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0

2016.06.01

사회

난자 이용해 난치병 고친다?

다시 시작된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해외에선 난자 없이 줄기세포 만드는 기술 각광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05-30 15:5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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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월 미국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연구팀이 2004년과 2005년 각각 기고한 2편의 줄기세포 관련 논문을 취소했다. 연구 결과 조작, 난자 취득 과정에서의 비윤리성 등을 문제 삼았다. 이는 모두 당시 서울대가 자체 조사를 통해 확인한 내용이다.



    줄기세포 연구에 비동결난자 사용을 허하라?

    이후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올해 국내에서 다시 줄기세포 연구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에는 이동률 차병원 줄기세포연구소 교수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 교수는 2014년 미국에서, 그로부터 꼭 10년 전 황 전 교수가 만들었다고 주장했으나 실은 실패한 것으로 판명된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를 만든 인물이다. 핵을 제거한 사람의 난자에 사람의 체세포를 이식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는 다른 줄기세포에 비해 의학적 활용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사람의 난자와 체세포를 활용하기 때문에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도 크다는 평을 듣는다. 이에 따라 현재 세계적으로 매우 적은 수의 연구진만 해당 연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그 가운데 선두권에 있다고 여겨지는 학자다.

    이 교수팀의 연구 내용은 지난해 과학학술지 ‘셀스템셀’에 게재됐다. 이 교수는 교신저자였다.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는 당시 보도자료를 내고 ‘미래부 바이오·의료기술 개발사업의 지원을 통한 줄기세포 연구 성과가 바이오 분야 세계 최고 권위지 ‘셀’의 자매지인 ‘셀스템셀’에 게재됐다’고 밝혔을 만큼 이를 높게 평가했다. 이 교수가 몸담고 있는 차병원도 자체 소식지를 통해 ‘황우석 박사가 시도해 실패했던 체세포복제 줄기세포를 차병원에서 우리 연구자의 손으로 직접 만드는 데 성공했다. (중략) 향후 이것을 각 장기로 분화시킨다면 어떤 난치병도 치료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최근 이 교수에게 관심이 쏠리는 건 줄기세포 연구 분야의 새로운 ‘스타 과학자’인 그가 미국에서 진행했던 바로 이 연구를 한국에서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5월 보건복지부(복지부)에 계획서도 냈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 목적이 “난치병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체세포복제 방식의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이를 위해 “난자 600개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동결난자 500개와 비동결난자(fresh egg) 100개를 사용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난자를 사용해 줄기세포 관련 연구를 할 경우 난자 사용량 등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계획서를 복지부에 제출해 승인받아야 한다. 차병원은 2009년에도 난자 800개를 이용해 이와 유사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해당 연구책임자였던 정형민 당시 차병원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불임치료를 하다 보면 잉여로 생산되는 난자나 배아가 폐기된다. 이런 잉여 난자나 배아를 갖고 다른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시도는 실패했고, 차병원 연구팀은 2014년 미국으로 건너가 비동결난자를 이용해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 이에 대해 당시 연구에 참여했던 이 교수는 “아무래도 한 번 얼었던 난자를 녹이면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명 존중에 대한 사회적 합의 이뤄내야”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 일부 주는 비동결난자 매매를 허용한다. 영국은 시험관 수정을 하고 남은 정상적인 비동결난자를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반면 우리나라는 ‘배아 생성을 위해 동결 보존된 난자 중 임신이 성공되는 등의 사유로 폐기할 예정인 난자’, 즉 동결난자를 제외하면 미성숙하거나 비정상적인 일부 난자만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과학계 일부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비동결난자를 좀 더 자유롭게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반대하는 이도 적잖다. 과학기술 발전과 난치병 치료 등 그 목적이 숭고하다 해도 난자를 수단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사무총장(의사·보건학 박사)은 “일부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비동결난자 이용 연구를 허용하는 건 맞지만, 실질적으로는 관련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인간 배아를 파괴하는 방식의 줄기세포 연구에 국립보건원(NIH)이 연구비 지원을 하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사실상 해당 연구를 통제한다”고 밝혔다.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역분화줄기세포)처럼 난자를 사용하지 않고 줄기세포를 만드는 기술이 최근 해외에서 각광받는 연구 분야”라는 게 김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그는 “일본은 줄기세포 분야의 연구 역량을 해당 기술 발전에 집중하고 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줄기세포 연구의 핵심인 것처럼 여기는지, 난자를 많이 쓰더라도 기술만 혁신하면 국가에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팽배한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권복규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등이 펴낸 책 ‘생명윤리와 법’에는 ‘연구 목적의 배아 창출을 위해서는 인간의 난자가 필요한데 난자 기증에는 여러 신체적인 부작용이 수반될 수 있다. 인간 난자는 오로지 인간 여성에게서만 채취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여성의 몸을 수단화해 착취하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황우석 박사 사건에서 129명의 여성이 난자를 기증했는데 그중 순수한 의미의 기증자는 몇 명 되지 않았으며, (중략) 일부는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을 볼 때 이와 같은 비판은 실질적으로 설득력을 갖는다’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일단 정부는 ‘줄기세포 관련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인 것으로 보인다. 4월 21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제33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는 ‘세포치료 연구용 인체자원 활용 제한 완화’가 언급됐고, 박 대통령도 5월 18일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줄기세포 연구) 관계 부처는 선진국이 푼 규제는 우리도 풀겠다는 원칙을 갖고 제도의 틀을 재정비해주길 바란다”고 발언했다.

    이에 따라 이 교수팀의 연구 계획은 머지않아 승인될 전망이다. 5월 17일 대통령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해당 계획을 검토하며 ‘△난자와 체세포를 채취하는 과정이 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고 △연구 결과가 인간 복제에 악용되지 않도록 감시할 체계를 갖추면 해당 연구를 승인해도 좋다’는 의견을 복지부에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의에 참석한 한 전문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제어할 수단은 없다. 하지만 이번 연구 승인을 계기로 관련 연구가 계속 늘고, 점점 더 많은 난자를 요구하는 상황이 생기는 걸 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더 늦기 전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 기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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