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0

2016.06.01

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새콤달콤함에 더위야 물러나라

제주 물회

  •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6-05-30 17: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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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러운 ‘봄 실종 사건’으로 당황하는 이가 적잖다. 5월 더위가 한여름을 방불케 한다. 열로써 더위를 다스리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을 택하는 이도 많지만 필자는 시원한 것으로 열기를 식히는 이냉치열(以冷治熱)이 더 좋다. 날이 더워지면 서울에선 냉면집을 주로 찾고, 부산에 가면 밀면을 즐겨 먹으며, 제주에 가면 물회를 빼놓지 않는다.

    제주 물회는 다양성에서 다른 지역을 압도한다. 자리물회가 중심에 있지만 살의 밀도가 높고 단맛이 강한 한치물회도 인기가 많다. 황놀래기의 제주 방언인 어렝이로 만든 어렝이물회는 달달한 맛이 나고, 구젱기(소라)물회는 쫀득한 식감이 일품이다. 고소한 맛이 좋은 군부물회도 있고 제주 특산물인 옥돔물회부터 오징어물회까지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제주 물회의 대표주자는 자리물회다. 자리돔은 잉어처럼 생겼지만 크기가 작다. 같은 제주라도 모슬포 자리돔은 아이 손바닥만하고 보목항 자리돔은 그보다 몸통이 두세 배 더 작다. 그래서 모슬포 자리돔은 주로 구이로, 보목 자리돔은 물회로 많이 먹는다.



    1970년 12월호 ‘제주도’란 잡지에 실린 자리물회에 관한 내용을 보면, 당시 제주 토박이들은 바닷가에 모여 앉아 양재기에 잘게 다진 자리돔과 바위 틈으로 솟아오른 차디찬 물을 넣고 식초와 된장, 채소를 곁들여 넣은 뒤 소주 안주로 먹었다고 한다. 원래 자리물회는 술안주용으로 더 많이 먹었지만 식욕이 떨어지는 여름에는 밥과 함께 먹기도 했다. 자리돔은 5~6월 가장 살이 많이 오르고 맛도 좋다. 지금이 바로 자리물회 제철인 것이다.

    제주 한림읍 근처 바닷가에 자리 잡은 물회 전문점 ‘톤대섬’은 현지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식당이다. 이 집에선 자리물회와 한치물회, 옥돔물회를 모두 맛볼 수 있다. 옥돔 살을 발라 얇게 썰어 내고 머리와 뼈는 곱게 갈아 국물에 넣는 것이 이 집 옥돔물회의 가장 큰 특징. 제주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집답게 옥돔은 썰어서 식초에 잠시 담가 살을 부드럽게 하고 혹시 모를 세균 오염도 막는다. 국물이 걸쭉하고 개운하며 감칠맛이 강하다. 옥돔 살은 부드럽지만 질감이 있다. 마치 젤리를 씹는 듯하다. 국물 점도와 온도, 간이 다 좋다. 여기에 오이 같은 아삭한 채소까지 옥돔물회와 한몸처럼 잘 어울린다.



    자리물회도 좋다. 요즘은 빙초산이나 식초를 이용하지만 원래는 날된장과 보리밥을 발효시킨 제주 전통 쉰다리식초를 이용해 생선 균을 잡고 식감도 부드럽게 해서 먹었다. 모슬포 반대쪽에 있는 서귀포 보목항에는 유명 물횟집이 몰려 있다. 보목 사람들의 자리돔 자부심은 대단하다. 보목에서 잡히는 작은 자리돔은 물회로 적당하다. 1994년 생긴 ‘어진이네횟집’은 보목 자리물회의 원조로 꼽히고 있다. 양이 많아 주머니 가벼운 손님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이어지는 집이다. ‘보목해녀의집’은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더 많이 찾는 집이다. 자리돔 머리나 뼈로 우린 국물에 된장을 풀고 깨와 고춧가루를 살짝 올려 낸다. 제주 토박이들이 즐겨 먹는 제피 잎을 넣으면 생선 비린내는 쉽게 잡을 수 있다. 구수한 된장국물과 식초에 절여 신맛이 살짝 나는 졸깃한 회, 아삭거리는 오이채가 별 무리 없이 잘 어울린다. 채소와 생선에 된장까지 자연의 음식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 한 그릇 먹다 보면 더위를 느낄 틈이 없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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