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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한진그룹

'趙씨 왕국' 한진 경영권 내놓을까?

잦은 사고에 탈세 겹쳐 대권이양 가능성… 전문경영인 영입 종종걸음

  • 유영을 기자 youngeul@donga.com

'趙씨 왕국' 한진 경영권 내놓을까?



97년 말 대통령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한진그룹엔 비상이 걸렸다. 92년 양김이 맞붙은 대통령선거에서 거의 노골적으로 민자당 김영삼후보를 지지하는 등 몇가지 ‘원죄’를 저지른 한진으로서는 어느 재벌그룹보다 초조한 심정이었다.

더구나 김대중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강력한 재벌개혁 정책을 선언하고 나섰다. 투명 경영, 부채비율 축소는 물론이고 능력 없는 오너들은 퇴출시킬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까지 터져나왔다. 한진그룹이 더욱 추위를 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진은 김대중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인맥 구축에 나섰다. 그룹내 호남 인맥을 면밀히 파악해 적재 적소로 재배치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조중훈회장이 3공 때부터 잘 아는 김종필국무총리를 만나 도움을 부탁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델타항공 출신 외국인 부사장 영입 움직임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진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크고 작은 비행기 사고가 연달아 발생해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데다 10월초에는 국세청으로부터 모두 5416억원의 탈루세액 추징 통보를 받았다. 또 11월11일에는 조양호 대한항공회장이 조세포탈과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조중훈 명예회장과 조수호 한진해운사장은 불구속 기소될 예정이다.

검찰 수사 결과 조양호회장은 이면계약을 통해 미국의 항공기 엔진 제작사인 P·W사로부터 받은 리베이트 1685억원을 영업선수금으로 처리한 뒤 가지급금 명목으로 빼냈다. 조회장은 횡령한 돈에 대해 리베이트 자금으로 반제된 것처럼 허위 전표와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세무서에는 그 금액만큼 줄어든 소득 금액을 허위신고하는 방법으로 조세를 포탈했다.

94년부터 98년 사이 68회에 걸쳐 조회장이 빼돌린 돈은 모두 1095억원. 그는 이 돈을 증여세 등 개인세금으로 내거나 한진 계열사의 유상증자 때 주식인수자금으로 사용했다.

이처럼 불법과 편법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조중훈명예회장은 조양호회장과 상호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수호사장의 경우 해외송금을 위장해 36억원을 유출하고 각종 세금 10억1000만원을 포탈했으며 가지급금 20여억원을 변칙 유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중훈씨 일가의 이같은 조세 범죄가 꼬리를 밟힌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당시 국세청은 한진의 회계 처리에 의문을 갖고 은밀히 내사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국세청에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비리를 고발하는 투서가 들어왔다. 그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그룹 내에서도 자금 자재 국제 외환업무 등 요직에 근무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1급 비밀이 몽땅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한진그룹의 경영권 향배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금년 봄 KAL기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4월20일 김대중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전문경영인이 나서서 인명을 중시하는 경영체제로 바꿔야 한다”며 한진그룹의 경영권 문제를 거론했고, 그 이후에도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사석에서 한진에는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그런 터에 탈세 비리까지 벌어졌으니 자구책 차원에서라도 뭔가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움직임의 하나가 외국인 경영진 영입 방안. 한진측은 미국 델타항공의 데이비드 그린버그 전 운항본부장을 부사장으로 영입, 안전을 강화하고 선진 항공기법을 접목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 중 일부가 일선에서 물러나고 유능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한진측은 공식적으로는 현재의 그룹 분할구도(표 참조)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가 한진그룹 사건을 대우그룹 처리와 함께 재벌개혁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어 한진측 의사대로 될 지는 미지수다.

한진그룹 탈세사건의 불똥은 정-관계로까지 번질 조짐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건설교통부 고위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이 한진으로부터 로비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특히 국민회의의 중진 K의원은 호남인맥이 취약한 한진그룹을 위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설이 나돈다.

검찰은 한진그룹 관련 임원들을 소환해 비자금 사용처를 집중 조사했다고 한다. 명절 때 떡값을 준 것 이외에는 잘 모른다고 버티는 임원 모씨에게는 더 큰 것을 불라며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현재 검찰은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한진의 비자금 내막을 상당부분 밝혀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검찰이 그 자료를 정치권 물갈이용으로 사용할지 아니면 ‘주머니 속의 칼’로 간직할 것인지 주목된다.

검찰의 본격 수사는 한진의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한진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11월말쯤 수사를 시작해 연말경 매듭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한진측은 문건정국이 가라앉지 않고 확대될 기미를 보이자 검찰이 서둘러 소환조사에 들어간 것 같다고 분석한다.

한진은 10월초부터 서울 프라자호텔에 대책본부를 마련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해왔다. 변호인단도 최경원 전 법무차관, 이원성 전 대검 차장, 안강민 전 대검 형사부장, 김수장 전 서울지검장 등 거물급들을 영입해 스타군단을 구축했다. 그러나 오너의 구속사태만은 피하지 못했다.

조양호회장의 구속에 대해 한진그룹 직원들은 비교적 덤덤한 반응이다. 동정 여론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간부사원 P씨는 말한다.

조회장은 미국 남가주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대한항공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그는 항공업무에 대해서는 전문가 뺨칠 만큼 식견이 높다. 하지만 리더십에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진 사람들은 말한다. 지나치게 논리적인데다 성격이 까다로워 따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주간동아 210호 (p34~35)

유영을 기자 younge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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