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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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들도 인정한 ‘一高의 악바리들’

문일현 기자·구본인 검사·고재방 비서관 등 즐비… 고교 땐 시위로 얼룩

  •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입력2007-03-09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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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들도 인정한 ‘一高의 악바리들’
    중앙일보 문일현기자, 주중대사관 법무협력관 구본민검사, 고재방 청와대기획조정비서관, SK상사 중국베이징지사 김모부장….

    최근 언론문건대책사건과 관련해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람들이다. 문기자는 언론대책문건을 작성한 핵심관련자. 구검사는 문기자가 베이징에서 잠적한 이후 여러 차례 걸려온 전화통화를 통해 귀국을 종용하는 역할을 했다. 고비서관은 문기자와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한나라당 이신범의원에 의해 공개되면서 엉뚱하게 구설수에 올랐다. SK 김부장은 SK상사의 중국출장자용 예비휴대전화를 문기자에게 빌려줬다.

    이들의 공통점은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라는 점. 모두 호남의 명문고교인 광주제일고등학교 21회 동기동창생들이다. 문건작성에 관여한 제3의 인물로 알려져 검찰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렀던 문병호 중앙일보논설위원은 이들의 선배인 10회 졸업생.

    고교 동기생들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광주일고 21회 졸업생들은 대체로 안타깝고 착잡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현이 때문에 미치겠구만”이라며 문기자를 책망하는 동문이 있는가 하면 “일현이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며 사건을 확대하기에 바쁜 정치권과 언론에 불만을 토로하는 동문도 있었다.

    “일현이 때문에 미치겠구만”



    사실 언론문건사건으로 온나라가 떠들썩했던 11월은 광주일고가 경사를 맞은 달. 1929년 11월3일 광주일고의 전신인 광주고보생들에 의해 발발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70주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김대중대통령이 직접 광주일고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해 학생의거탑에 헌화했고, 학교측이나 동문들 역시 이날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재미있는 것은 언론문건사건을 떠나 광주일고 동문들 사이에서 21회 졸업생은 다른 어느 기수에 비해 ‘의식이 강하고 기질이 억세다’는 평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다름아닌 광주학생독립운동에서 연유하는 ‘일고 정신’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광주일고 21회가 그러한 평을 받고 있는 이유는 이들의 학창시절을 들여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이 광주일고에 다녔던 시기는 73,74,75년. 유신독재의 광풍이 불어대기 시작하던 때였다. 당시 박정희정권은 73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한 ‘학생의 날’을 폐지해 당시 광주일고 재학생들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당시 1학년생이었던 21회 동기생들도 시위에 적극 참여했다고 한다.

    이들이 2학년 때인 74년에는 서울대 농대에 재학중이던 김상진군이 유신독재에 항의해 할복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다시 격렬한 시위가 발생했다. 김상진군이 광주일고 출신인 것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더욱 격분한 광주일고 재학생들은 학교정문을 돌파해 전남도청 앞 광장까지 거리시위를 벌였다. 이 때의 시위 주역이 바로 21회 동기생들이었다. 다행히 교사들이 발벗고 나서 사태를 수습해 아무도 구속되거나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었지만 3학년 때인 75년 다시 유신반대 시위가 발생했고 이 때 21회 동기생 중 8명이 퇴학조치를 당했다.

    21회 동기생 중 “우리는 피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라는 문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교내 학생의거탑에 선명하게 새겨진 이 문구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이들에게는 하나의 지상명령이나 같았다. 어떤 학급은 아예 이 문구를 교실에 써붙여놓고 틈만 나면 구호처럼 외쳐댔다고 한다. 황광수 광주고보-서중-일고 총동창회 상근부회장의 말처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외면하지 않는 광주일고의 정신”을 실천에 옮긴 셈이다.

    21회에 남아 있는 또다른 기억은 이들이 3학년 때인 75년 광주일고가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에서 숙적인 경북고를 꺾고 우승했다는 사실이다. 4번타자인 김윤환선수가 결승전에서 고교야구사상 전무후무한 3연타석 홈런을 날린 것도 이 때의 일이다. 김윤환 강만식 차영화선수 등 전국대회 우승의 숙원을 푼 주역들이 모두 21회 동기생들이다. 한 동문은 “유신반대시위에다 야구대회가 열리면 응원을 하러 다니느라 솔직히 공부를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며 “21회가 기질이 억세다는 말을 듣는 것도 재학시절의 그러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학교에 다니던 때는 75년 고교평준화가 시행되기 직전으로 광주일고가 ‘공부 잘하는 학교’ 라는 명성을 얻으며 최전성기를 구가한 시기이기도 했다.

    서울대에만 110여명이 진학한 21회 동기들은 지금 사회 곳곳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법조계의 경우 이재원 대전지검특수부장, 주미대사관 법무협력관으로 나가 있는 소병철검사, 임권수 광주지검해남지청장, 구자희 서울서부지청검사, 김대호 법무부보호과검사, 임준호 이민영 서울지법판사 등이 21회 동기다.

    또 256메가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삼성그룹 최연소이사 승진 기록을 갖고 있는 고영범 삼성전자이사, 원윤희 서울시립대교수, 정석구 한겨레신문경제부장 등이 모두 광주일고 21회 출신이다. 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 한나라당부대변인, 국민회의 부대변인을 지낸 유종필 국정홍보처 분석국장도 21회 동기생.

    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던 바로 윗 선배들인 19, 20회 졸업생의 경우 서울대에 똑같이 119명이 진학했다. 18회 졸업생은 125명이 서울대에 합격했다. 또 73년의 사법고시 14회 시험에서는 전체 80명 중 9명이 합격해 최다합격자를 배출한 고교로 이름을 떨쳤다.

    남보라법조 재계 정계 등서 핵심으로 맹활약

    17~22회 동기생들이 40대 초-중반으로 사회 각계에서 두텁게 ‘허리’를 형성하고 있다면 이들의 선배 기수는 정권교체 이후 정부내의 핵심요직에 많이 진출해 눈길을 끌었다. 4회 이후 졸업생 중(광주서중 졸업생들의 진학 고교가 광주고에서 광주일고로 바뀐 것이 4회졸업생부터다) 많은 사람들이 정-관계의 요직에서 두루 활동하고 있다.

    현직 대법관 2명, 청와대 경제수석, 육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 사정의 총지휘탑인 대검중수부장 등 요직에 광주일고 출신들이 대거 등용됐다.

    법조계의 경우 검찰보다는 법원 쪽에 쟁쟁한 인물이 많다. 대법원장 물망에 올랐던 이용훈 중앙선관위원장 겸 대법관(4회), 윤재식대법관(5회), 서울고법원장을 지낸 김영진변호사(3회), 광주지법원장을 지낸 박영식 언론중재위원장(4회) 등이 대표적인 인물. 검찰에서는 검사장급 인사로 신광옥 대검중수부장(6회), 김대웅 대검강력부장(9회)이 포진해 있다.

    군에는 김동신 전육군참모총장(5회)과 이수용 해군참모총장(6회)이 있다. 지난 10월 김전총장이 육참총장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는 육군과 해군의 최고지휘관을 광주일고 출신이 동시에 맡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었다.

    금융계에서도 광주일고 출신들의 맨파워는 두텁다. 신동혁 한미은행장(3회), 김정태 주택은행장(10회), 조승현 교보증권사장(11회)을 필두로 고수익 펀드매니저로 명성을 날린 박현주 미래에셋자산운용대표(22회)와 장인환 한국종합기술금융 대표(22회)가 그 뒤를 잇고 있다.

    김대중대통령의 자문교수그룹인 중경회와 지정회에서 핵심역할을 했던 것도 광주일고 출신들이다. 92년 대선 때부터 김대통령을 도와온 경제학자 그룹인 중경회에는 이선 산업연구원장(9회), 윤원배 전 금감위부위원장(10회), 김효석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12회), 이진순 한국개발연구원장(16회) 등이 참여했다. 또 올 3월 결성된 지정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유승남 국민대 행정대학원장은 광주일고 3회 출신이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부정직이 최대 단점

    교육자 학자들 대상 국민성 조사


    한 나라의 국민이 모두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그 나라 국민의 대다수가 갖는 특징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특징을 찾는 조사를 국민성 조사라고 하여 여러 나라에서 실시한다. 한 예로 일본에서는 1953년 이래 5년마다 정기적으로 3000명에서 6000명의 규모로 ‘일본 국민성 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에게 일본인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말을 고르라고 했더니, ‘부지런하다’가 가장 많이 선택됐고 다음으로 ‘끈기 있다’ ‘겸손하다’가 선택됐다. 반면에 선택이 적은 항목은 ‘창의적’‘개방적’ 이었다. 이 결과를 보고 일본인을 ‘ 부지런하고 겸손한 모방의 천재’라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이 되나? 독일의 알렌스바흐(Allensbach) 여론조사기관에서도 정기적으로 국민성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데 독일인 스스로 장점으로 꼽은 항목으로는 ‘근면하다’ ‘신뢰할 만하다’ ‘검약하다’ ‘청결하다’가 많이 선택됐고, 단점으로는 ‘거만하다’ ‘물질적이다’‘지배적이다’ 등이 지적됐다고 한다. 그래서 근면하고 딱딱한 사람을 ‘독일병정’ 같다고 하나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1996년 공보처가 성인 15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장점으로 ‘근면’ ‘성실’ ‘끈기’를 꼽았고, 단점으로는 ‘이기적’ ‘사치’ ‘성급함’ 등을 꼽았단다. 그러면 우리나라 국민은 ‘자기이익에 급급한 부지런한 일꾼’이라고 하면 될까. 그런데 1999년 7월에 교육부가 교육자, 학자 104명에게 우리 국민의 단점을 물어보았더니 응답자 중 최다수인 42명이 ‘부정직’을 들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는 ‘거짓’을 파헤쳐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약하고 ‘진실’을 외치는 것에 대해 가치를 두지 않는다. ‘거짓’에 있어서는 일반 국민보다 지도층이 한술 더 뜬다. 전직 대통령이 비자금문제로 거짓말하고, 고관 부인들이 옷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하더니, 지금은 ‘언론문건’으로 일부 언론인 출신과 정치인들이 ‘내게 거짓말을 해봐’하고 있다. 우리 국민이 아무리 근면, 성실하더라도 ‘거짓’으로는 선진국민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노규형/리서치 앤 리서치 대표·정치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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