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0

2016.03.23

강유정의 영화觀

작은 세계, 큰 사랑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의 ‘룸’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6-03-21 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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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독하다고 하지만 언제나 세상이 더 독하다. 신문 사회면을 보면 아이를 굶기고 영하의 날씨에 발가벗겨 ‘락스’까지 뿌린 부모도 있다. 그렇게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어디선가 어떤 영혼은 멍들고 죽어가고 있다. 많은 영화와 문학이 이렇듯 끔찍한 실제 사건에서 소재를 찾는다. 하지만 사건 기록과 신문기사 안에는 사건만 있지 인간이 없다. 사건 속에서 인간을 찾아내는 게 바로 예술의 몫이다. 영화 ‘룸’은 이처럼 끔찍한 일 가운데서 인간을 발견한, 그런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원작인 엠마 도노휴의 동명소설은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쓰였다. 한 소녀가 친아버지에게 감금당한 채 성적으로 수탈당한 일이다. 그 기간은 자그마치 24년이었고, 근친상간의 폭력으로 아이 7명이 태어났다. 이 사건이 소설로 바뀌면서 친아버지는 낯선 유괴범으로, 24년의 감금 기간은 7년으로 달라졌다. 장르는 어떤 게 적합했을까. 공포물이나 스릴러가 됐어야 할 법한 이 이야기는 작가 손을 거쳐 인간에 대한 신뢰와 따뜻한 사랑의 필연성을 말하는 드라마로 각색됐다. 감금과 사랑, ‘룸’은 이러한 이율배반적 배치로 먼저 눈길을 끈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감금의 공포가 아니라 탈출과 새로운 삶, 그리고 사랑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아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이유도 여기 있다. 영화는 아이(잭) 시점에서 진행되고, 아이 목소리로 전달된다. 아이는 방금 다섯 살이 됐다. 엄마가 된 소녀는 부족한 재료를 총동원해 아이에게 케이크를 만들어준다. 아이에게 허락된 세계는 엄마, 그리고 높은 천장에 창 하나가 달린 방 하나가 전부다.
    이렇게 단조로운 공간에서 아이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아이는 놀랍게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세계와 교제한다. 똑똑 소리를 내며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세면대 수도꼭지에 별명을 붙이고 아침에 일어나 변기, 침대와 인사를 나눈다.
    감금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아이는 무척 맑고 환하다. 엄마 가슴에 매달리며 젖을 보채거나 엄마와 좁은 공간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보자면, 환경이란 어쩌면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에게 필요한 좋은 환경은 햇빛이나 질 좋은 음식 같은 물리적 조건이 아니라 어떤 그악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엄마의 손길, 즉 사랑의 온기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아이의 삶은 감금 상태에서 도망쳐 나온 이후가 더 힘들어 보인다. ‘감금 방’이 세계이자 우주였던 잭에게 오히려 지나치게 넓은 세상은 세균과 불편한 눈빛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영화는 자유의 고통 역시 아이가 커가면서 반드시 배워야 할 것 가운데 하나라고 말해준다. 그 중심에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받은 브리 라슨의 연기가 있다. 그는 아들과 달리 세상을 경험한 후 감금 방에 갇혔다. 알고 있던 세계와 새롭게 만난 세계의 차이 가운데서 그는 아들보다 더 허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상상하기 어려운 곤란함은 라슨의 연기를 통해 그럴듯한 간접체험으로 다가온다. 진짜 연기는 이렇듯, 최선의 상상력을 통해 가 닿을 수 있는 어떤 세계의 재현이라는 듯 말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 두 사람은 탈출했던 방에 다시 가본다. 그리고 이 방은 이제 더는 방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장이란 그런 게 아닐까. 과거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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