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3

2016.04.13

김창환의 통계 인사이트

투표 참여가 소득불평등 줄인다

부유층보다 덜 투표하는 저소득층, 그럴수록 복지 예산·최저임금 줄어

  •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chkim.ku@gmail.com

    입력2016-04-11 10: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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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나라의 모든 시민이 투표한다면 앞으로 100년 동안 민주당이 집권할 것이다.” 미국 좌파경제학자 존 갤브레이드가 1986년 남긴 말이다. 투표하지 않는 시민의 다수가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며, 민주당 지지자보다 공화당 지지자가 더 많이 투표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모두가 투표한다면 민주당이 100년 동안 집권할 것인지 검증할 방법은 없다. 투표하는 시민과 투표하지 않는 시민이 선호하는 정당에 큰 차이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여러 사회과학 연구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은 투표에 참여하는 시민과 그렇지 않은 시민 사이 선호하는 정책에서 차이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은 참여하는 시민보다 세금 인상이나 복지 확대 등 분배 위주의 정책을 선호한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계층이 그렇지 않은 계층보다 역설적이게도 투표를 덜 한다.



    투표장에 나가야 정치인은 신경 쓴다

    투표층과 비투표층의 선호 정책이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계급에 따라 투표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에서는 이를 ‘투표의 계급 편향’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부유층일수록 투표 참여율이 높고 빈곤층일수록 투표 참여율이 낮다. 많은 국가에서 고소득층의 투표율이 저소득층보다 높은 것이다.

    미국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연소득 15만 달러(약 1억7000만 원) 이상 고소득자의 80%가 투표에 참여했지만, 소득 1만 달러(약 1150만 원) 이하 저소득자는 47%만이 투표에 참여했다. 심지어 소득 상위 1%에 속하는 부자는 99%가 투표에 참여했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서초, 송파, 강남으로 이어지는 강남 3구의 투표율이 다른 구보다 높고, 같은 구 안에서도 아파트가격이 높은 동네일수록 투표율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선진국에서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의 투표율 격차는 평균 13%p이다. 한국은 소득 상층과 하층의 투표 참여율 격차가 29%p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크다. 미국은 23%p, 스웨덴은 6%p이다. 빈부격차가 정치 참여 격차로 이어지는 정도가 가장 심한 국가 가운데 하나가 한국인 셈이다. 투표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는 호주는 소득에 따른 투표율 격차가 2%p에 불과하다.

    빈부에 따른 투표율 격차가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투표의 계급 편향이 생기는 이유를 정치학에서는 ‘투표 행위도 자원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주민등록을 한 모든 성인이 자동으로 유권자로 등록되는 우리와 달리, 미국에서는 투표권을 가지려면 별도로 등록을 해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무료로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투표장에서 제시할 수 있는 신분증을 무료로 발급해주지 않는다.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수수료를 내는 것처럼 투표장에서 통용되는 신분증을 받으려면 비용을 내야 한다.

    따라서 유권자 등록과 유료 신분증은 투표율을 낮추고 소득 격차에 따른 투표율 격차를 키우는 두 가지 중요한 걸림돌로 꼽힌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걸림돌이 없음에도 소득 격차에 따른 투표율 격차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서민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없어 투표 참여 동인이 없거나, 서민층의 투표 참여를 막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걸림돌이 그만큼 크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투표 참여와 소득불평등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투표로 경제를 바꿀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부유층이 서민층보다 더 많이 투표하면 부유층의 이득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선출될 확률이 높아진다. 또한 선거 결과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정치인으로서는 투표에 참여하는 계층의 이익을 참여하지 않는 계층의 이익보다 중시하게 된다.

    빈센트 말러 미국 로욜라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투표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가처분소득의 불평등이 낮아진다. ‘그래프’에서 가로축은 국가별 투표율이고 세로축은 정부 정책을 통해 소득불평등이 얼마나 감소되는지를 가리킨다. 소득불평등 감소 정도는 세전 소득불평등과 세후 재분배 이후 소득불평등 지니계수의 격차로 산출했다. 이 격차가 클수록 정부 정책을 통해 불평등이 많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호주 최저임금이 세계 최고인 이유

    결과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다. 복지국가일수록 투표율이 높고, 투표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소득불평등을 줄인다. 이 그래프만으로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투표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소득 재분배가 더 활발하다는 상관관계만큼은 분명히 드러난다. 높은 투표율과 소득 재분배 정책이 양(+)의 상관관계를 갖는 이유는, 높은 투표율이 빈부격차에 따른 투표 참여 격차를 줄이기 때문일 개연성이 높다.

    투표율과 소득불평등, 복지의 관계는 역사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보통선거권 확대와 정부의 복지 예산 확대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20세기 들어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시점과 정부의 예산 확대가 일치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참정권 확대 후 보건과 건강 관련 정부 예산이 증가했고, 이로 인해 영아 사망률이 10% 이상 감소했다. 흑인의 투표 참여를 막았던 문맹자 투표 금지가 철폐된 후 흑인 거주지역의 정부 예산이 증가했다. 참정권 확대와 더불어 정부 정책도 더 진보적으로 변화했다.

    구체적인 정책을 살펴보면 투표와 소득불평등의 관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예컨대 투표율은 최저임금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에서는 2019~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 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새누리당에서는 근로장려세제 예산을 통해 최저임금을 9000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50개 주 투표율과 최저임금의 관계를 들여다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빈부격차에 따른 투표 참여율 격차가 작을수록 최저임금이 높았다. 빈곤층과 부유층의 투표율 격차가 줄어들수록 최저임금은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투표를 안 하면 벌금을 부과하는 호주의 최저임금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것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른 연구들 또한 투표의 계급 격차가 작을수록 선별적 복지보다 보편적 복지를 정책으로 채택할 확률이 높아지고, 복지에 투여하는 예산도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대로 부유층의 투표율이 서민층보다 높을수록 복지정책은 후퇴하고 관련 예산은 줄어든다. 투표 참여와 소득불평등 감소는 단순 상관관계를 넘어 인과관계를 가질 개연성이 높다. 소득불평등을 줄이고 싶다면 일단 투표부터 하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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