상적인 사회영역과 섹스산업 사이에는 엄연한 장벽이 둘러 처져 있었다. 각종 규제나 사회적 혐오정서가 그들이다. 성에 관한 한 보수적인 한국에서는 더욱 그랬다.

    “더이상 음지에 묻힌 존재 아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특히 최근 한두 해 사이 이런 장벽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성 산업은 더 이상 음지에 묻힌 존재이기를 거부하며 대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다. 사창가라는 ‘고전’(古典)에서 사이버공간을 활용한 ‘첨단’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온통 성욕의 배출구를 찾으려는 몸부림으로 가득한 곳이 됐다.



    한국은 이미 성 산업의 다양한 종류와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선진국’. 매매춘으로 대표되는 직접적인 섹스산업이나 에로물을 제공하는 간접적인 섹스산업에서 웬만한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우선 성욕을 바로 충족시켜주는 직접적인 섹스산업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를 갖추고 있다. 이른바 ‘전통형 매매춘’과 ‘산업형 매매춘’, ‘신형 매매춘’이 그것이다.

    ‘청량리 588’ ‘미아리 텍사스’ ‘인천 옐로하우스’ ‘대구 자갈마당’ 등 집촌형태의 전통적인 ‘레드존’은 여전히 건재하다. 98년 한해 ‘미아리 텍사스’에만 약 160만∼200만명의 손님이 드나들었고 매출액은 약 1000억∼2000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룸살롱 가라오케 단란주점 티켓다방 안마시술소 퇴폐이발소 등 향락업소에서 이뤄지는 변태영업인 ‘산업형 매매춘’의 규모도 엄청나다. 80, 90년대 들어 비약적으로 성장한 ‘산업형 매매춘’은 적어도 ‘전통형’의 몇배 규모는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보건복지부는 매매춘과 관련있는 향락업소를 4만4000곳 정도로 추산하지만 시민단체나 여성단체에선 족히 30만개소는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관가 주변에선 전업 매춘인구도 10만명 정도로 적게 보는 견해가 없지 않다. 하지만 여성개발원 변화순수석연구위원은 100여만명, 청소년보호위원회 산하 청소년성문화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영희씨(내일신문대표)는 20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창가나 향락업소를 통한 매춘은 이제 매우 낡은 방법으로 통한다. 90년대 중반 이후 프라이버 시를 보장받으면서 시간낭비 없이 간단히 즐길 수 있는 ‘신형 매매춘’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기 때문 이다.

    ‘신형 매매춘’은 편의상 두 종류로 나눠볼 수 있다. 매개자나 매개장소가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다.

    최근 성업중인 ‘이벤트사 매매춘’이나 전화방 폰팅 등이 전자에 속한다. 이벤트사는 최소한 1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스포츠지나 오락잡지, 생활정보지 등에 ‘멋진 만남 주선’ 등의 광고를 내 5만∼10만원의 가입비를 받고 회원을 모집한 뒤 매매춘을 알선하고 화대의 일부를 챙긴다. 지난 9월 서울지검이 적발한 이벤트사 ‘나그네’는 40여명의 남성회원을 모집, 5개월 사이 수백회의 윤락을 알선했다.

    이보다 광범위한 것이 ‘전화방’이나 ‘남성휴게실’ ‘폰팅’ 등을 이용한 매매춘. 중개인의 소개에만 매달리지 않고 직접 상대방과 통화한 뒤 거래를 결정할 수 있어 젊은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이나 PC통신을 통해 연을 갖는 사이버윤락이나 이른바 ‘박카스 아줌마’, 거리의 매매춘 등은 중개인 도움 없이 스스로 찾는 매매춘에 속한다.

    몸을 파는 여성도 다양해졌다. 전업 윤락여성은 물론 여중고생 여대생 등 학생, 유치원교사 간호사 기업체비서 등의 직업여성, 주부에 이르기까지 층이 매우 넓다. 지난해말 검찰이 적발한 16개 이벤트사 회원은 주부(679명) 직장여성(450명) 여대생(251명) 등 2500여명이었다.

    과거 매매춘은 여성이 ‘가난과 절망’에서 최후수단으로 택하는 것이었다면 최근엔 돈벌이를 위해 스스럼없이 몸을 파는 여성이 늘고 있는 것이 특징.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미숙선임연구원은 최근 매매춘의 특징에 대해 “경로가 다양하고 아르바이트적 경향이 강하며 자발적 의지에 의해 유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90년 한국사회는 직접적인 섹스산업 외에 포르노산업 등 대중을 상대로 한 간접적인 섹스산업에서도 놀라운 성장력을 보였다.

    종로 세운상가, 청량리 사창가 주변, 황학동시장 인근 등 서울의 3대 포르노상 밀집지대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들어 서울 변두리 지하철역, 중고교 밀집지역, 전자상가 주변 등지에서 포르노 비디오테이프를 파는 가게들이 속속 등장했다.

    국도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1t트럭 형태의 ‘이동섹스숍’은 최근 1, 2년 사이 급성장한 포르노상이다. 트럭 짐칸에 비디오테이프 가게에서도 볼 수 있는 성인용 비디오를 진열해 놓고 있지만 주력상품은 단속을 피해 인근 숲 등에 숨겨놓은 포르노 비디오테이프다. 1개당 1만5000∼2만원에 판다.

    여러 형태의 포르노상들이 파는 음란물 중 최고의 인기품목은 ‘몰래카메라’ 비디오테이프물이다. 프로들이 연출한 것보다 수준은 낮지만 ‘사실적’(real)인 것을 원하는 고객이 많아 고가에 팔린다. ‘쭛쭛여대 화장실’ ‘쭛쭛여관’ ‘쭛쭛목욕탕’ ‘쭛쭛비디오방’ 등의 간단한 제목이 달린 이 비디오물은 말 그대로 화장실, 목욕탕, 여관, 비디오방 등지에서 몰래 찍은 정사나 여성의 몸을 담은 것들. 보통 7만∼8만원에 팔리며 화질과 내용에 따라 20만∼30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영화나 연극, 출판, 만화에서 다루고 있는 적나라한 섹스와 성담론도 섹스산업을 부추기는 환경이 되고 있다.

    베니스영화제에 출품됐던 영화 ‘거짓말’은 비정상적 성행위 장면 등으로 최근 등급보류 결정이 나 상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여름 개봉된 영화 ‘노랑머리’는 10대 여자 2명과 한 남자의 탐닉적 성관계를 그려 ‘금세기 가장 파격적인 한국영화’라는 평까지 들었다.

    99년 11월 막이 오른 화제의 연극 ‘거짓말’이나 부도덕한 창녀의 일생을 그리며 동성애적 내용까지 담은 연극 ‘룰루’ 등도 세기말 성담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탤런트 서갑숙씨의 에세이집 ‘나도 때론 포로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99년 10월)나 문화평론가 김지룡씨의 성체험담 ‘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99년 7월)는 마광수교수의 ‘즐거운 사라’나 작가 장정일씨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와 같은 허구의 기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일부 잡지에는 실명으로 나와 자신의 성생활에 대해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아저씨 아줌마들도 있다. 만화가게의 성인용 코너엔 포르노만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섹스 권하는 사회’는 제약분야마저 섹스산업의 한 변방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고개숙인 남성’을 겨냥한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와 조루증치료제 SS크림이 대표적인 예. 지난해 9월 나온 SS크림은 출시 100일만에 4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고 비아그라는 지난 10월부터 시중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들 약품은 정상적 부부관계에도 기여하겠지만 ‘부적절한 관계’에서 더욱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의 세기말 섹스산업 발달의 ‘획기적 공로자’는 뭐니뭐니 해도 인터넷이다. 인터넷의 사이버공간은 간접적인 섹스산업의 ‘부흥’을 불렀다. 포르노물의 전파속도나 접촉면적이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넓은 데다 규제 등 장애물이 거의 없기 때문.

    용산전자상가 등지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들어온 포르노물을 CD롬에 담아 파는 곳들이 적지 않다. 2, 3년 전부터 보편화된 CD롬 거래는 갈수록 위세를 떨치면서 전통적인 포르노비디오상들을 위협하는 수준이 됐다.

    인터넷 포르노는 외국산만 있는 게 아니다. 인터넷 상용화 3년만인 올해초 한국산 포르노 홈페이지가 처음으로 등장했고 ‘야설’(야한 이야기)이라는 별명의 포르노소설도 빠른 속도로 퍼졌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이 단속에 나서자 한글 음란사이트들은 대부분 해외로 도피,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해외 인터넷 서버를 이용한 한글 음란사이트는 100여개이며 대개 개설 3개월만에 200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야설’사이트도 500개를 넘는다는 얘기다.

    인터넷은 ‘신형 매매춘’에도 ‘대단한 기여’를 하고 있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 원조교제 등 매매춘을 직접 성사시키는 젊은이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기말인 90년대 한국에서 섹스산업이 번창한 이유를 이렇게 요약한다. “90년대 한국사회를 온통 지배한 것은 배금주의, 물질만능주의였다. 그리고 여성이 가장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몸을 파는 것이었다. 여기에다 정보의 범람과 성 개방 풍조는 향유형 매춘, 자발적 매춘을 증가시켰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라난 남성의 문란한 성의식도 주요 요인이었다.”남성권력과 여성권력이란 개념으로 세기말의 섹스범람을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 모계사회는 성에 관해 완전한 자유방임이었다. 생활의 주도권을 쥔 여자가 마음에 드는 남자와 언제든 성관계를 가졌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이젠 남성권력이 강해졌다. 남성들은 여자에 대한 소유욕과 지배욕을 강화하기 위해 성도덕 등 엄격한 계율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여자의 정절을 강요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여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성권력이 남성권력과 비슷해졌다. 최근의 성범람은 이런 차원에서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어쩌면 이같은 범람 속에서 성은 점점 흥미없는 것으로 변해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2000년대 한국의 섹스산업은 어떻게 될까. 번창일로를 걷게 될까, 쇠락의 길을 밟게 될까. 섹스산업과 관련해 덴마크와 일본은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는 나라다. 두 나라는 똑같이 성 개방 정책을 취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덴마크는 60, 70년대부터 ‘프리섹스와 포르노의 천국’으로 불렸다. 69년 포르노를 합법화했고 같은 해 세계 최초로 국제섹스박람회를 열었다. 그러나 75년 75개에 이르렀던 수도 코펜하겐의 X등급 영화상영관은 90년대초 모두 사라졌다. 한 세대 전엔 누구나 포르노와 섹스를 원했지만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흥미를 느끼는 이들이 격감했다.

    반면 일본의 포르노개방은 실패작으로 평가된다. ‘테레크라’ (Telephone Club·섹스전화방) ‘핀사로’(Pink Sloon·직접적 성교를 제외한 성행위) ‘소프란도’(Soap Land·증기탕) ‘이메크라’(Image Club·성에 대한 몽상체험) 등 다양한 성 산업은 번창하고 있고 ‘어린이 포르노’와 ‘원조교제’ 등 심각한 사회적 병리현상까지 불거져나온 것이다. 과연 우리는 덴마크형일까, 일본형일까.

    브레이크 없는 ‘섹스산업’

    독일 ‘섹스株’ 등장, 중국선 통제불능 수준 … 영국은 퇴조 대조적


    독일은 섹스산업이 발달한 나라다. 뿐만 아니라 섹스산업을 사업적 가치가 있는 정상적 산업으로 인정하는 나라다. 세계 최초로 섹스숍을 만든 ‘포르노산업의 여제(女帝)’ 베아테 우제의 성공사를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수도 베를린시내 중심권인 칸트가(街)에는 그녀가 세운 ‘에로틱 무제움’(Erotik Museum)이라는 섹스박물관이 버젓이 서 있다. 그녀가 운영하는 주식회사 ‘베아테 우제’는 98년 한해 잡지 비디오 영화 등을 팔아 1억6800만마르크(환화로 약 1120억원)의 순수익을 올렸다. 이 회사는 현재 독일에 50개의 직영 섹스숍과 유럽내 87개의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다. ‘베아테 우제’는 1999년 5월 독일 주식시장에 화제가 됐다. 유럽 최대의 ‘섹스기업’으로 유럽 최초의 ‘섹스주(株)’ 840만주에 대한 주식청약을 받았던 것. 청약경쟁률은 무려 15대 1이 넘었다.

    사회주의의 나라 중국에서도 섹스산업은 급성장산업이다. 중국의 한 신문은 얼마 전 경제특구가 ‘황색오염’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거리에서 음란도서나 비디오테이프를 버젓이 팔고, 밤이면 가라오케와 안마소 등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 인민대학 교수인 판쉐이밍(潘綏銘)은 ‘중국 지하 성산업 고찰’이라는 부제가 달린 성 산업보고서를 출판했다. 그는 여기에서 84∼97년 14년 동안 ‘매음’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윤락여성이 212만명이며 적발률은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반면 영국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섹스산업이 퇴조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영국의 유력지 ‘더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선정적인 잡지와 성적 놀이기구 등을 만들어온 영국의 스포츠신문 그룹들이 98년 2000만파운드(약 400억원)의 매출감소를 겪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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