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6

2016.07.13

사회

‘강남 마케팅’에 당신도 걸려들었다

13년 전 인기 끌었던 운동화 ‘강남’ 붙이니 품절대란…젖병, 유모차, 패딩, 카시트로 확산

  •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nate.com

    입력2016-07-12 12: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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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제품 품절이에요. 전량 수입하다 보니 재입고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최근 ‘강남 운동화’로 불리며 초등학생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바퀴 달린 운동화 ‘힐리스’ 관계자의 말이다. 3월 재론칭과 동시에 품절대란 사태를 맞은 힐리스는 2000년대 초반 가수 세븐이 무대 퍼포먼스를 위해 신고 나오면서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돼 인기를 끌었다. 2003년 상반기 한국에서만 4만5000켤레, 70억 원어치가 팔려나갔다. 힐리스의 매력은 신발 밑창에 바퀴가 달려 있어 인라인스케이트처럼 미끄러지듯 달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익숙해지면 시속 20km까지 속력을 낼 수 있어 재미와 스릴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일반도로나 골목길에서 내달릴 경우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인기가 예상외로 금세 주춤해진 것도 잇따른 안전사고 때문이었다. 실제로 2003년 9월 광주에서는 한 초등학생이 바퀴 달린 운동화를 신고 달리다 5t 화물차에 부딪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이 사고에 대해 당시 전문가들은 예견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소비자원에서는 이미 소비자안전경보를 발령하고 “바퀴 달린 운동화 관련 사고는 돌멩이 등 이물질이 운동화 바퀴에 끼거나 불규칙한 노면에서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서 주로 일어난다”며 “인도를 벗어나 아스팔트 도로에서도 신고 달리는 사례가 많아 교통사고 위험까지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문가들의 우려만으론 청소년과 어린이 사이에서 경쟁적으로 번진 ‘바퀴 달린 운동화’에 대한 집착을 꺾기란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13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어떨까. 힐리스 측의 답변처럼 제품은 이미 품절대란으로 온·오프라인 예약까지 줄을 잇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도 ‘#강남운동화’란 해시태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강남 운동화’ 해외 직접구매(직구) 방법을 공유하거나 구매대행을 실시하는 온라인 사이트도 여럿이다.





    강남 스타일 “우리도 싫다” 

    강남 젖병, 강남 유모차, 강남 패딩, 강남 카시트….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하면서 ‘강남 스타일’이란 타이틀로 상품을 홍보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최고 제품이라는 의미를 부각하려는 수단으로, 특히 고가 유아용품에 ‘강남’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소비자들 역시 강남 타이틀을 자기 과시용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고가 제품을 손에 넣음으로써 자신이 특별하다는 우월감이 든다는 착각에서다. 또한 이러한 인식은 제품 품질이나 안전성 여부에 관계없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고 만다’ 식의 무모함을 부추기기도 한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관련 업체들도 강남 타이틀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희는 ‘강남 엄마 패딩’으로 언급되고 싶지 않아요. 물론 강남에 거주하는, 구매력 있는 30, 40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격대인 건 맞지만 실제 상품 구성을 보면 남성 의류의 비중이 훨씬 높고, 신진 디자이너들과 컬래버레이션한 제품 중에는 20대를 겨냥한 상품들도 있는데 ‘강남 엄마 패딩’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서인지 시즌마다 어떤 상품을 내놓아도 이 같은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정숙영 ‘몽클레르’ 이사는 “‘강남 엄마 패딩’이라는 수식어가 전략적으로라도 떼어버리고 싶은 꼬리표”라고 말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강남 패딩’이라는 단어만 입력해도 몽클레르란 브랜드가 우수수 쏟아지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몽클레르는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가 아닌 이탈리아 감성의 패션 브랜드”라는 것이 업체 측 항변이다.

    ‘강남 젖병’으로 알려진 실리콘 젖병 브랜드 ‘마마치’ 측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강남 타이틀을 단 제품이 대부분 고가 해외 브랜드인 데 반해 마마치는 순수 국내 브랜드다. 하지만 가격은 일반 젖병에 비해 1.5~2배 비싸다. 김도환 마마치 차장은 “단 한 번도 ‘강남 젖병’이란 문구를 제품 홍보나 마케팅에 사용한 적이 없다. 제품 론칭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할리우드에서 먼저 해 해외 유명 브랜드인 것처럼 소문이 났지만, 우리가 내세우고 싶은 건 친환경 소재의 안전하고 내구성 뛰어난 제품이란 점이다. 고가인 이유는 마케팅 수단이 아니라 책정 단가 자체가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업체 측 항변에도 고가에 거래되는 유명 브랜드 제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는 분명 있다. 2012년 소비자시민모임(소시모)에서 국내 유통 베스트셀러 유모차 11개 제품을 비교 분석한 결과 고가에 판매되는 수입 유모차 스◯◯와 오◯◯ 등이 6개 등급 가운데 네 번째인 ‘미흡’ 판정을 받아 가격 대비 품질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다른 3개 제품도 일부 안전성 테스트에서 기준에 미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유모차는 여전히 ‘강남 유모차’로 불리며 주부들의 로망으로 군림한다. 



    ‘쇳가루 검출돼도 수입 분유는 다르다?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회장은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의 경우 자국의 환경과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제작돼 자체 검사에서 ‘우수’ 등급 평가를 받았다 해도, 막상 국내 사용자에게는 불편할 때가 많다”고 밝혔다.  

    유모차뿐 아니라 공기청정기, 제습기 등도 가격 대비 성능이 현격히 떨어지는 제품이 수두룩하다. 결국 소비자가 근거 없는 홍보 마케팅에 현혹되지 않고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 회장은 “수입품은 통관과정에서 허점이 상당하다. 업체 쪽에서 제시하는 실험 성적을 첨부하면 자동 통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국내 환경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제대로 거르지 못한다.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안전하고 정직한 소비가 이뤄지도록 돕는 사회적 그물망의 확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소비자들의 소비 형태와 인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김 회장은 “2004년 강남에서 주로 소비된 미국산 수입 분유에서 쇳가루가 검출돼 한바탕 난리가 난 적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수입 분유에 대한 막연한 로망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소비자가 변해야 회사와 시장도 변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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