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6

2016.07.13

정치

정무라인 바꾸고 국회에 손 내밀고

朴 대통령, 정치권 ‘배신’ 피할 묘수로 식사 정치 시동

  • 박세열 프레시안 기자 ilys123@pressian.com

    입력2016-07-11 17:09:4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새누리당의 4·13 총선 참패는 정치 지형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2013년 2월 취임 이후 어떤 바람에도 견고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 올해 4월 13일 이후부터 흔들리고 있다. 유승민 의원 등 ‘배신의 정치인’이 공천에서 배제됐음에도 생환에 성공했고, 야당은 2004년 총선 이후 12년 만에 원내 제1당 자리를 탈환했다. 조응천, 진영 등 박근혜 정부 핵심 인사가 줄줄이 야당으로 적을 옮겨 당선했다.

    임기 말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은인자중(隱忍自重)하던 윤창중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실 대변인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김영삼(YS) 정부 때부터 운영돼온 서별관회의가 별안간 ‘밀실 회의’로 비판받고 있는데도,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민국어버이연합 관제 시위 의혹이 툭 튀어나왔다. 친여 성향의 시민단체 인사가 청와대 연루설을 언론 인터뷰에서 언급하고 있다.



    총체적 난국, 그리고 고독의 리더십

    총선 전과 후의 분위기를 비교할 수 있는 좀 더 극명한 사례도 있다. 2015년 6월 국회법 거부권 파동 때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만으로 여당 원내대표를 단칼에 자를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5월 국회법 파동 때는 조금 달랐다. 박 대통령은 19대 국회 임기 이틀 전 금요일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1년 전과 달리 정면 돌파가 불가능한 상황임을 대통령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청와대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최근에는 박 대통령의 ‘입’인 조인근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이 사표를 냈다. ‘순장조’ 멤버로 예상된 인물이었다. 국장급(3급)인 A행정관은 최근 새누리당 초선의원 4급 보좌진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와대 직원들 사이에서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미래가 어둡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국정 과제는 산적해 있다. 청와대가 추진해온 노동법(파견법) 개정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경제 관련 법안들이 야당의 반대에 막혀 있다. 12조 원 규모의 구조조정과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20조 원 규모의 경기부양 ‘실탄’을 운용하려면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부의 도움도 절실하다. ‘총체적 난국’이다. 결국 통치 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어렵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간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원칙’으로 설명돼왔다. 그를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한 키워드이지만, ‘원칙’과 ‘독단’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일각에서는 ‘고독의 리더십’이라는 설명도 나오는데, 모든 것을 스스로 결단하고 밀어붙여왔던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 변하지 않으면 19대 대통령선거(대선)까지 남은 1년 6개월 동안 국정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 언론뿐 아니라 전문가들도 같은 지적을 내놓고 있다.

    최근 박 대통령도 위기를 감지한 듯하다. 박 대통령은 최근 정무라인을 바꿨다. 현기환 전 정무수석 자리에 김재원 수석이 후임으로 들어왔다. 첫 기획은 새누리당 의원 전원과 오찬이다. 이 자리가 의미 있는 이유는 유승민 의원 등 총선 공천 파동으로 무소속 출마해 생환한 의원까지 참석자 명단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오찬 날짜인 7월 8일은 공교롭게도 유 의원이 지난해 박 대통령의 공세로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난 지 꼭 1년 되는 날이다. 상징적인 의미다.

    정무라인을 대대적으로 손보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개각의 경우 청문회 등으로 오히려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무라인 교체는 최소한의 인사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으로 꼽힌다. 현재 3개월째 공석인 정무비서관 인선을 위해 고심하는 모습도 보인다. 자리를 메우기 위해 아무나 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청와대가 적임자를 찾고자 애쓰고 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굵직한 선거가 없는 상황에서 정무라인을 손보려는 이유는 하나다. 대(對)국회 관계를 위한 것이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새누리당 의원 129명을 청와대로 초청하는 것도 여권 내부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으로 나뉘어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인식이 엿보인다. 유 의원이나 김무성 전 대표 등 여권 차기 주자들과 자연스럽게 같은 자리에 있는 모습만으로도 그 상징성은 크다.



    최소한의 인사로 최대 효과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이번 오찬 행사가 하반기 국정운영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과거 사례도 심심치 않게 언급된다.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친서민 중도 실용’을 천명하고 국정 전환을 모색하며 그해 10월 1일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의원 전원을 청와대 만찬에 초청했다. 이후 새누리당은 임기 반환점을 돈 이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며 야당의 ‘4대강 예산안’ 공세를 정면 돌파했다.

    대야 관계도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의원과 오찬을 가진 후 정세균 국회의장 등 여야 상임위원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할 계획이다. 야당과의 소통에도 나서겠다는 것이다. 앞서 야당과의 소통은 실패로 끝났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겠다는 시그널을 야당에 준 것은 박 대통령의 실수로 보인다. 그럼에도 122석 더불어민주당, 38석 국민의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야당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식사 정치’ 같은, 보여주기 식 행보 이상의 제스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에 필요한 것은 ‘명분’이다. 지지층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야당에게 박 대통령을 도울 명분이 없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을 두고 으르렁거리는 야당을 달랠 수 있는 현실적인 ‘선물’이 필요하다. 여당 일각에서도 “대통령이 화끈한 모습을 딱 한 번만 보여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온다.

    4·13 총선 이후 박 대통령은 총선 민심을 편의대로 해석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4월 26일 청와대 출입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과 오찬에서 박 대통령은 총선 결과를 두고 ‘국회 심판론’을 폈다. 그러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지난 3개월간 박 대통령의 행보는 ‘영점사격(零點射擊)’에 해당할 수 있다. 물론 지나치게 긴 영점사격 기간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20대 첫 정기국회를 앞둔 지금이 국면 전환의 적기라는 점이다. 오는 8·15 경축사에서 내놓을 메시지도 주목된다. 2012년 박 대통령은 당이 위기에 처하자 당명을 버리면서까지 혁신 이미지를 구축했다. 7~8월 돌아선 민심을 잡는 데 성공한다면, 박 대통령은 헌정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기하고 실패한다면, 대선을 앞두고 ‘빅뱅’ 조짐을 보이는 정치권에 제대로 ‘배신’당할 수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