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4

2016.04.20

강유정의 영화觀

아동학대의 깊은 상처, 치유의 교과서

오미보 감독의 ‘너는 착한 아이’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6-04-18 11:3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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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미보 감독은 재일교포다. 한국 혈통이지만 나고 자란 환경은 일본이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일본인 예술가는 몇몇 있다. ‘타일’을 쓴 작가 유미리나 영화 ‘피와 뼈’를 연출한 최양일 감독이 유명하다. 이들의 예술 작품에는 독특한 이방인 의식이 나타난다. 이 이방인 정서는 새로운 시각과 반성적 거리를 제공한다. 오미보 감독이 연출한 ‘너는 착한 아이’도 매우 일본적이지만 어떤 면에선 우리 정서와 닿아 있다. 영화 소재가 아동학대라는 점에서, 지금 이곳에 매우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동학대 사건이 뉴스로 전달된다.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발생한 학대부터 계모, 계부 심지어 친부모에 의한 학대 사건까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많은 아동학대가 ‘집안일’로 치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드러나는 건 이미 손쓸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악화된 사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가 심하게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심한 경우 죽고 난 후에야 그동안 겪어온 안타까운 고통이 밝혀지는 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집 안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를 발견하거나 이에 개입하기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많은 선진국은 이런 문제에 대비해 단단한 방책을 마련해뒀다. 우리도 이제 비로소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할 시점에 왔다고 할 수 있다.

    나카와키 하쓰에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너는 착한 아이’는 소설에 등장하는 다섯 가지 에피소드 가운데 세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하나는 어머니의 애인으로부터 학대받는 초등학생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 시절 학대받은 기억으로 자신의 딸을 학대하는 엄마 이야기다. 마지막 하나는 장애아를 둔 엄마 이야기이다.

    제목 ‘너는 착한 아이’는 영화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재는 분명 아동학대이지만 영화는 학대의 잔혹성이 아니라 그 후에 대해 말하려 한다. 학대받은 아이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그 고민의 결과가 바로 “너는 착한 아이야”라는 관심과 돌봄이다. 학대아동은 대부분 자신이 당한 고통이 스스로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여긴다 한다. 내가 착하지 않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고, 내가 못하기 때문에 부모가 화를 낸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매우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가치 없는 인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인간…. 영화는 아동학대가 낳는 끔찍한 외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자멸임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끝끝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이 낳은 아이에게 학대를 대물림하는 아야네짱의 엄마가 그 사례다. 그는 사랑받아 본 적 없기에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는 존재로 그려진다.



    어떤 점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조금씩 성장한다고 할 수 있다. 학대받는 아이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신임 교사는 적극적으로 아이를 지키기로 마음먹고, 학대 상처를 학대로 되돌려주던 엄마는 스스로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이는 우리가 말하는 사회적 관심과 도움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아동학대 문제가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된 지금, ‘너는 착한 아이’는 한 번쯤 꼭 봐야 할 영화라 할 수 있다. 답답한 것은 상영 영화관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상영관이 적을 뿐 아니라 횟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볼만한 영화를 볼 수 있게끔 최소한의 상영관은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안타깝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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