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0

2016.06.01

특집 | 헬조선 교육난민

부모 姓 버리고 ‘유학 입양’ 택한 아이들

미국 대학 등록금 절감, 시민권 취득 목적…영주권 못 받아 불법체류자 되기도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5-30 16: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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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준(18·가명) 군은 미국 뉴저지 주에서 양부모인 고모 부부와 살고 있다. 원래 ‘박’씨였던 김군은 중학교 2학년이던 2012년 고모부에게 입양됐다. 이유는 ‘미국 유학을 위해서’였다. 김군의 부모는 좀 더 일찍 아들을 유학 보내고 싶었지만 중산층 가정에서 뒷바라지하기가 쉽지 않아 망설였다. 그러나 “미국 가정에 입양돼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 학비 절감은 물론, 미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심했다. 비록 법적 가족관계를 포기하더라도 아이 미래를 위해 입양을 선택하기로 했다. 김군은 “성(姓)을 바꾼 지 4년이 지났지만 나의 진짜 부모는 한국에 사는 친부모다. 고모 집에서는 홈스테이하는 기분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유학 입양’은 십수 년 전부터 은밀히 이뤄졌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자녀를 유학 보내고 싶지만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은 가정에서 입양을 택했다. 한 유학기관 관계자는 “‘유학 입양’을 문의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학업 비용을 줄이려는 것, 그리고 취업비자 없이 미국에서 취직해 좋은 장래를 보장받으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입양 사유 없어도 5000달러면 끝

    하지만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식을 해외로 입양 보내는 일이 과연 쉬울까. 입양 절차를 도와준다는 한 업체 관계자와 통화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 미국에 사는 친척에게 입양 보낼 수 있느냐. 실은 유학이 목적이다”라고 솔직히 밝혔다. 다음은 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입양 보낼 때 사유는 중요치 않다. 한부모가정이거나 부모에게 정신병력이 있다는 이유로 아이를 입양 보내기도 하지만, 그런 절박한 이유가 없어도 입양은 가능하다. 다만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하면 다시 법적 부모가 될 수 없으니 신중하게 판단하길 바란다. 입양까지는 3~6개월이 걸린다.”



    입양 비용은 얼마나 들까. 5000달러(약 590만 원) 이상이다. 미국 조지아 주에서 활동하는 이강철 변호사는 “관할 법원이나 병원마다 다르지만 입양재판 변호사 수임, 양부모 가정 방문 조사, 이민국 심사비, 신체검사 비용 등 5000달러 정도가 든다”고 말했다.   

    미국 가정에 입양돼 영주권 및 시민권을 따려면 최소 만 16세 이전에 입양돼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활동하는 강지일 변호사는 “미국에 ‘입양 유학’을 오는 아이는 주로 방문비자나 전자여행허가(ESTA)를 통한 무비자로 온다. 그리고 양부모 가정에서 지내면서 입양 절차를 밟는다. 입양을 심사하는 가정법원은 입양 사유는 검토하지 않고 양부모가 아이를 키울 여건이 되는지만 본다. 아이는 만 16세 이하여야 입양이 가능하고, 2년 동안 정상적으로 입양생활을 하면 영주권 및 시민권을 신청할 자격을 부여받는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자식을 ‘유학 입양’ 보내는 부모가 가장 바라는 점이다. 자녀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미국인과 똑같은 혜택을 누리며 사는 것.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면 미국 내 공립학교에 입학할 수 있고, 거주지의 주립대학도 저렴한 학비로 다닐 수 있다. 한 유학 전문가는 “‘유학 입양’의 경제적 이점은 대학에서 확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는 홈스테이 비용이 월 2000~2500달러(약 295만 원)가 들기에 별 이득이 없지만, 대학은 유학생 학비의 최대 3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게 다닐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학 입양’의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먼저 입양 후 양부모와 관계, 현지 생활 적응의 어려움 등으로 파양을 원하는 경우다. 이모(18) 군은 1년 전 미국에 사는 작은아버지에게 입양됐다. 이군에 따르면 양부모는 이군을 입양하기 전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원하는 고등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에 보냈고, 수영 등 스포츠 활동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가족여행에도 끼워주지 않았다. 이군은 변호사를 통해 파양을 알아보는 중이다. 하지만 친부모가 이군에 대한 친권을 완전히 포기했기 때문에 이군의 파양을 도울 방법은 없다.



    친부모의 지원 들통 나면 영주권 못 받아

    양부모가 기존 가정과 연고가 없는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할 수 있다. 박모(16) 양은 2년 전 한 미국 가정에 입양됐다.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미국에 친척이 없어 입양기관을 통해 양부모를 찾았다. 하지만 미국 현지인의 가정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고 양부모와 의사소통도 잘되지 않았다. 박양은 한국 친부모에게 돌아가고 싶지만 양부모가 파양을 거부하고 있다.

    입양 후 영주권, 시민권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아이의 입양이 유학 등을 목적으로 한 편법 입양임이 드러났을 때다. 미국 이민법 전문 포털사이트 ‘그늘집’ 관계자는 “미국 이민국에서는 입양아의 영주권을 심사할 때 ‘진정한 입양생활을 했는지’ 까다롭게 검토한다. 친부모가 계속해서 금전적 지원을 했거나, 아이가 사는 곳 근처에서 살거나, 아예 아이와 함께 살아온 것이 발각되면 허위 입양으로 여겨 영주권 신청을 거부할 수 있다. 한국인의 위장 입양이 늘어나 미국 정부에서도 예의주시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영주권을 못 받으면 불법체류자로 전락한다. 이강철 변호사는 “현재 미국 이민법으로는 불법체류자를 구제할 방법이 거의 없다. 불법체류자 청년은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하는 방법 외엔 영주권을 취득할 길이 없다. 따라서 합법적으로 결혼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위장 결혼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는 ‘위장 입양’과 비슷한 행태가 반복되는 악순환”이라고 말했다. 강지일 변호사는 “불법체류자가 되면 본국에 돌아가야 마땅하지만 그냥 미국에서 머무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안다. 몸은 남의 집 자식이 됐는데 신분은 불법체류자인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미국으로 입양된 아동은 278명이다. 이 가운데 유학 등을 목적으로 입양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학 입양’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다. 친부모가 아이를 입양 보낼 때 ‘유학 또는 시민권 취득 목적’이라고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유학 입양’ 문의를 여러 번 받았다는 유상연 메디치유학원 원장은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유학 입양은 자제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 간 법적인 연을 끊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부모가 친부모에게 금전적 대가만 바라는 경우 아이에게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아이가 아직 어린 상황에서 유학 입양을 보냈다 현지 적응에 실패하는 사례가 꽤 있다. 부모는 무리하게 편법 입양을 시도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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