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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자신의 별로 떠나간 우주의 남자

데이비드 보위 죽음에 부쳐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자신의 별로 떠나간 우주의 남자

음악을 좋아하게 된 이래 많은 록스타의 부고를 접해왔다. 어떤 건 장엄한 비극이었다. 커트 코베인부터 에이미 와인하우스, 그리고 신해철까지, 요절한 이들의 뉴스는 세상이 꺼지는 듯한 충격으로 다가오곤 했다. 너무도 빨랐기 때문이다. 혹은 영화 같은 엔딩이었기 때문이다.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존 레넌처럼 문헌과 영상으로 만난 이들의 죽음도 비장한 서사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상을 정복했으나 천수를 누리지 못한 이들의 숙명이다.
자연사나 병사가 아닌 약물과 알코올 과다복용으로 인한 급사, 혹은 사고사, 심지어 자살일 경우 더욱 그렇다. 천수를 누린 이의 부고에도 비슷한 마음이 들곤 한다. 대중음악을 예술 영역으로 격상시킨 황금시대의 주역들이 하나 둘씩 고령으로 세상을 떠날 때마다 인간의 유한성을 새삼 깨닫곤 한다.



전장에 서서 죽는 무사

자신의 별로 떠나간 우주의 남자

생전의 주요 활동 모습. 동아DB

데이비드 보위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69세. 1년 반의 암 투병으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하게 삶을 마무리했다고 그의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발표됐다. 2000년 영국 음악잡지 ‘NME’는 20세기 음악인 중 현재의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가 누구인지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현직 음악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다. 보위가 1위를 차지했다. 그의 인생과 위상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온갖 장르를 섭렵하되 특정 스타일과 이미지에 함몰된 적 없는 보위의 영향력은 그저 음악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의 부고가 전해진 후 세상 모든 곳에서 추모 메시지를 전했다. 미술, 영화, 패션, 정보기술(IT)계까지. 내용은 그저 한 위대한 록스타의 죽음을 기리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그가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자신들의 영역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를 밝히는 내용이었다.
1970년대 보위가 파격을 통해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던 소수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우상이 됐다면, 그리하여 문화의 미적 영역을 넓히고 파이오니어들이 진입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했다면, 90년대 그는 기술의 선구자였다. 인터넷이 보급되기도 전인 1996년 포털사이트 ‘보위넷’을 열었으며 자신의 노래를 디지털로 발매했으니 말이다. 요컨대 그가 살았던 세계는 관습과 시제에서 벗어난 자유와 미래의 세계였던 셈이다. 보위의 삶 자체가 예술이었다. 상투적인 말이 아니다. 정말로 그랬다. 최후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생일인 1월 8일 발매된 ‘Blackstar’에는 최후의 순간을 맞이한 사람들이 보일 수 있는 석양빛이라고는 없다. 프리재즈와 아트팝 등을 통해 그는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음악을 들려준다.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음악인들의 앨범에서 느껴지는, 마지막 생명을 쥐어짜는 듯한 절박함 비슷한 것조차 없다. 오히려 원숙의 정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의지로 빛난다. 그래서 이 앨범의 음악과 형식은 유서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이 시점에서 보자면 삶의 끝을 받아들인 보위가 숨겨둔 마지막 메시지들이 담겨 있다. 의미심장한 가사가 그렇다. 마지막 싱글이 된 ‘Lazarus’는 그 정점이다. 그는 두 눈 부위에 점이 찍힌 안대를 차고 병상 침대에 누워 노래한다. 기괴한 마임과 이미지들의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곡의 종결부, 보위는 옷장으로 들어가 스스로 문을 닫는다. 결연한 눈빛으로. 스스로 뚜껑을 닫고 관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게 당연하다. 전장에 서서 죽는 무사, 무대에서 죽는 배우, 그런 엄숙하고 숭고한 장면들이 부고를 접한 후 이 뮤직비디오를 다시 보는 동안 떠올랐다. 픽션이 아닌 현실에서 이 경지를 이뤄낸 그의 죽음은, 그래서 여느 록스타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첫 문장부터 마침표까지

그래서일까, 그가 잠시 머물다 간 이 세계는 그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현지시각
1월 11일 저녁, 부고가 전해진 지 하루가 지났다. 영국 런던 브릭스턴에 1만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보위가 태어나 자란 동네다. 그의 생가 근처에 있는 영화관 간판에는 상영작 대신 ‘David Bowie/ Our Brixton Boy/ RIP’라는 문구가 걸렸다. 이 극장 벽에 추모객들은 꽃과 애도 메시지를 쌓아 올렸다. 그리고 파티가 시작됐다. 극장 안에서, 극장 밖 거리에서, 브릭스턴 일대 펍과 카페에서. 거리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Starman’ ‘Change’ ‘Let’s Dance’ 같은 노래를 드높이 따라 불렀다. DJ가 트는 음악에 맞춰 환호하며 온몸이 터져라 춤을 췄다.
그것은 분명히 사랑의 한 방식이었다. 세상에 이름을 알린 그 순간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멋없었던 적이 없는 ‘스타 이상의 스타’를 우주로 돌려보내는 최고의 방식이었다. 폴 매카트니, 마돈나, 노엘 갤러거 같은 스타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사진과 추도사보다, 팬들이 모이는 이 축제 같은 의식의 영상이 더욱 짠했다. 프레디 머큐리나 루 리드 같은 먼저 떠난 ‘절친’들을 만났을 보위가 그들에게 가장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풍경처럼 보였다.




자신의 별로 떠나간 우주의 남자

1월 8일 출시된 마지막 앨범 ‘Blackstar’ 홍보를 위해 검은 별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포즈를 취했던 데이비드 보위. 사진 제공 ·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그는 암 투병 기간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친한 지인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조차 암시만 했을 뿐 적시하지 않았다. 사망하기 이틀 전, 앨범 발매일이기도 했던 자신의 생일에는 잘 차려입은 채 웃어 보이는 거리 사진이 찍혔을 정도다. 외계인 ‘지기 스타더스트’ 콘셉트로 1970년대를 정복했던 그는 스스로 지구를 떠날 시점을 택한 게 아니었을까. 첫 문장부터 마지막 마침표까지 예술로 꽉 채웠던 우주의 남자, 데이비드 보위가 지구에게 이별 선물을 남기고 자신의 별로 떠나갔다. 자신의 명곡 ‘Starman’의 가사처럼 하늘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존재로 돌아갔다.






주간동아 2016.01.20 1022호 (p78~79)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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