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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푸틴 저격수’ 여성 3인방이 떴다

암살된 정적이거나 정치로 이끈 은인의 딸들…‘민주주의와 법치’ 앞세우며 반대운동 선봉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푸틴 저격수’ 여성 3인방이 떴다

‘푸틴 저격수’ 여성 3인방이 떴다

최근 반(反)푸틴 운동의 선봉에 선 여성 3인방. 예고르 가이다르 전 총리의 딸 마리야 가이다르, 보리스 넴초프 전 제1부총리의 딸 잔나 넴초바, 아나톨리 솝차크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의 딸 크세니야 솝차크(왼쪽부터).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영문판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영문판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영문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표적인 마초 정치인이다. 상의를 벗어젖히고 근육질 몸매를 드러낸 채 시베리아의 차디찬 강물에서 수영과 낚시를 즐기는 모습으로 강인한 남성성을 강조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통해 여성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계산인 셈.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젊은 여성 모임들이 상당한 세력을 얻고 있을 정도다.

러시아 여성은 서유럽 유권자들에 비해 정치에 관심이 적고 각종 시위 등 정치활동에 참여하는 경우도 적다는 게 통념이다. 그럼에도 일부 여성은 권위주의적 통치를 이어온 푸틴 대통령에게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다. 이 와중에 최근 전직 고위 정치인의 딸 3명이 푸틴 대통령의 독재와 인권탄압 등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저격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3인방의 부친은 모두 고인이 됐지만, 푸틴 대통령과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인연을 맺어온 이들이다. 이들의 활약상이 러시아 정부로서는 더욱 난감한 이유다.

가장 적극적으로 반(反)푸틴 운동을 벌이는 여성은 잔나 넴초바(32). 그의 부친은 보리스 넴초프 전 제1부총리다. 넴초프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 제1부총리를 지낸 개혁파 지도자로, 반정부운동을 이끌어온 푸틴 대통령의 정적(政敵)이자 대표적인 야권 인사였다. 자유주의 성향의 공화-국민자유당 공동의장이던 넴초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에도 가장 큰 목소리로 반대했다.



“아버지의 죽음, 진실을 밝혀달라”

‘옐친의 후계자’로 꼽히던 넴초프는 2015년 2월 27일 저녁 크렘린궁에서 200m 정도 떨어진 모스크바 강 다리 위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당시 러시아 수사당국은 암살 용의자로 자우르 다다예프 등 체첸 출신 남성 5명을 체포해 기소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독실한 무슬림인 다다예프는 넴초프가 러시아에 거주하는 무슬림과 예언자 무함마드를 비판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범행했다고 밝혔지만, 이후 살해 위협 때문에 허위 자백했다고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암살 사건은 현재까지 사실상 미궁에 빠져 있다.



잔나는 이 사건 이후 생명의 위협을 느껴 2015년 6월 독일로 망명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에서 기자로 활동하는 그는 최근 ‘러시아를 깨워달라(Wake up Russia)’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고 푸틴 대통령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잔나는 유럽회의(Council of Europe) 측에 부친 사건과 관련한 특별조사관을 임명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2월 27일 넴초프 암살 1주기를 맞아 러시아에서 벌어진, 수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반푸틴 시위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또 다른 여성은 러시아 초대 총리를 지낸 예고르 가이다르의 딸 마리야 가이다르(34)다.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그는 현재 남부 오데사 주에서 사회·보건 담당 부지사로 일하고 있다. 2009년 53세로 사망한 가이다르 전 총리는 옐친 대통령 시절 소련이 해체된 이후 침체에 빠졌던 러시아 경제에 ‘충격요법’을 가해 회생의 숨통을 틔운 개혁파 지도자로 꼽힌다. 이후 역시 개혁파로 꼽히는 아나톨리 추바이스 전 제1부총리와 함께 ‘러시아 민주선택’이라는 정당을 창당해 현실정치에 뛰어들기도 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추진하는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이 그의 주된 활동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가이다르 전 총리는 2006년 독극물에 중독돼 생사 위기를 넘겼다. 당시 그는 “나는 장기간 러시아 정치에 개입해왔기 때문에 많은 것을 안다”며 “정적들이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밝힌 적이 있다. 마리야 역시 “아버지가 민간 의사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독극물에 중독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후유증 탓인지 가이다르 전 총리는 3년 후 급사했다.

부친 사망 이후 마리야는 반정부 성향의 러시아 라디오방송 ‘에호 모스크비’(모스크바의 메아리)의 기자로 일하다 2015년 우크라이나 오데사 주 주지사를 맡은 미하일 사카슈빌리 전 조지아(옛 그루지야) 대통령의 제의에 따라 러시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15년 5월 사카슈빌리를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활동이 강한 오데사 주지사로 임명한 것 자체가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조치였다. 사카슈빌리는 마리야를 부지사로 기용함으로써 푸틴 대통령에게 맞서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셈. 마리야는 “러시아가 민주국가가 되기 전에는 귀국하지 않겠다”며 “우크라이나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성공적으로 구현해 러시아도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의 패리스 힐턴’

정작 푸틴 대통령에게 가장 난감한 인물은 자신의 정치적 멘토이자 은인이던 아나톨리 솝차크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의 딸 크세니야 솝차크(34)일 것이다. 개혁적 마인드를 가진 법률가였던 솝차크 전 시장은 푸틴과는 동향(상트페테르부르크)이자 대학 12년 선배이고 은사였다.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일하던 푸틴은 솝차크 당시 레닌그라드대 조교수가 1991년 시장에 당선되자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3년 만에 부시장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오늘날 푸틴의 성공에는 솝차크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던 셈이다.

크세니야는 러시아 사교계의 여왕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화려한 생활을 해왔다. 정치 명문가 출신이라는 배경에 모스크바국립대 국제관계학과 출신이라는 학력은 물론, 미모까지 뛰어난 덕에 방송인과 배우로 활동해왔다. 그러나 난잡한 사생활과 온갖 추문이 발목을 잡았다.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누드사진 촬영이나 재벌과의 시한부 결혼 등으로 화제를 뿌리면서 ‘러시아의 패리스 힐턴’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랬던 크세니야는 2011년 12월 총선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고, 뒤이어 방송과 트위터를 통해 푸틴 대통령의 독재와 언론탄압을 비판하는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러시아 MTV 정치토크쇼 ‘고스데프’의 진행을 맡고 방송 첫 회에 푸틴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를 어린아이로 희화화한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출연해 크렘린궁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푸틴 지지자들은 크세니야의 ‘배신’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민간 독립방송 도즈드 TV에서 ‘솝차크 라이브’의 앵커로 일하며 넴초프 전 부총리 암살과 관련해 푸틴을 비판하는 등 ‘반푸틴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 3인방은 크렘린궁으로부터 탄압받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러시아가 민주주의와 법치에 따라 통치되는 것을 바라는 부친 밑에서 자랐다는 사실. 이들이 반푸틴 운동의 상징이 된 이유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주간동아 2016.04.13 1033호 (p64~65)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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